1. ‘바람직한’ 이별은 가능할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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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김광석, <서른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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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내 몸 안에 있지만
내가 더 이상 없으면 그 사람은 어디 있게 되지?
내게 남은 그녀의 기억은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
-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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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허락된 모든 정규교육을 마친 후 나는 자주 이런 몽상에 빠지곤 했다. 만약 나에게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새로운 과목을 개설할 자유가 주어진다면 어떤 과목을 만들어낼까. 학교에서 배운 것이 결코 적지 않은데, 왜 이렇게 나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지,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았다. 그렇게도 많은 과목이 있었는데 정작 인생의 커다란 갈림길에 섰을 때는 어떤 과목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내게 가장 필요한 과목은 ‘사람들을 잘 만나고 잘 헤어지는 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관계학’이라는, 우리가 매일 고민하지만 결코 교과서와 같은 정제된 지식의 통로를 통해서는 배울 수 없는 과목.
나는 모든 만남에 서툴렀다. 친구를 좋아하면 ‘적당히’ 좋아할 줄을 몰랐다. 애인처럼 친구를 좋아하다가 정작 친구와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수도 없이 친구들과 연락이 끊기곤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토록 치열했던 갈등과 서운함은 휘발되어버리고 누군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만 남곤 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니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주로 같은 여자이며 거의 동갑내기로만 이루어져있던 여고생의 인간관계를 벗어나니, 호칭과 인사법부터 천차만별인 엄청난 인간관계의 네트워크가 펼쳐졌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더욱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니 사람을 만나는 법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잘 헤어지는 법임을 알게 되었다. 김광석의 노래처럼 ‘매일 이별하고 있음’을 마음속 깊이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만남보다 더 어려운 이별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한 내게 가장 필요한 과목은 ‘이별학’이 아니었을까. 제대로 이별하지 못한 모든 헤어짐은 내 마음 속에 켜켜이 쌓였다. 그리하여 나는 결국 어느새 이별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기를 쓰고 타인을 ‘덜’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파니핑크>의 감독 도리스 되리의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내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이별학’을 강의하는, 지상에 없는 교과서 같은 작품이었다. 이 아름다운 교과서에는 엄격한 교훈도 암기할 공식도 없다. 다만 피할 수 없는 이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남은 생을 다 바치는 한 노부부의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 ‘이별학’의 창시자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역시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프로이트는 <애도와 우울>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처하는 인간의 두 가지 자세를 언급한다. 첫 번째가 대상의 상실을 ‘애도’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는 대상의 상실을 자아의 상실로 흡수해버리는 우울증이라고. 애도(Trauer)가 이별을 극복하기 위한 영혼의 제스처라면, 우울증(Melancholia)은 이별의 원인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린 채 어느새 ‘잃어버린 대상’을 ‘잃어버린 자아’로 대체해버린다. 잃어버린 대상을 향해 최선을 다해 슬퍼하지 못하면 결국 그 못다 한 슬픔의 화살표는 자기 자신에게로 향해버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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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라면 시인이나 철학자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을 우울증자에게 나타나는 세계에 대한 무관심과 자신 속으로의 끊임없는 침전은 그에게서 리비도라는 촉수가 손상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세계에 무관심하며, 세계 또한 그에게 무관심하다. 우울증자에게는 인간 고유의 기적 같은 능력, 즉 세계를 리비도의 마법에 빠지게 만드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오히려 그에게 능력이 있다면 자신이 만지는 모든 것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마술이 있을 뿐이다. 요컨대, 세계를 무감각한 무기질 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검은 마술.
- 맹정현, <리비돌로지>, 문학과 지성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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