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나는 네가 아니다. 그러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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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도 완전히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 모든 의미는 미래의 어느 날에는 환영파티를 갖게 될 것이다.
- 미하일 바흐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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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규에게 칼을 겨눈 송지원의 눈에는 전에 없던 분노와 살기가 서린다. “왜 날 데리고 있었어? 왜 신고 안 했어?” 이한규는 자신을 향해 날카롭게 번득이는 칼을 보고도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말한다. “너 하나 잡아서 뭐하겠냐? 잡으려면 간첩단 정도는 돼야지.” 가눌 수 없는 분노로 결국 송지원은 이한규의 팔에 상처를 내고 만다. “그래 요샌 나 같은 놈 잡으면 얼마 준답니까?” 이한규는 피가 뚝뚝 흐르는 팔을 부여잡고도 평온한 표정으로 송지원을 진정시킨다. “모든 일이 잘 되면, 우리 사업이나 제대로 키워보자.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대박 날 거야. 좋은 일 한번 해보자.”
이한규에게 자신을 해칠 의도가 전혀 없음을 알게 된 송지원은 절망과 분노와 회한,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참담함이 밀려드는 얼굴로 소리 없이 흐느끼기 시작한다. “하던 절 마저 해. 나도 너희 부모님께 절 한번 올릴게.” 송지원의 부모님께 절을 올리겠다는 이한규의 맑게 가라앉은 음성. 이것으로 지원의 평생을 가로지르던 견고한 에고의 빗장은 비로소 부서져버린다. 그의 삶에 처음으로 가족이나 이념이나 국가가 아닌, ‘타인의 존재’가 스며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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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타자의 범주를 통해 바로 그의 고통으로 경험한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위로의 말과 도움의 손길이다.
- 미하일 바흐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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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준 칼을 힘없이 던져버리는 송지원. 그의 눈 속에는 차마 마음 놓고 흐르지도 못하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그의 눈은 어느 때보다 슬퍼 보이지만 잠들어 있을 때조차 놓을 수 없었던 불안과 긴장의 끈이 풀려 어느 때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그의 눈 속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향과 만날 수 없는 가족과 버릴 수 없는 이념과 얼굴조차 모르는 딸과 먼저 간 동지들이 미처 다하지 못한 삶이 함께 고여 있는 것만 같다. 저 거대한 슬픔의 짐짝을 혼자 등에 지고 살아왔을 그의 인생이 새삼 눈부시다. 이제 두 사람 앞에는 완전히 새로운 미래가 펼쳐질 참이다. 둘 사이에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아닌,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밖에 없는 가장 가까운 타인을 향한 믿음이 태어난다.
그래, 나는 네가 아니다. 너도 내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아님’의 뼈아픈 엇갈림 속에서 서로 조금은 닮았을지도 모를 나의 잃어버린 분신을, 너의 잃어버린 조각을 발견한다. 우리는 타인의 육체를 접촉함으로써 나는 네가 아니고 너는 내가 아님을 확인한다. 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육체를 통해 타인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출구를 발견한다. 송지원은 자신이 찌른 이한규의 팔뚝에서 흐르는 붉은 피를 보며 그 찢어진 팔만큼 쓰라리게 아파오는 자신의 마음속 파동을 감지한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흐느끼는 송지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한규 또한 마음속 깊이 무너지는 울음을 삼킨다. 송지원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과 이한규의 팔에서 흐르는 피는 같은 슬픔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영원처럼 긴 순간이 있다. 송지원이 흐느껴 우는 이 순간은 관객도 카메라도 문득 시간의 흐름을 잊고 싶다. 감독의 카메라는 별다른 기교 없이 오래도록 송지원의 두 눈을 관통하듯 묵묵히 그의 얼굴을 비춘다. 영화 속 인물들도,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도, 잠시 ‘나’라는 존재의 경계를 잊는 순간이다. 너와 나의 존재를 가르는 선명한 경계를 잊는 순간, 우리의 마음이 타인의 존재를 향해 무한히 가까이 다가가는 점근선이 되는 순간. 이 순간만은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만 진정한 내가 존재함을 깨달을 때. 너의 삶이라는 프리즘에 비춰보아야 비로소 드러나는 나의 존재를. 나의 본질은 나에게 있지 않다. 너의 본질도 너에게 있지 않다. 내가 너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너는 비로소 너다울 수 있고, 네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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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조직된 집단들이 보다 우월하다는 명목으로 극단적인 개별성을 거부하는 여타 철학들과는 달리 바흐친의 철학은 개개인의 존엄성의 싹을 잘라내지 않는다. 바흐친의 대화주의는 우리 모두가 의미를 만드는 데 반드시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인간을 해방시킨다. 인간이 그 자신 스스로에 대해서 그리고 서로서로에 대해서 책임의 구조학에 참여하고 있는 한 우리 모두는 이 세계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질서와 의미의 저자이며 창조자들인 것이다.
- K. 클라크 • M. 홀퀴스트 지음, 이득재 • 강수영 옮김, <바흐친>, 문학세계사, 1993,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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