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영화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⑬


13. I see you……  (3)  

 제이크 : (영화가 시작된 직후, 제이크의 내레이션) 형은 대단한 과학자이지만 나는 부상당해 다리도 못 쓰는 퇴역 군인일 뿐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내가 받는 연금으론 다리를 고칠 수 없다. 지구에선 자유를 위해 싸우던 군인이었지만 여기선 회사에 고용된 용병일 뿐이다.
 쿼리치 대령 : (아바타 프로그램에 지원한 병사들을 겁주며) 지옥도 여기에 비하면 휴양지나 다름없지.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가 제군들을 간식으로 먹어치울 것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 중얼거리던 제이크가 이제는 자신이 ‘박멸’해야 할 적군의 리더, 나비족의 열혈 전사가 되었다. 판도라에서 나비족의 일원이 되지 않았다면, 제이크는 ‘다리도 쓰지 못하는 퇴역군인’이라는 사회가 부여한 정체성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제이크는 나비족이라는 진정한 타자를 만남으로써, 사회적 시선의 네트워크가 구성한 강요된 정체성을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접근해 온 제이크를 용서한 네이티리. 그에게 이제 진심으로 “I see you”라고 말하는 순간, 그녀는 지금 제이크 자신이 보지 못한 ‘제이크보다 더 큰 제이크’를 보는 중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 속에서 우리 자신의 육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우리 자신 이상의 것을 본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그가 스스로 보여준다고 의식하는 것 이상을 볼 수 있다. ‘그가 보여주는 것’과 ‘내가 볼 수 있는, 당신 이상의 당신’ 사이, 그 거대한 차이가 탄생하는 순간이야말로 그와 나, 우리와 그들의 접속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차이야말로 통계적 수치나 과학의 공식으로 계산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잉여성, 인간의 아우라이기도 하다. 타자의 눈을 통해서만 비치는 나의 모습이야말로 내가 ‘단속’할 수 없는 나의 진정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문명’의 이름으로 타자를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 우리가 아마존뿐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판도라들을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비족의 샤먼이자 네이티리의 어머니인 모앗은 온힘을 다해 그레이스 박사를 살려보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모앗이 부족 전체가 모인 가운데 치유의 의식을 주관하는 모습은 영화 <아바타> 최고의 장엄한 스펙터클을 연출한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부족 전체가 한 자리에 모여 간절히 기도하고 노래하는 모습, 천상의 존재와 지상의 존재를 연결하게 하는 샤먼의 거부할 수 없는 위엄. 특히 3D 영상이 연출하는 생생한 현장감에 도취된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서로 어깨를 걸고 단 한 사람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 나비족의 일원이 된 듯한 행복한 착시에 빠진다. 우리도 저 수많은 손들 중 하나를 잡고 싶은 마음, 우리도 그녀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된다. “그녀가 부족의 일원으로 다시 걷게 해주소서…….”



 
   하지만 모앗의 걱정이 현실화되었다. 그레이스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이승의 경계를 넘어 에이와 여신을 접견하고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와야만 하는데,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던 것이다. 죽어가면서도 영혼의 나무를 바라보며 “샘플 채취해야 하는데…….”라고 속삭이던, 천상 과학자이던 그레이스. 그레이스는 과학의 힘을 믿었기에 판도라의 생태계를 연구했고, 교육의 힘을 믿었기에 나비족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그레이스의 과학은 인간이라는 부족만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레이스는 사력을 다해 과학을 추구했고 그 과학의 길 끝에서 신화를 만난다. 레비스트로스 또한 과학의 부재 상태가 신화가 아니라 과학의 힘을 빌려 비로소 신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죽어가면서 문명과 자연 사이, 과학과 신비 사이, 인류와 나비족 사이의 메신저가 되었다. 그녀는 죽어가면서도 더없이 기쁜 표정을, 지금껏 보여준 적이 없던 희열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한다. “그녀를 만났어. 에이와는 정말 존재해.” 그녀가 에이와를 믿는 한, 그녀는 죽어 사라지지 않고 ‘영혼의 나무’에 깃들어 나비족의 역사와 신화 속에 늘 함께 할 것이다.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판도라의 자연 속으로 저물어갈 것이다. 



                  

   
 

 내 무덤 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고, 잠들지 않았답니다.
 나는 천 갈래 만 갈래로 부는 바람이며
 금강석처럼 반짝이는 눈이며
 무르익은 곡식을 비추는 햇빛이며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입니다.
 당신이 숨죽인 듯 고요한 아침에 잠이 깨면
 나는 원을 그리며 포르르
 말없이 날아오르는 새들이고
 밤에 부드럽게 빛나는 별입니다.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습니다. 죽지 않았으니까요.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diamond glints on snow.
 I am the sunlight on ripened grain.
 I am the gentle autumn rain.
 When you awaken in the morning's hush
 I am the swift uplifting rush
 Of quiet birds in circled flight.
 I am the soft stars that shine at night.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 메리 엘리자벳 프라이(Mary Elizabeth Frye), <내 무덤 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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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ing you 2010-02-1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 무덤 가에 서서 울지 말아요. 미드에서도 몇 번 나온 시지요. 넘 좋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