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I see you…… (2)
|
|
|
|
에리봉 : 당신은 자신의 자아를 잘 모른다고 생각합니까?
레비스트로스 : 거의 몰라요.
에리봉 : 그 점은 당신에게만 고유한 것인가요, 아니면 인류 정신의 특성인가요?
레비스트로스 : 그게 나만의 특성이라고 자부하진 않겠어요. 개인적인 정체성의 감정을 우리에게 부과한 것은 바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 사회는 당신이 어떠 어떠한 사람이기를 원하며, 그 사람이 자신이 행하고 말하는 바의 책임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회적인 압력이 없다면, 개인적인 정체성의 감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험한다고 믿는 것처럼 강렬하지는 않다고 확신해요.
-디디에 에리봉 대담, 송태현 옮김,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강, 2003, 257~258쪽. |
|
|
|
|
사경을 헤매는 그레이스 박사를 바라보며 제이크는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나비족의 도움을 받아 그레이스를 살릴 수 있을까. 에이와의 계시를 믿고 자신을 살려준 네이티리의 신뢰를 어떻게 다시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비족과 함께 판도라를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비족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그 순간 섬광처럼 지나가는 거대한 새의 이미지. 적수가 없는 하늘의 강자, 토루크. 네이티리가 가르쳐준 바에 따르면 토루크는 ‘마지막 그림자’라는 의미로 이 거대한 새의 주인이 되는 것은 슬픔의 시대에 부족을 이끈 위대한 리더들의 특권이었다.
나비족의 역사상 딱 다섯 번밖에 나타나지 않았던 토루크 막토에 대한 나비족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제이크는 나비족의 ‘믿음의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비족이 되는 가장 빠른 길임을 알고 있다. 제이크의 눈빛이 반짝인다. ‘토루크 막토’(마지막 그림자의 라이더, 탑승자)에 대한 그들의 믿음 속으로 온몸을 던지자. “토루크는 하늘의 절대 강자. 그런 그가 머리 위를 보진 않겠지?”
인간들과 나비족 모두가 제이크를 버렸지만 이크란만은 제이크의 기운을 감지하고 날아와 자신의 등을 내어준다. 제이크는 이크란과 함께 아무도 길들일 수 없다는 토루크의 머리 위로 날아가 마침내 ‘토루크 막토’가 되는 데 성공한다. 거대한 시조새와 익룡의 형상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이 무시무시한 토루크는 사력을 다해 몸부림치다가 자신보다 더욱 필사적인 제이크의 영혼과 마침내 교감하게 된다. 나비족의 제6대 토루크 막토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난데없는 인간들의 침략으로 하루아침에 살아갈 터전을 잃고 유랑하는 나비족. 부족장의 딸 네이티리는 피난 중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만다. 부족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을 물려받은 네이티리는 막중한 책임감과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 네이티리의 약혼자였던 쯔테이는 나비족의 전사들을 이끌어 인간들과의 총력전을 준비한다. 그러나 그들의 화살과 창만으로는 인간들의 최첨단 무기와 맞서기에 역부족이다. 나비족의 비상 캠프에는 결전의 비장함보다는 갈데없는 난민촌의 절망감이 깃든다. 이때 멀리서 토루크의 괴성이 들려오자 비상 캠프에는 더욱 끔찍한 공포가 엄습한다. 거대한 토루크의 등위에는 바로 나비족의 배신자였던 제이크가 타고 있었다.
토루크의 등위에서 내려와 보무당당하게 걸어오는 제이크를 보자 나비족 사람들은 마치 ‘메시아의 현현’을 본 것처럼 압도된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제이크를 ‘토루크 막토’라고 부른다. 그들 앞에 나타난 토루크 막토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 네이티리의 눈에서도 가눌 수 없는 그리움과 놀라움과 깨달음의 눈빛이 동시에 일렁인다. 저것이 바로 에이와의 계시였던가. 내 손으로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활시위를 놓게 만든 에이와의 마음이 저것이었나. 네이티리는 다시 그를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운명에 감사한다. “제이크, 나는 너무 두려웠어. 부족의 안전이……. 이젠 아냐. 두렵지 않아.” 그리고 마음을 다해 말한다. “I see you…….” 그것은 단지 ‘당신을 본다’는 의미를 넘어 당신의 영혼과 나의 영혼이 완전히 샤헤일루(교감)를 이루는 순간의 언어적 표현이다.
이제 아바타와 조종사 사이의 ‘링크’란 필요 없게 되었다. 아바타와 원본 사이의 구분도 없어져버렸다. 네이티리가 완전한 믿음의 눈빛으로 제이크를 바라보는 순간, 그녀가 “I see you”라고 말하는 순간. 그녀는 인간 사회가 부여한 정체성으로 만들어진 ‘제이크’가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너를 너 자체로 본다. 인간이었던 너, 문명의 도구였던 너, 문명의 낙오자였던 너, 스파이였던 너, 불구자였던 너, 그 모두를 잊고 나만을 바라보는 너를, 내가 이렇게 보고 있다. 온 힘을 다해. 온 마음을 다해. “I see you”는 닳고 닳은 “I love you”보다 훨씬 깊고 넓은 파장으로 관객의 가슴 속에 새로운 감성의 우물을 파헤친다. 누군가 그런 눈빛으로 “I see you”를 속삭여준다면, 우리는 정말이지 그 눈빛에 기꺼이 익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
|
|
인간은 자신이 창조계에서 미천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과, 창조계가 자신보다 더 풍부하다는 것과, 그 어떤 미학적인 창작도 광물이나 곤충이나 꽃이 제공하는 미학적 창작과는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 풍뎅이, 나비는 우리가 틴토레토나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보는 것과 동일한 열렬하고 주의 깊은 관찰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신선함을 잃어버려, 더 이상 제대로 볼 줄을 모릅니다.
- 디디에 에리봉 대담, 송태현 옮김,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강, 2003, 268쪽.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