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두려워하지 마, 내가 너의 거울이 되어줄게 (3)
네이티리 : 이크란은 평생 동안 교감이 이루어진 단 한 명의 전사와 날아가는 새야. 진정한 전사가 되려면 이크란과 전사가 서로를 선택해야 해.
제이크 : 언제?
네이티리 : 때가 되면…….
제이크 : (네이티리 앞에서 날렵하고 확신에 찬 동작으로 짐승을 사냥하며, 죽어가는 짐승을 향해 속삭인다.) 미안해……. 에이와 여신이 네 영혼을 거둘 거야. 네 몸은 여기 나와 이곳 사람들의 일부가 될 거야.
네이티리 : (대견하는 눈빛으로 제이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제 때가 되었구나.
제이크는 아름다운 네이티리의 노란 눈동자를 통해 이전에는 결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바라본다. 판도라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공격적인 호기심으로 자연을 바라보았던 제이크는 조금만 낯선 동물이라면 거침없이 총을 겨누곤 했다. 네이티리가 자주 하는 말 중에 ‘샤헤일루’(교감)라는 말이 있다. 제이크는 네이티리를 통해 언어가 아니어도 온몸으로 자연과 교신할 방법을 배운다. 네이티리는 나비족에게 가장 친밀한 동물인 ‘팔레이’를 ‘교통수단’이 아니라 ‘그녀’라고 표현하며, 인간의 머리카락을 통해 동물과 ‘샤헤일루’를 이루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녀의 심장 박동을 느껴봐. 그녀의 숨소리를 느껴봐. 그녀의 강인한 다리를 느껴봐.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야기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이제 ‘때’가 왔다. 제이크에게는 드디어 오직 그에게만 교감하는 멋진 이크란이 생겼고, 나비족은 제이크를 완전한 ‘형제’로서 인정한다. 제이크는 나비족의 삶이라는 거대한 거울을 통해 한 번도 비춰보지 못한 자신의 전신을 비춰본다. 인간에게 알려진 우주에서 가장 혹독한 행성이었던 판도라는 이제 사랑하는 네이티리와 함께 살아가고 싶은, 더없이 아름다운 삶의 터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제이크는 아바타 프로그램이 ‘과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과학자가 아니긴 하지만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나는 지금 과학을 하고 있다(I'm doing science)’라고 믿고 있었다. 그 과학의 일부가 바로 아바타를 ‘조종’하는 것이었다. 제이크는 이제 더 이상 ‘아바타 드라이버’에 만족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의 임무는 아바타를 조종하며 느낀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점점 ‘기록’할 수도 ‘보고’할 수도 없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영혼의 파동을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이 죽인 동물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느낀 한없는 연민과 고마움을, 자신이 사랑하기 시작한 소녀의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아바타 프로그램의 ‘과학적’ 보고서에 담을 수는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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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는 남북아메리카 양 대륙에서 기록된 수천 종류의 신화를 변형군으로서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하나의 신화가 마치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볼레로>처럼 아주 조금씩 스스로를 변형시켜 가다가 커다란 전체성을 가진 음악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마존의 인디언의 신화가 조금씩 스스로를 변형시켜 가다가 마침내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로 모습을 드러내는 식입니다.
-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2005, 동아시아,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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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는 네이티리와 아름다운 ‘첫날밤’을 보낸 후 숲 속에서 잠든다. 제이크가 아직 아바타와 ‘링크’도 시작하지 않은 새벽에, 쿼리치 일당은 예고도 없이 판도라 행성에 선제공격을 가한다. 아바타와 링크가 되지 않아 눈도 못 뜨고 몸도 마비 상태인 제이크. 영문을 모르는 네이티리는 필사적으로 제이크를 깨우려 하지만 제이크는 아직 그레이스 박사와 ‘인간의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다. 가까스로 링크가 되자마자, 거대한 포크레인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아름다운 ‘영혼의 나무’를 바라본 제이크는 분노에 치를 떤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포크레인 위로 올라가 카메라(이제는 ‘적’이 되어버린 인간들의 ‘눈’의 역할을 하는)를 부숴버린다. 제이크가 더 이상 아바타 조종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아바타 그 자체, 아니 나비족의 일원이 되는 순간이다. 아바타 프로그램의 동료에게는 ‘배신자’가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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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자들이여, 파라나(브라질 남부에 있는 주)에 캠프를 쳐보시오. 그곳이 아니라면 캠프를 치지 말도록 하시오. 당신들이 지녔던 기름기 많은 종이들이나 빈 맥주병, 그리고 내버린 깡통들을 유럽의 마지막 흔적으로서 남겨 두시오. 그곳은 당신들이 텐트 치기에 적합한 장소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개척 지역을 벗어나거나 그곳이 황폐해질 때까지는 격류들이 자유스럽게 흰 거품을 일으키며 현무암으로 된 자줏빛의 산허리로 흘러내리도록 내버려 두시오. 만지기에는 너무 날카롭고 차가운 화산성 이끼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도록 하시오. 그리고 당신이 사람들이 살지 않는 초원을 처음 발견하였거나, 안개가 몹시 짙은 침엽수림의 숲속에 가까이 가게 되었을 때는 결코 더 이상 들어가지 마시오.
- 레비스트로스, 박옥줄 역, <슬픈 열대>, 삼성출판사,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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