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두려워하지 마, 내가 너의 거울이 되어줄게 (2)
파커 : 도대체 나비족이 뭘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어. 학교도 지어주고 영어도 가르쳐 주었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고.
그레이스 : 그들에게 총질을 해대니까 그렇죠!
쿼리치 대령 : (……) 파란 원숭이놈들 마음을 움직일 당근을 알아봐!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채찍을 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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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의 동물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특히 동물을 죽이는 장면에서 클라이맥스를 맞습니다. 이때 인간에게는 최고의 경의와 성실함을 갖춘 태도가 요구됩니다. 이때 인간에게는 최고의 경의와 성실함을 갖춘 태도가 요구됩니다. (……) 동물을 공격하기 전에 사냥꾼이 끊임없이 변명하는 광경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동물이 지금 자신에게 가해지고 있는 공격을 납득해주어서 서로의 ‘양해’ 하에 죽는 것이 바람직했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대등하게 대결해 납득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동물이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계속 설득하는 겁니다.
-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 <곰에서 왕으로>, 동아시아, 2005, 116~11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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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인디언의 생존을 위협한 것은 단지 개척자들의 총칼만이 아니었다. 개척자들이 ‘선물’의 명목으로 주었던 모든 것들, 설탕과 커피를 비롯한 각종 문명의 기호품들, 특히 ‘위스키’야말로 인디언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위스키는 자연과 함께 살아오던 인디언의 삶을 지켜야 한다는 저항의 감각마저 마비시켰다. 알코올중독은 오랫동안 자연과 더불어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살아왔던 인디언 부족의 삶을 황폐화시켰다. 식민주의자들이 ‘원조’의 명목으로, 혹은 ‘외교’의 명목으로 제공하는 모든 ‘선물’들은 치명적인 중독성이 있었다. 물질에 대한 필요로 인간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되돌리기 힘든 영혼의 중독성.
<아바타>의 나비족은 결코 ‘하늘의 사람들’(인간들)이 주는 미끼에 중독되지 않으려 했다. 인간들이 나비족에게 제공하려 한 미끼는 학교, 도로, 병원 같은 문명의 상징들이었다. 그런 ‘원조’는 나비족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나비족은 ‘원조’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그림자를 간파했다. 그들은 자연과 나비족, 그 둘만으로도 충분했던 판도라의 삶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아바타 프로그램의 책임자 파커와 쿼리치 대령은 ‘언옵타늄’을 얻을 수 있다면 나비족의 삶의 터전을 얼마든지 빼앗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정한 협상기한 3개월은 거의 끝나가고, 이제 정말 당근이 아닌 채찍을 휘두를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온다. 양쪽의 입장을 모두 잘 이해하게 된 제이크는 점점 더 나비족의 생존 쪽으로 기울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제이크는 나비족과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고 느낀다.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지금-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오랫동안 판도라의 생태계를 연구해왔던 그레이스 박사 또한 나비족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녀는 나비족에게 영어를 가르쳐준 교사이기도 했다. 그레이스는 ‘채찍’도 ‘당근’도 아닌 ‘마음’으로 나비족에게 다가가야 함을 알고 있다. 그레이스는 과학의 이름으로 판도라를 연구하기 시작했지만 나비족을 통해 과학의 이름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들이 숭배하는 ‘신성한 나무’에 깃든 힘을. 그것은 단지 미신이 아니라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거대한 과학임을. 판도라에서는 더 이상 차가운 과학과 뜨거운 신화가 분리되지 않았다.
그레이스 : 그 나무들은 신성한 나무예요. 미신이 아니에요. 숲의 생태학을 말하는 거예요. 나무들의 뿌리가 전기화학적으로 소통하지. 한 그루의 나무가 1만 그루와 연결된 거예요. 판도라에는 1조 그루가 넘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들은 인간의 두뇌보다 더 촘촘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종의 네트워크죠. 나비족은 이 나무들의 데이터와 메모리를 이용할 줄 아는 거예요. 진짜 자원은 땅속에 있는 언옵타늄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언제나 존재하는 자연 속에 있다고요.
파커 : (온 마음을 다해 말하는 그레이스의 눈빛을 조롱하며 차갑게 뇌까린다.) 그건 그냥 평범한 나무일 뿐이야.
파쿼와 쿼리치 대령을 비롯한 대부분의 인간은 ‘평범한 나무’로 보이는 신성한 나무의 힘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연을 에너지원으로 생각하는 현대인들은 ‘고정된 에너지원’을 소유하고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다고 믿는다. 네이티리는 끊임없이 제이크를 가르친다. 그런 게 아니라고. 우주는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우리는 잠시 그 에너지를 빌려서 쓰는 것일 뿐. 모든 에너지는 잠시 빌린 것이며 언젠가는 다시 돌려줘야 한다고. 제이크는 네이티리의 가르침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다. 동물들을 단지 먹기 위해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의 육신을 빌려 잠시 우리는 이 땅에 스치듯 살아갈 것이고 그들이 돌아갈 곳이 에이와 여신의 품인 것처럼, 인간도 언젠가는 에이와의 품에 안기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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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들어선 이후에도 유독 곰에 대해서는 총의 사용을 금지하는 사냥꾼들이 많았습니다. 전통적인 활이나 화살의 사용을 권했으며, 때로는 쇠로 만든 화살촉마저 금지해 신석기시대처럼 돌로 된 화살촉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무기에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냥꾼과의 사이에 매우 강력한 공감에 의한 유대관계가 형성됩니다. 무기가 생명이 있는 물체와 같다면 동물들도 그것을 납득하고 받아들여 줄 거라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여하튼 옛날에는 사냥이 위엄을 갖춘 일종의 결투였던 셈입니다. 왜냐하면 언어의 원초적인 형태가 시였으며 교환의 시작이 증여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상태에서는 모든 싸움이 결투에 의해 정화되어가기 때문입니다.
-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 <곰에서 왕으로>, 동아시아, 2005,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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