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영화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⑥

 

 6. 나는 왜 ‘너’일 수 없는가 (2)

   
 

당신은 몰라요. 당신은 땅을 소유할 수 있을 거라 하지만 그건 땅을 죽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일 뿐. 하지만 난 생명이 있고 영혼이 있고 이름이 있는 바위와 나무와 동물을 알아요. (……) 달을 보고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았나요? 야생 고양이에게 왜 우느냐고 물어봤어요? 산의 목소리에 맞춰 합창할 수 있나요? 바람의 색깔을 칠할 수 있나요? (……) 한 번만이라도 얼마짜리인가 생각지 말고 그냥 주위의 풍요로움을 즐겨보세요. (……) 바람의 색깔을 칠할 수 있어야 해요. 아무리 땅을 가진다 해도 바람의 색깔을 칠할 수 없으면, 그건 가진 게 아니에요.
- <포카혼타스> 주제가 ‘Colors of the wind’ 중에서

 
   

    

   원주민 여성에 대한 신비주의와 세련된 오리엔탈리즘, 미국인이 학살한 인디언에 대한 ‘불편하지 않은 정도의 죄책감’이 곁들여진 ‘가족용’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 인디언 학살에 대한 미국인의 집단적 죄책감은 인디언 소녀 포카혼타스가 멋진 백인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잠정적으로 봉인되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학살당한 원주민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살아남아 백인들의 집단 무의식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인디언들의 신화와 민담에 스며든 지혜는 다양한 형태의 출판물과 영상물로 만들어져 전 세계적으로 ‘수출’되고, 인디언의 가르침은 우울증에 빠진 현대인의 멘토가 되고 있다. 영화 <아바타>에서 묘사되는 나비족의 삶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생활상과 사유의 패턴과 매우 유사하다. 전 세계에 상영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아바타>의 관객들은 나비족을 보며 저마다 ‘아직 끝나지 않는 원주민 학살’을 생각할 것이다. 



   쿼리치 대령은 제이크를 통한 나비족의 정보 수집이 거의 끝났다는 판단 아래 제이크를 철수시키려 한다. 쿼리치는 제이크가 더 이상 ‘아바타’가 되어 나비족의 삶에 침투할 필요가 없다는 통보를 한다. 이미 ‘원본’보다 ‘아바타’의 삶에 매혹을 느끼기 시작한 제이크는 아직 자신이 할 일이 더 남았다고 말한다. 이제 곧 나비족의 ‘성인식’에 참여할 수 있으니, 그렇게 되면 자신은 나비족과 협상하는 데 훨씬 유리한 위치를 점령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는 나비족과 협상한다는 공적인 업무보다 ‘나비족의 삶’ 자체에 대한 사적인 매혹을 떨쳐내기 힘들다는 것을. 그는 마침내 평생 단 한 명의 사람만을 자신의 등에 태운다는 거대한 새 이크란을 길들이는 데 성공한다. 자신을 죽이려고 덤벼드는 이크란을 제압하고 오직 자신만의 이크란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는 순간, 제이크는 ‘나비족’의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성공적으로 치러낸다. 
 




   제이크의 주요 무기는 이제 ‘총’에서 ‘활’로 바뀌었다. 그는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문명인의 전투보다 온몸의 근육과 오감을 작동시키는 나비족의 전투에 매혹을 느낀다. 그는 이제 해병대의 추억보다 나비족의 생활에 더욱 밀착된 존재가 되었다. 제이크는 이제 점점 ‘꿈’에서 깨어나기가 싫어진다. 현실로 돌아오면 움직일 수도 잘라낼 수도 없는 그의 초라한 다리가 기다리고 있다. 명령만을 일삼고 복종만을 강요하는 쿼리치 대령이 있다. 원주민의 생존권을 빼앗아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인간들의 탐욕이 있다.
   그리고 아바타의 삶 속에서는 무엇보다도 증오와 분노로 얼어붙은 제이크의 마음을 녹여준 네이티리가 있다. 그가 대열에서 낙오되어 판도라의 정글에 혼자 남았을 때 그를 살려주었던 네이티리. ‘인간’과 ‘인간 이하’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제이크를 ‘인간’과 ‘나비족’ 사이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게 한 네이티리. 그는 네이티리의 노란 눈동자가 담은 아름다운 판도라의 삶에 이미 행복하게 감염된 상태다. 



   제이크는 지옥이 있을 거라 믿었던 곳에서 낙원을 발견했고, 자신의 적들이라 믿었던 곳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를 발견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적 사고의 힘은 ‘대립의 인식’으로부터 ‘대립의 중재’로 나아가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신화의 목적은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논리적 모델을 제공하는 데 있다고도 말했다. 제이크는 이제 지구인과 나비족의 대립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 성공했다. 대립을 ‘중재’하는 것은 더 큰 에너지를 요구한다. 과연 아직 자신의 역할에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는 제이크가 이 엄청난 신화적 미션을 수행해낼 수 있을까.   




   
   에리봉 : 당신의 <신화론>이 막스 에른스트의 콜라주처럼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죠!
 레비스트로스 : 막스 에른스트가 그의 콜라주들 속에서 실행하기를 원했던 것과 같은, 거칠고 돌발적인 비교rapproachments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운 것은 바로 이들 초현실주의자들로부터입니다. (……) 막스 에른스트는 타문화에서, 다시 말해 19세기 고문서의 문화에서 차용해온 이미지들을 사용해 개인적인 신화들을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범상한 눈으로 보았을 때 이들 이미지들이 의미했던 것 이상의 의미를 이끌어냈죠. <신화론> 속에서, 나도 신화적인 재료를 오려내어 그 단편들을 재구성해 거기서 더 많은 의미가 솟아오르도록 했어요.
 - 디디에 에리봉 대담,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강, 2003,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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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lsend 2010-01-30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대립의 인식으로부터 대립의 중재로! 밑줄 쫘악! 돼지꼬리 땡야~~^^

doingnow 2010-02-0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 정여울님 책 샀어요!ㅎㅎ 블로그로 봐서 후다닥 지나갔던 이야기들을 책으로 만나서 완전 반가웠답니다! 그런데 언제나 머릿글이 제일 반가운 것은 님의 진짜 이야기가 들어있어 그런것 같아요!ㅎㅎ 암튼 언제나 화이팅이에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