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 ⑥

  

6.  기억을 지배하는 인간  vs  인간을 지배하는 기억 (1)

   
 

 호글런드는 아내를 간병하다가 잠시 침대를 떠나 휴식을 취했다. 침대로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서 오랫동안 어디에 가 있었느냐는 심한 불평을 들었다. 사실 그가 자리를 비운 시간은 아주 짧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경과한 시간은 그보다 아내에게 더 길게, 그것도 실제보다 더욱 길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 이유는 뭘까? 그러잖아도 생리학에 관심이 있었던 호글런드는 ‘화학적 시계’에 생각이 미쳤다. 그것은 두뇌나 신체 속에서 시간의 경과를 판단하는 데 사용되는 모종의 화학적 과정을 가리킨다. 물리화학의 법칙에 따르면, 모든 화학적 과정은 열을 받을 경우 속도가 증가하게 마련이므로 호글런드는 아내의 시계가 높은 체온에 의해 열을 받아 평소보다 훨씬 더 빨리 감으로써 그가 비운  시간을 아내가 실제보다 더 길게 생각했던 것이라고 추론했다.  
   

- 스튜어트 매크리디 엮음, 남경태 역, <시간의 발견>, 휴머니스트, 2002, 259쪽.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앓고 있던 아내를 두고 별생각 없이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돌아오니, 아내는 하염없는 기다림에 지쳐, 남편에게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렇듯 한 침대를 쓰는 부부에게도 시간은 완전히 다른 속도와 다른 뉘앙스로 흘러가고 있다. 아내의 ‘높은 체온’이라는 물리적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너무 몸이 아프고 힘들어 잠시도 남편과 떨어져 있기 싫었던 아내의 절박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빈방에서 홀로 끙끙 앓을 때처럼 더디고 고통스럽게 가는 시간이 있는가.
   우리는 주관적 시간 · 객관적 시간, 심리적 시간 · 물리적 시간이 각각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살아 있는 몸과 마음을 지닌 인간에게 시간은 늘 주관적이고 늘 심리적일 수밖에 없다. 마코토가 온몸을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몸 구석구석에 타박상을 입어가면서 깨달았던 시간도 바로 이런 시간, ‘우리 몸과 마음의 연금술이 빚어낸 시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마코토는 내 맘대로 리와인드하고 리플레이할 수 있는 시간 덕분에 쪽지 시험도 잘 보고, 가정 시간에 자리를 바꿔 ‘망신살’도 면하고(마코토가 피한 재난은 엉뚱한 남학생이 대신 뒤집어쓰게 되었다), 노래방 러닝타임도 늘이고, 동생이 먹어버린 푸딩도 ‘새것’으로 되찾았지만, ‘내가 바꿔버린 기억’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 입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마코토는 ‘사소한’ 일에만 타임 리프를 활용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 가정 시간에 자신의 실수를 떠넘긴 바로 그 ‘어벙한’ 남학생이 마코토에 대한 복수심으로 소화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마코토의 실수를 대신 뒤집어쓴 그 남학생은 (미리 일어날 사건을 예견하고) ‘자리를 바꿔달라’라고 요구한 마코토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다. “마코토, 너 왜 그때 나한테 튀김을 하라고 한 거야?” “아니, 그게……. 설마 그렇게 될 줄은 몰랐지.” 마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될 줄 알았기 때문에’ 그 남학생과 자리를 바꿔치기했던 것이다. 마코토는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잔뜩 주눅이 든다. 게다가 치아키가 자신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이리저리 치아키를 피해 다니다가 어느새 치아키와 소원해질 기미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내 맘대로 맘껏 오려붙일 수 있는 기억’에 대한 마코토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타임 리프의 최대 장점은 ‘기억을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이었는데, 마코토는 ‘완전한 나만의 기억’도 ‘현재로 고정할 수 있는 기억’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시간을 지배함으로써 기억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마코토의 상큼한 계산은 들어맞지 않는다. 늘 마코토의 고민을 조용히 들어주던 이모는 웃으며 말한다. “일단 사귀고 나서 아니다 싶으면 사귀기 전으로 돌아가지? 너라면 할 수 있잖아.” 그런 일 절대 없을 거라며 얼굴을 붉히는 마코토. 이모는 아쉽다는 듯 치아키의 편을 들어준다. “그래? 없던 일로 해버렸구나. 치아키 너무 불쌍하다. 힘들게 고백했을 텐데. 하긴 본인은 눈치도 못 채고 있겠네.” 이모가 치아키에 대해 이것저것 묻자 마코토는 ‘치아키와 별로 안 친하다’며 자기도 모르게 시치미를 뚝 뗀다. 치아키로 인해 생긴 미묘한 감정의 혼돈 때문에 치아키랑 그토록 매일 붙어 다니면서도 ‘안 친하다’고 둘러대는 마코토.  

   무슨 일이든 이모에게 다 털어놓고, 굳이 털어놓지 않아도 얼굴에 온통 감정이 낱낱이 ‘필기’되어 있는 투명 소녀 마코토에게, 이제 비밀이 생겼다. 내가 타임 리프를 했다고 해서 나에게 고백한 치아키의 진심까지도 사라져버린 걸까. 치아키의 마음을 받아주지도 못했는데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이 기묘한 상실감은 뭘까. 도대체 타임 리프란 무엇일까.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면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 노력은 헛수고일까. 시간을 되돌려도 내 기억이 축적되는 한 그렇게 남몰래 쌓인 기억은 내 영혼에 날카로운 흔적을 남긴다.
   저장하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들은 애초의 내 의도와 달리 내 등 뒤에서 배회하며 나도 모르는 또 하나의 나를 만들고 있다. 타임 리프로 인해 나는 기억을 자유자재로 편집하여 내가 감독한 나만의 ‘UCC형 기억’을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되돌리고 싶었던 바로 그 과거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내가 버린 나의 기억이 나의 등 뒤에서 내 삶을 응시하고 있다. 내가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나의 등 뒤에서, 내가 결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를 ‘공격하는’ 것만 같다.  

   
 

나는 (……)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떠올린다’고 할 때, ‘사람’이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사람에게 도래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 기억은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나에게 찾아온다. 여기서 주체는 바로 기억이다. 그리고 ‘기억’이 이와 같이 갑자기 도래하는 것에 대해 ‘나’는 철저하게 무력하며 수동적이게 된다. 바꿔 말하면 ‘기억’이란 때때로 나에게는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나의 신체에 습격해 오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건은 기억 속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현재를 살아간다. 그렇다면 기억의 회귀란 근원적인 폭력성을 숨기고 있는 게 된다.   


 - 오카마리, 김병구 역, <기억 서사>, 소명출판, 2004, 48~49쪽.

 
   

   치아키가 혹시나 고백을 할까 봐, 아니 이미 ‘나의 기억’ 속에서는 고백해버린 치아키를 피하느라, 치아키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대하는 마코토. 마코토는 타임 리프를 하게 되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동떨어져 고립된 시간’이라는 또 하나의 시간적 차원을 경험하게 된다. 갑자기 ‘마코토스러운’ 명랑함과 천진함이 사라지자 치아키는 마코토를 수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들이 잠시 멀어진 틈을 타 마코토의 친구 유리는 치아키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
   이상하다. 분명히 치아키와는 친구 이상의 사이가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는데, 막상 치아키가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자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밀려든다. 가져본 적도 없는 것을 잃어버리고, 사귀지도 못한 채 이별하는, 시작조차 없이 끝나버리는 이상한 감정.
   정말 치아키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몇 번이나 나에게 사귀자고, 진심이라고 고백하던 그 진지한 표정은 그럼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치아키의 고백을 한사코 듣지 않으려 요리조리 피해 다녔던 나 자신은 과연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마코토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상실감에 비틀거리고, 그렇게 ‘비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에 난입하는 기억들의 난투극으로 인해 그토록 단순하던 그녀의 ‘뇌 구조’가 복잡하게 흐트러진다.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려던 노력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무의식에 소중하게 둥지를 틀어버린 바로 그 시간을 잃어버리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와버렸다. 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 채 흘려버린, 아니 억지로 삭제해버린 그 시간은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나로 인해 시간을 도둑맞은 그 남학생의 상처받은 시간은 또 어떻게 되돌려야 할까. 

 

   
 

잃어버린 시간, 다시 말해 시간의 흐름, 존재했던 것들의 소멸, 존재들의 변화에 대해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기호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와 친숙했던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는 뜻밖의 계시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윌에게 익숙하지 않게 되어버린 그 사람들의 얼굴은 시간의 기호들과 시간의 영향을 순수한 상태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사람들의 얼굴 특성을 변질시키고 다른 특성들을 늘리거나 또 무르게 하고 부숴버린다. 시간은 그 자체로는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우리 앞에 나타나기 위해 육체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육체들을 만나기만 하면 어디서든 그들을 붙잡아 그 위에 자신의 환등기를 비춘다. 
  

- 들뢰즈, 서동욱 · 이충민 역, <프루스트와 기호들>, 민음사, 2004,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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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hurts 2009-10-14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져보지도 못한 걸 잃어버리고, 만나지도 못했는데 헤어지고,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끝나버리는 첫사랑. 가질 수 없어서 되찾을 수도 없는 시간들. 맞아요, 그땐 그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