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③

 

 3. 그는 우리와 다르다, 그 다름은 무엇일까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평균적인, 공동의 체험’을 강요하는 것이 지금까지 인간을 길들여온 가장 심각한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한국 속담을 듣는다면 아마도 니체는 치를 떨지 않을까. 모난 것이 과연 ‘나쁜 것’인가, 그 ‘정’은 도대체 누가 내려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모난 돌이 정 맞는 현실이 ‘옳다’는 것인가……. 니체는 아마도 수없는 질문을 퍼부으며 모난 돌을 ‘다른 돌들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는 비겁한 권력의 맨얼굴을 파헤치지 않을까. 니체가 혐오한 약자의 근성은 바로 ‘무리지어’ 다니며 ‘우리가 표준이야, 우리가 대세야’라 외치는 패거리의 행태였다. 강한 자는 무리지어 다닐 필요가 없다. 강한 자는 자기 안에서 자신의 윤리를 창조해낸다. 결코 타인에게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자,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자연스럽게’ 행해도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약자의 무리들은 강한 자의 바로 이런 점을 증오한다. 굳이 타인의 이해를 구하지 않고, 기꺼이 은둔하기를 선택하며, 무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자의 ‘홀로 있음’을, 그들은 결코 내버려두지 않는다. 


▲뭉크, <니체의 초상>, 1906. 

   
 

좀더 유사하고 좀더 평범한 인간들은 언제나 유리한 입장에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지만, 좀더 선택된 자, 좀더 예민한 자, 좀더 희귀한 자, 좀더 이해하기 어려운 자들은 쉽게 고립되기 쉬우며, 따로따로 떨어져 있어 재난을 당하기도 쉽고 거의 번식하지도 못한다. (……) 유사한 것, 일상적인 것, 평균적인 것, 무리적인 것으로 ―비속한 것으로!― 인간을 다시 교육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거대한 저항력을 불러일으켜야만 한다. 


 - 니체, 김정현 역, <도덕의 계보>, 책세상, 291쪽. 

 
   
   레드(모건 프리먼)를 매혹시킨 앤디(팀 로빈스)의 매력도 바로 그 ‘홀로 있음’이었다. 앤디는 좀처럼 타인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고, 말을 해도 두 단어 이상 입을 떼지 않음으로써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않았다. “앤디 듀프레인은 죄수들과 친하지는 않았습니다. 감옥 생활에 적응하려다 보니 그런 거라 생각했죠. 한 달이 지나자 앤디는 두 단어 이상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말을 건 첫번째 상대는 바로 저였습니다.” 앤디가 자신을 소개하며 다가오자 레드는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아내를 살해한 은행가시군. 왜 죽였소?” 앤디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한다. “난 안 죽였어요.”

   레드는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당신도 똑같군. 여기 있는 죄수 모두 자기는 무죄라고 생각하지.” 레드는 운동장에서 산책하는 죄수 중 한 명을 무작위로 골라 질문한다. “어이, 자네 죄명이 뭐지?” 죄수는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흥, 무슨 죄? 무능한 변호사 때문이지.” 앤디는 굳이 변명하지 않고 침묵한다. 레드는 앤디의 심성을 떠보려는 듯이 질문을 이어나간다. “자네, 거만하다고 소문났던데. 자네는 우리들과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야?” 앤디는 형형한 눈빛으로 레드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런 식의 질문 자체가 부당하다는 듯이. “당신 생각은 어때요?” 레드는 인정한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앤디는 물품 공급원 레드에게 아주 작은 돌망치 하나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은 암석 수집광이었는데, 그 취미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레드는 뭐든지 구해줄 수는 있지만 ‘흉기’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앤디는 여기엔 자신의 ‘적’이 없다며 그 작은 망치를 흉기로 쓸 일은 없다고 말한다. 레드는 앤디에게 경고한다. “적이 없다고? 두고 보자고. 자네에게 보그스 일당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아. 조심해.” 앤디는 순진한 눈빛으로 “난 게이가 아니라고 말하면 되죠.”라고 대답한다. 레드는 심각한 표정으로 경고의 강도를 높인다. “저들은 인간도 아니라고. 저들의 머릿속에서는 ‘그 짓’밖에 든 것이 없어. 만일 내가 너라면 뒤통수에도 눈을 달고 다닐 거야.” 레드는 절대로 망치를 ‘흉기’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 불시 검열 때 걸리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임을 분명히 해둔다. “그런데 당신을 왜 ‘레드’라고 부르죠?” 레드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내가 아일랜드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자신의 인종적 특수성이 자신과 다른 죄수들 간에 ‘거리’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레드의 ‘다름’은 피부색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에 있다.

   레드는 단 한 번의 대화만으로, 앤디의 ‘다름’을 알아차렸다. 앤디는 거만한 것이 아니라 감옥 생활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죄수들, 자신이 ‘열등한 무리’로 전락했음을 인정하는 다른 죄수들과 ‘다른’ 사람일 뿐임을. “왜 사람들이 그를 거만하다고 수군거렸는지를, 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듀프레인은 말수가 적었습니다. 걸음걸이와 말투도 달랐습니다. 세상사에는 초연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마치 이 감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투명코트를 입은 것 같았습니다. 네,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그가 좋았습니다.” 이 감옥의 ‘죄수다움’을 만드는 온갖 폭력과 욕설과 굴욕으로부터 앤디를 지켜주는 ‘투명코트’를 알아본 것도 레드뿐이었다. 그 투명코트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무리의 도덕으로부터의 자유, 그 어떤 외부적 강제와 타인의 시선에도 휘둘리지 않는 무한한 자유의 에너지가 아니었을까. 앤디 앞에는 이 아름다운 투명코트의 강도를 시험하는 수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앤디를 향한 보그스의 끈적끈적한 시선은 그 첫번째 난관이었다.

   보그스는 샤워장에서 앤디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며 추파를 던진다. “이봐, 너 아직 싱싱하지? 아직 아무도 안 건드렸지? 우린 모두 친구가 필요해. 네 친구가 돼줄게. 짜식, 좋으면서 내숭 떨기는!” 앤디는 뱀처럼 감겨오는 보그스의 시선을 무심하게 떨쳐낸다. 그러나 사건은 예고 없이 닥쳐왔다. 세탁장에서 노역을 하던 앤디는 가루비누가 떨어졌다는 동료의 말에 묵묵히 창고로 발걸음을 향한다. 창고에는 이미 계획하고 있던 듯 보그스 일당들이 앤디를 노리고 있었다. 그들은 떼 지어 덤벼들어 한 사람을 겁탈하려 한다. 앤디는 가루비누를 움켜쥔 채 “이건 눈을 멀게 할 수도 있어.”라고 위협해보지만 사지를 붙들고 늘어지는 여러 명의 건장한 남자를 혼자서 당해낼 수가 없다.
    보그스는 역겨운 표정으로 앤디의 저항을 즐긴다. “그래, 덤벼봐. 반항하는 게 더 즐거우니까.” 레드의 초연한 듯한 내레이션은 계속 이어진다. “듀프레인이 훌륭한 싸움꾼이어서 무사히 풀려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그러고 싶지만, 감옥은 동화의 세계가 아닙니다. 듀프레인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우리 모두는 알 수 있었죠. (……) 종종 듀프레인은 얼굴에 멍 자국이 가득한 채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때로는 그들을 물리치기도 했지만 때로는 아니었습니다. (……) 처음 2년은 듀프레인에게는 최악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생활이 계속됐다면 듀프레인은 완전히 망가졌을 것입니다.” 

   앤디는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 고통을 끌어안고 침묵한다. 그는 어떤 무리와도 섞이지 않고 무리 속에서도 홀로 은둔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는 구원의 손길을 자신의 바깥에서 찾지 않는다. 어떤 패거리의 집단적 폭력도 더럽힐 수 없는 앤디의 투명코트는 과연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앤디는 분명 엄청나게 ‘모난 돌’이지만 자신에게 날아오는 망치질을 피하지 않는다. 그는 보그스 일당으로부터는 성폭행을 당하고, 감옥의 다른 죄수들로부터는 ‘거만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한다. 그러나 그는 모난 돌에게 가해지는 망치질을 당하면서도 자기 안의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감옥의 교화’로 인해 온순하게 길들여지지도, 그의 육체를 탐하는 무리의 폭력으로 인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절하하지도 않을 것이다. 강자는 끊임없이 각자 흩어지려 하고 약자는 집요하게 서로 무리 지으려 한다. 니체가 말하는 강자, 혹은 고귀한 자는 자신의 가치를 외부에 의탁하지 않는 자,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자다. 

   
 

고귀한 부류의 인간은 스스로를 가치를 결정하는 자라고 느낀다. 그에게는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는 “나에게 해로운 것은 그 자체로 해로운 것이다”라고 판단한다. 그는 대체로 자신을 사물에 처음으로 영예를 부여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는 가치를 창조하는 자이다. 그는 자신의 입장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존중한다. 이러한 도덕은 자기 예찬이다. 그 전경에는 충만한 감정이 넘쳐흐르고자 하는 힘의 느낌, 고도로 긴장된 행복과 베풀어주고 싶어 하는 부유함의 의식이 있다. 고귀한 인간 역시 불행한 사람을 돕는다. 그러나 거의 동정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넘치는 힘이 낳은 충동에서 돕는다.  

- 니체, 김정현 역, <선악의 저편>, 책세상, 2002, 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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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ky way 2009-09-10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강자는 끊임없이 서로 흩어지려 하고, 약자는 집요하게 서로 무리지으려 한다니, 순간 움찔하네요, 쿡ㅠㅠ ㅎㅎ

doingnow12 2009-09-10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표준에 맞춰 요리콩 조리콩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는 꽃가루같은 사람이 저라 저도 움찔..ㅋㅋ

맨손체조 2009-09-1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고귀한 자가 되고 싶기는 하지만, 이건, 담배를 필 때도 무리지어 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