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어지기 1초쯤 전에
무라야마 유카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의 방황. 서점에서 사서 읽음. 파격적인 소재, 입체적인 캐릭터로 시선을 끌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평범한 인간을 특별하게 고찰하는 하루키의 글과 달리, 만화에 머무른 시각적 효과와 클리셰. 이것이 내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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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시내 2015-04-08 11:41   좋아요 0 | URL
일본 애니와 학원물을 좋아하는 나로선, 이런 말랑말랑한 표지와 책커버 뒤에 서술된 파격적인 내용이 호기심을 당긴다. 서점에서 반 정도 서서 읽다가 구매했다. 밤이 늦도록 읽었는데 김 빠지는 결말과, 크게 의미가 없던 내용들,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얕은 문체들에 돈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일본 문학 중에는 가볍게 읽히는 듯 하면서도 (가독성), 의미가 담긴 문장들을 (요시모토 바나나, 하루키)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있는데 이 작가는 그런 게 부족해 보였다. 읽고 나서도 남는 게 없었다.

물론 캐릭터들은 매력이 있었다. 남자 주인공 미쓰히데는 눈으로 상상하기만 해도 바다에 서핑을 하는 멋진 애니메이션 캐릭터 모습이 그려진다. 여주 에리도 일본 애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약간 백치 같으면서 때론 도발적인 소녀의 모습으로 그려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소설의 깊이가 퇴색이 된다. 그들 내면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저 겉모습만 관망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책을 덮으면 ˝아, 얘네들이 이렇게 끝냈어?˝ 이렇게 무덤덤하게 덮을 수 있다. 결국, 그들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처음 몇 장 읽고 이 작가에 대해 기대했는데 책을 덮으니 내 취향은 확실히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그래서 성에 탐닉하는 일본 고교생 소재는 좀 클리셰이기도한데 `서핑`을 하는 소년을 등장시켜 이 진부함을 상쇄하는 시도를 한다. 그 점은 참 신선했다. 근데 또 암을 앞두고 죽어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또다른 진부함을 끌어낸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청춘의 방황은 으레 있는 잔물결 같은 것이고, 죽음 앞에 인간은 무력하나 너는 그저 성실히 걸어가면 된다...라는 일본 특유의 정신이라도 각인시키고 싶었던 걸까. 비슷한 나이대를 다룬 와타야 리사의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처럼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는 건 무슨 까닭일까. 필력의 차인인가, 생각의 차이인가.

품절이라고 뜨는데 교보문고에서는 아직 팔고 있더라. 이 작가의 매력을 발견하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