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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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우에노스테이션 (2021, 개정판) by #유미리 #JRuenoekikoenguchi (2014)


“JR 우에노역 공원 출구 개찰구를 나와 횡단보도 건너편 은행나무를 둘러싼 돌담에는 늘상 노숙자들이 앉아 있다.” (13)


도쿄예대, 국립 박물관, 동물원, 미술관, 동조궁 신사....... 인간답게 살기 위한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들 속에 밉고 보기 흉한 것들이 함께 있다.


우에노 역에는 노숙자들이 있다. 골판지, 천막으로 지은 위태로운 지붕 밑에서 그들은 내일 없는 하루하루를 산다. 


그들은 이 비싼 도시가 그러지 못했을 시절부터 함께해왔다. 어쩌면 이 도시의 진짜 주인은 그들인지 모른다.


소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화려하고 고상한 도시가 숨긴 처절한 민낯, 아니 처절하게 외면받은 진짜 주인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소설의 화자는 1933년생의 모리 가즈. 그는 전쟁 중에 태어났고 전쟁이 끝난 폐허와 복구의 시대를 살았다. 


“전쟁에 져서 슬프거나 비참한 느낌보다 먹고살고 먹이고 살리는 일을 생각해야 했다.” (26)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항구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배를 타고, 바닷가에서 함박조개를 캐고, 농사를 짓고, 64년 도쿄 올림픽을 위해 육상 경기장, 야구장 등을 건설하는 막노동을 하는 동안 그는 가족과 함께 산 시간이 전부 합쳐도 일 년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사와 일밖에 모르는 착한 아내 세쓰코, 장녀 요코와 차남 고이치와 함께 제대로 나들이 한 번 한 적 없었던 남자는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서, 혹은 모든 회한을 가슴에 품은 망령이 되어서야 기억 속 슬픔을 희미하게 더듬는다.


“태워주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후회가 남았다. 그 후회는 10년 뒤 그날, 화살이 되어 내 마음을 뚫고, 지금도 꽂힌 채 빠지지 않는다.” (22)


남자의 인생, 그러니까 우에노 노숙자 누구라도 좋았을 아무개의 불행한 인생을 조명하는 유미리는 수십 년의 시간들을 교차시키며 풀어낸다.


1933년 남자가 태어난 해, 1945년 도쿄대공습, 1960년 친왕의 탄생과, 아들 고이치의 탄생, 81년 상실의 해, 2006년, 2012년……. 


우에노 선에 기대어 산 남자의 인생은 행복이라는 역을 비껴간다.


“출구야말로 내가 보고 싶은 것인데, 어둠이 내리지 않고 빛도 비치지 않는다....... 끝났는데, 끝이나지 않는다....... 끝없는 불안...... 슬픔...... 외로움....... (23)


우에노 공원은, 전쟁, 간토대지진 등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 천황이 공원으로 지정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고, 경제 고도성장기엔 북쪽 지방에서 상경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역을 오가다 결국엔 그들의 집이 되어 버린 장소다.


노숙자들은 실은 일본의 번영을 위해 희생당한 이들이고, 결국 그 대가는 우에노 역의 노숙이었다. 


언제든 청소라는 명목으로 ‘강제 퇴거’의 불안을 떠안은 그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이 소설은 사회파 소설이다. 그러나 단단한 문체라기보단 몽환적이고 시적인 문체, 연극적인 요소, 그리고 교차하면서 오버랩되는 행인들의 대화들, 시대 표기 없이 상념처럼 불쑥 끼어드는 에피소드들이 난해하게 읽히는 편이다.


작가 유미리는 재일교포이지만, 문학적 토양은 일본이다. 


일본의 어둠을 고발함과 동시에 그 땅에서 피어날 희망도 기대한다.


그녀는 전미도서상 소감에서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거기엔 여러 이유가 있다고 매스컴은 말하지만,


한국 국적을 소유하고 한국인 부모를 둔 재일교포 유미리는 한국인이고, 그녀의 한국인 정체성이 두 나라의 가교가 되어주길 나는 바란다.


일본에서 ‘재일’로 살아가는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큰지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소설에 드리워진 아픔이 그녀의 몸에 흐르는 피의 잉크로 찍어져 보이는 듯하다.


“구덩이었다면 기어 올라올 수도 있겠지만 절벽에서 발이 미끄러지면 두 번 다시 인생이라는 땅에 디딜 수 없다.

추락을 멈출 수 있는 건 죽음뿐이다.“ (92)


유미리를 일본인으로, 혹은 한국인으로 제한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유미리는 한국에도, 일본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인도주의자인 것을.


그녀이기에 이런 글도 쓸 수 있다. 화려하지 못하고 보기 불편한 루저들의 이야기들을.


일본이 가장 싫어하는, 근사한 외형에 방해가 되는 찌그러진 인간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아름답고 쓸쓸하게 기록해줄 이는,


역시 그녀뿐이다.


#일본소설

JR 우에노역 공원 출구 개찰구를 나와 횡단보도 건너편 은행나무를 둘러싼 돌담에는 늘상 노숙자들이 앉아 있다. (13)

전쟁에 져서 슬프거나 비참한 느낌보다 먹고살고 먹이고 살리는 일을 생각해야 했다. (26)


출구야말로 내가 보고 싶은 것인데, 어둠이 내리지 않고 빛도 비치지 않는다....... 끝났는데, 끝이나지 않는다....... 끝없는 불안...... 슬픔...... 외로움....... (23)

구덩이었다면 기어 올라올 수도 있겠지만 절벽에서 발이 미끄러지면 두 번 다시 인생이라는 땅에 디딜 수 없다.

추락을 멈출 수 있는 건 죽음뿐이다. (92)

옛날에는 가족이 있었다. 집도 있었다. 처음부터 골판지와 비닐로 만든 천막집에 살던 사람은 없었고 자진해서 노숙자가 된 사람도 없다. (91)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터널을 지난 탓에 얼굴은 증기기관차의 매연으로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그것이 부끄러워 승강장을 걸어가면서 열차 창문에 몇 번이나 얼굴을 비추며 모자의 챙을 올렸다 내렸다 한 기억이 있다.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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