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너 자매 을유세계문학전집 114
이디스 워튼 지음, 홍정아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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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버너자매 by #이디스워튼 #bunnersisters (1892, 2008)


“우리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걸 바라면 어쩐지 우리가 갖고 있던 것마저 빼앗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33)

이디스 워튼이 1892년 집필한 ‘버너 자매’는, 남북전쟁 이후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며 번영을 꾀하던 뉴욕에서 쇠락한 변두리 가게를 꾸리는 앤 앨리자와 에블리나 자매의 이야기다.

자매가 운영하는 가게는 옷이나 모자 등을 재단하거나 재봉, 수선하는 곳으로, 활달한 에블리나는 주로 밖을 다니며 물품 구매 및 배달을 하고, 정적인 성격의 앤 엘리자는 가게를 지키며 일감을 처리한다.

적은 돈벌이지만 자매에겐 빚 없이 살 수 있는 평온하고도 단조로운 생활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은 그녀들의 희망과 야망을 담보한 것 다름없었다.

"버너 자매는 그 깔끔한 가게가 자랑스러웠고 소소한 돈벌이에 만족했다. 처음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데다 일찍이 품었던 야망보다 훨씬 볼품없는 모양새였지만, 적어도 가게 수입으로 임대료를 내고 빚 없이 먹고 살아갈 수 있었다. 높이 솟구치던 희망은 꺾인 지 이미 오래됐다.“ (11)

현실의 유토피아를 아예 포기하고 자신의 내면의 이상을 택한 언니 앤 엘리자와, 금같이 반짝이는 행복을 기대하는 에블리나 앞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허먼 래미. 건너편의 낡은 시계 가게를 운영하는 독일 출신의 남자다.

남자의 등장은 자매의 삶, 관계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오랫동안 여성 특유의 사소한 의혹과 고민이 가득하던 가게 분위기는 과묵한 남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곧 안도감과 평화 같은 것이 감돌았다.... 그의 판결이 내려지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숙명처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모든 책임감에서 벗어났다.” (44)

소설은 언니 앤 엘리자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동생 에블리나에 대해 다양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면서 그녀 안의 고독과 외로움도 함께 파문한다.

그러나 동생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애정은 그 어떤 감정보다 진실하고 견고하다.

“그녀는 에블리나에 대한 사랑에서 모성애 같은 열정을 없애 버릴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자매로서 느끼는 애정의 온도를 낮출 수는 없었다.” (79)

선하고 고귀한 마음은 행복을 빙자한 파멸 앞에 무력해지고, 희망은 불행과 가난을 동반해 연쇄적으로 삶을 붕괴시키기에 이른다.

버너 자매는 참혹하다.

감히 ‘행복’을 한 번 곁눈질한 대가는 비참했다.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기회’의 초침을 누른 그 순간부터 인생은 나락으로 향했다. 가난하고 가련한 이들에게 현실은 기만을 숨긴 채 광채를 내고 있었다.

‘혈연’이라는, 내가 아닌 둘이 함께 맞선 현실도 절망으로부터 구원해주지 못했다.

오페라로 말하면 ‘베리스모’. 지독한 현실의 리얼리즘이었다.

버너자매를 읽고 나니, 우리 언니가 무척 보고 싶었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설 얘기를 들려주었다.

수화기 너머로 간간이 들리는 여덟 살, 여섯 살 조카들의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를 배경 삼으면서 이야기를 잇던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을 전하다가 목이 멨다.

‘불쌍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보다 묵직하고 경건한 무언가가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워튼이 이토록 잔인하게 여성들을 몰아붙이면서까지 전하고 싶어 했을 간절한 외침.

“(아내가 될 사람이라면)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해.
나는 언니의 삶이 한여름 구름처럼 속박 없고 평온하길 바라. 그건 내 운명은 아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안에 순응하고 기도하는 영혼이 있기를.“ (91)

워튼의 역설을.

그리고 안도했다.

우리 자매는 함께 있다.

*

‘버너자매’의 시퍼런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징구’ 와 ‘로마열’이라는 단편이 이어진다.

서사의 주인공들은 모두 상류층 여성이다.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감정들 또 여성 간에 작용하는 허영심과 허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재미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만듦새는 대개 비슷한 것 같다.

그런 고상한 귀부인들이 쌓아놓은 자기애의 바벨탑에 순식간에 일격을 가하는 워튼에게 통쾌함을 느끼며,

버너자매에서 느낀 비감을 상쇄해 본다.

“제가 보기엔, 읽어야 할 책이 너무나 많은데 재미로만 책을 읽을 시간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되네요.” (152)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영미소설 #세계문학 #문학



우리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걸 바라면 어쩐지 우리가 갖고 있던 것마저 빼앗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33)

에블리나는 여태껏 ‘기회’라는 것에 속아 왔다. (26)

"결혼하고 싶어요." 그가 되풀이해 말했다. "져 너무 외로워요. 사람이 혼자 산다는 게 좋은 게 아니죠. 그리고 매일 찬 음식만 먹는 것도요."(66)

그녀는 다시 가게에 홀로 남자 매우 안도했다. 그녀는 자기 삶에서 결정적 순간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상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 것이 기뻤다.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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