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
아사쿠라 아키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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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추리소설을 읽었다.


나와 현실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느껴진 책이었다. 


추리소설이 얼마나 현실적일 수 있나, 물론 의문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가능했다.


대부분 사람에겐 고등학교 시절이 있고, 반과 교실이 있고, 학우들과 부대끼며 살아간 시간들이 존재한다. 


이 책은 누군가의 표현대로 ‘능력자배틀물’, 학원물, 약간의 순정물도 얽혀 있는 작품이다.


내가 추리소설에 대해 좀 무지해서, 이런 조합이나 초능력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신선했다.


이 책에선 초능력을 받게 된 학생들이 등장한다. 


학교의 전통으로서 전수된다는 점에서 온다 리쿠의 #여섯번째사요코 를 생각나게 했다. 그 책도 아주 매력적인 책이다.


주인공 가키우치 도모히로가 재학하는 기타카에데 고교에서 의문의 연쇄 자살 사건이 발생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동기와 범인을 찾는 것이 주 내용인데, 교내 초능력 보유자들이 서로 얽혀 범인을 추적해가며 자살 뒤에 숨겨진 처절한 내막을 밝혀낸다.


각 반끼리 연합하여 레크리에이션도 하고 화기애애하기만 한 교실 풍경 속에 느닷없이 발생한 자살 사건.


죽은 이들은 반에서도 인기 많았던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유서는 이러했다.


"나는 교실에서 너무 큰소리를 냈습니다. 조율되어야만 합니다. 안녕.“ (p. 36)


학생들은 충격에 휩싸이지만, 정작 진심으로 애도한 사람은 있었던가.


이 책은 고등학교 시절 겪어봤을 그때의 감수성과 감정, 생각들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세상의 소음에 끼고 싶지 않은,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나의 신념을 위협하는 타인들. 


그런 것들에 저항하고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살기처럼 끓어올랐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작가는 그런 인간과 또 그렇지 않은 인간에게 공평히 초능력을 쥐여 주고 그것이 어떻게 발현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애초부터 그 초능력은 무엇을 위해 존재했던 걸까. 


"법이 닿지 않는 세계니까, 어른들의 눈이 닿지 않는 세계니까, 능력이라는 비상식적인 면이 끼어든 세계니까, 우리끼리 확실하게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거야.“ (p. 280)


책에서 소쉬르의 언어학과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등이 인용되기도 한다.


그런 인용들이 과한 느낌도 있긴 했지만, 누구나 고등학교 시절엔 유난히 철학에 심취하기도 하고, 니체를 신봉하기도 하는 등 지극히 그 시절다운 산물이라고 여겨졌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싫어도 좋은 척을 하고, 친구들이 입지 말라는 옷은 입지 않고, 좋아하던 액세사리도 빼야 했던. 친구들 사이에선 유난히 소심했던 아이. 


그것이 서로를 케어한다는 의미, 우정의 방식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에는 힘들었다. (물론 그 친구들하고 여전히 잘 지낸다. 하지만 과거의 잔재는 남는다.)


“그런 지긋지긋한 바보들과의 공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한다고 해도 영원히 끝나지 않아. 평생, 요람에서 무덤까지, 거지 같은 바보들의 지배는, 공존은, 영원히 계속 될 거야. 그 누구도 너를 혼자 두지 않을거라고.” (p. 329)

 

물론 나는 이렇게까지 비관하지 않는다. 친구들의 진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나도 이렇게 외치곤 했다.


“앞으로 일 년 반, 그저 그만큼의 인내, 그러면 이 우리에서 탈출할 수 있다.” (p. 357)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이유로 외친다.


윗집 아이(와 늘 몰려오는 친척들, 수시로 가구 찍는 소리 등) 층간 소음으로 나는 매일 절망으로 무너진다.


앞으로 1년 반은 우린 이사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내게는 무조건 참는 길밖에 없다.


앞으로 1년 반만. 


고등학생 시절을 훌쩍 지난 지금도 타인과 더불어 사는 우리의 삶에는 이런 간절하고도 고통스러운 외침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왜 인간은 타인들과 억지 조율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런 사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왜 불평등하게 어울리며 살아야 하는가. 무신경한 타인들이 빚어내는 폭력에 왜 내가 희생되어야 하는가.


모두, 다함께. 라는 건 농담일뿐.

 

덮으면 끝이었던 추리소설을 이렇게 곱씹어본 것도 처음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과 존재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위로해준 소설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는, 결코 나를 혼자가 되게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가키우치도 꼭 협조해 줘. 다 같이 다시, 조금씩 즐거운 반을 만들자.”

 

나는 그래, 라고 대답하며 고요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 함께, 말이지.” (p. 82)

 

법이 닿지 않는 세계니까, 어른들의 눈이 닿지 않는 세계니까, 능력이라는 비상식적인 면이 끼어든 세계니까, 우리끼리 확실하게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거야. p. 280

앞으로 일 년 반, 그저 그만큼의 인내, 그러면 이 우리에서 탈출할 수 있다. p.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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