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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평점 :

#고양이를버리다 (2020)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by #무라카미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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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많든 적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 실태를 말로는 타인에게 잘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이 있고, 그걸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리라.” (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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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죽을 때가 다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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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이라도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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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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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는 지금까지 그의 마음에 여러 가지 복잡하고 민감한 글감으로 떠돌다가 반드시 써서 남겨야겠다는 일말의 소명감에 의해 드디어 나오게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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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인생의 끝 phase에서나 나올 법한, 종장에 어울릴 만한 수기로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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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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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체험으로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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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과 나눈 얼마 안 되는 특별한 추억이자,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영원히 남을 아주 특별한 그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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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렸던 고양이가 그들보다 먼저 집에 돌아와 있을 때 하루키는 아버지의 어리둥절하면서도 안도했던 표정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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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자 했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떠날 수 없는 전쟁 역사의 상흔이 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삶과 엮여 아들인 하루키를 통해 이야기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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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p.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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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는 기적처럼, 치열했던 전투에 투입되지 않음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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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군에 있을 때는 중국인 포로가 단검으로 처형되는 것도 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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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그는 평생 아침마다 단 앞에 앉아 독경을 읊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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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한 번, 그에게 물은 적이 있다. 누구를 위해서 독경을 하는 것이냐고. 그는 말했다. 전쟁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전쟁에서 죽은 동료 병사와 당시에는 적이었던 중국인들을 위해서라고.” (p.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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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기에서 전쟁에 관한 하루키의 부정적인 입장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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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에서 쓰고 싶었던 한 가지는, 전쟁이 한 인간-아주 평범한 이름도 없는 한 시민이다-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크고 깊게 바꿔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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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하루키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은 참 절절하고 애틋하다. 투박한 문체로 덤덤히 서술하고 있지만, 떠난 아버지의 혼을 이 책으로나마 달래주려는 그만의 독경 의식은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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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주 조금, 조금, 의혹이 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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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이 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투명해지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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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저 자신의 영혼의 정화를 위함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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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아버지가 읊었다던 독경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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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일본인적인 입장에서, 일본인을 대변하여, 세계적인 영향력 있는 일본 작가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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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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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상흔을 인정하고 계승하되 고귀한 정신은 잊지 말자. 우리는 빗방울같이 미약한 존재지만 함께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역사의 조각들이다라고!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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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MBC 다큐프라임을 봤다. 미미즈카라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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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히데요시가 조선인들에게서 자른 귀와 코를 무덤처럼 쌓은 것이다. 그리고 히데요시는 아주 근사하게 신사를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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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미안해서가 아니다. 자기가 해코지 당하거나 원한을 입을까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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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적국을 위한 신사를 만들 때는 기본적으로 그런 의식이 깔려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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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디에도 ‘속죄’ ‘미안함’의 기미는 없다. 자신의 이야기들 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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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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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하루키는 어떤 현상에 평가를 내린다거나 가르친다거나 교훈을 주는 작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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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애매함이 이 수기에선 치명적 약점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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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해야 할 것들이 모호하게 칠해져 이 책 전체의 의도를 의심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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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기는 올라가기보다 훨씬 어렵다‘하는 것이다... 결과는 원인을 꿀꺽 삼켜 무력화한다."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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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모호한 하루키였다.
사람은 누구나 많든 적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 실태를 말로는 타인에게 잘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이 있고, 그걸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리라. (p.34 - 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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