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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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아이 (2020) by #모드쥘리앵 #maudejulien #복복서가
#theonlygirlintheworld (2014)
     
‘완벽한 아이’는 프랑스의 심리치료사인 모드 쥘리앵 (1957-)의 회고록이다.
     
참 기괴하다고밖에는 할 수 없는 그녀의 삶이 40년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서평을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모드 개인의 충격적인 성장기를, 독자에 불과한 내가 어떻게 감히 떠들어댈 수 있는가.
     
이 책을 그녀의 인간 승리에 초점을 맞춰 읽고 싶지 않았다.
     
한 소녀의 기괴한 성장기. 거기에 어떤 것을 추가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읽어 나갔다.
     
그렇게 읽고 싶었다. 안 그러면 내가 모드를 오해할 것 같았다.
     
나는 그저 그녀가 그려낸 그림을 들여다볼 뿐, 그녀가 담긴 창가를 엿보았을 뿐.
     
후에 그녀가 그 창을 깨고 나와 성공하는 드라마는 이 수기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드 자신도 “나는 그 철책에서 나왔어요! 나는 희망과 용기의 증거예요!”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보지 않는다.
     
줄줄이 달린 추천사도 안 읽었다 (안 읽혔다). 내가 볼 땐 모드의 텍스트 외엔 모두 사족이었다.
     
이 소설은 1인칭 현재형으로 쓰여 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과거도, 미래도 지향한 적이 없고, 그저 현재,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모드의 고백이 전부이다. 거기엔 기쁜 일, 슬픈 일, 소소한 일상 얘기도 엮인다.
     
모드의 불행의 원인은 부친 루이 디디에였다
     
루이 디디에는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이후 여러 일을 하며 부를 축적한 사업가로,
     
자신이 겪은 전쟁의 상흔과 트라우마가 매우 깊었는지 왜곡된 방식으로 그의 가족의 삶에 폭군처럼 군림한다.
     
철책으로 가둔 커다란 집에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 사는 것.
     
왕국의 시종은 단 두 사람.
     
그가, 가난한 광부의 6살 난 딸을 사들여 공부시켜 만든 자신의 아내 자닌과, 1957년 11월 23일날에 반드시 출생해야 했고 또 출생했던 딸 모드였다.
     
그 딸은 초인이 되어 세상을 구하고 그의 영혼까지 구원해줄 특별한 아이라는 것.
     
아버지는, 프리메이슨, 신비주의, 사드, 피라미드 등 이상한 cult들을 조합한 정신세계의 소유자로서, 딸을 초인으로 키우기 위해 비인간적인 갖가지 훈련들을 시킨다. 너무 터무니없어서 종종 웃음이 나기도 했다.
     
(스포라서 책의 자세한 내용은 쓰지 않는다.)
     
어린 모드가 아무런 방패막 없이 어른들의 더러운 손에 노출되어 희생되었을 때, 동물을 향한 순전한 사랑이 짓밟혔을 때, 나는 분노했고 마음 아팠다.
     
그것을 목격했으면서도 방관한 부모의 태도는 이해 불가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란 존재가 완전히 악역도 아닌 것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벌써 아버지가 그립다. 나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서 도망치고 싶다. 철책이 다시 닫히는 순간 내가 한 가짜 맹세의 기억이 가슴을 찌른다. 어머니 말이 맞는
다. 나한테 기대해봐야 헛일이다. 나는 도둑처럼, 배신자처럼 이 집을 떠난다." (310)
     
내게 모드를 이해할 수 없던 부분도 있었다.
     
세상과 완전히 담을 쌓은 것도 아닌, 세상과 맞닿아 있었으면서, 철책 너머 탈출의 기회 또한 전혀 없지 않았음에도 타인이 꺼내주기까지 소극적으로 머물렀던 모드가, 글에선 ‘해방과 자유’를 외치며 몸부림치는 모드와는 너무 달라서, 이따금 현실과 이상의 자리를 뒤바꿔 낯설게 하는 그런 모습들에 모드에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나는 굶주리지도 않고 묶여 있지도 않고 매를 맞는 것도 아니다. 누가 내 말을 믿겠는가.” (201)
     
그래서인지,
     
“내 영혼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이며 그 어떤 완벽한 계획을 가진 이도 이를 가져가 자신의 미성숙한 자아의 먹이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모드 쥘리앵은 자신의 삶을 통해 감동적으로 증거했다.” 는 김영하 작가의 서문이 답답하게 읽혔다.
     
아마도 그건, 그런 폭군 밑에 세뇌당하고 정신까지 지배당할 수 있었을 모드가 자신의 영혼 만큼은 독립적인 존재로서, 오염되지 않게 필사적으로 지켜낸 것에 대한 찬사라고, 나는 믿고 싶다.
     
이 책은 모드 쥘리앵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드를 세상 밖으로 꺼내준 인간들.
     
모드를 세상 안에서 위로해준 동물들.
     
어둠 너머에 분명히 존재하는 빛의 이야기들.
     
철책 밖을 꿈꾸는 이들에게 들려준 모드의 마지막 말은,
     
“인간들은 훌륭하다.”
     
꼿꼿이 버티던 내 심장이 무너져버렸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벌써 아버지가 그립다. 나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서 도망치고 싶다. 철책이 다시 닫히는 순간 내가 한 가짜 맹세의 기억이 가슴을 찌른다. 어머니 말이 맞는다. 나한테 기대해봐야 헛일이다. 나는 도둑처럼, 배신자처럼 이 집을 떠난다. (p. 310)

나는 굶주리지도 않고 묶여 있지도 않고 매를 맞는 것도 아니다. 누가 내 말을 믿겠는가. (p. 201)


인간들은 훌륭하다. (p.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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