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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너를 부르는 시간 세트 - 전2권
바웨창안 지음, 강은혜 옮김 / 달다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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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즈가 성화이난을 사랑하는 것은 아무도 몰라.” (p.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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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아주 오래전부터 성화이난을 짝사랑해온 뤄즈가 사랑에 닿기 위해 딛는 아주 느리고 긴 걸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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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고 문과 1등 뤄즈는 이과 1등인 미소년이자 완벽한 엄친아 성화이난을 짝사랑하며 3년간 일기를 써왔다. 오직 그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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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학교에서 가장 예쁜 예잔옌과 사귀는 모습도 멀찍이서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고, 수학 수식을 사이에 두고 그와 짧게나마 대화도 나누었었만, 같은 대학에 와서야 성화이난은 뤄즈라는 존재를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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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뤄즈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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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성화이난에 대한 그녀의 감정들이 한층 무르익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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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그저 뒤에서 지켜봤다면 현재는 그와 얼굴을 맞대며 밥도 먹고 손도 잡는 단계까지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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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뤄즈는 소극적인 과거와는 쉽게 연결이 되지 않을 만큼, 상당히 도도하고 대차다. 호전적인 말투로 그에게 튕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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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성화이난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 온 터였다. 거짓과 진실로 자신을 포장하고 그를 속이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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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성화이난이 ‘당당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컨셉에 뤄즈를 아주 이상적으로 끼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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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는 누군지도 몰랐던 뤄즈가 그의 안테나에 들어오고, 그들은 연애소설답게 우연의 연속과 클리셰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는 듯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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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즈와 성화이난의 어린 시절, 집안의 인연, 여적여 (여자의 적은 여자) 따위의 주변의 방해 공작 등의 위기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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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요하리만큼 자신의 짝사랑에 집착하는 뤄즈 혹은 뤄즈의 감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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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짝사랑엔 한없이 관대하고 쌍방향의 사랑엔 냉소적인 입장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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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다양한 형태를 그려 넣지만,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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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랑은 머물지 않고 흐르는 것이고, 그런 물살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은 오직 뤄즈와 성화이난의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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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소설의 난관이 몇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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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하나가 여주와 남주가 세계 최고라는 느낌의 서술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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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이난은 무슨 짓을 해도 잘생기고 멋진 놈이고, 뤄즈는 선택받은 여주인공으로서 모든 말이나 행동에 허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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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망가지는 것은 오직 그녀 자신에게서만이다. 성화이난은 그녀의 빈틈도, 그 누구도 그녀의 빈틈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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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모든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캐릭터. (그리고 그녀 빼고 다른 이들은 모두 루저처럼 만들어버리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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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즈처럼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체면을 가장 신경쓰면서 자신에게마저 진실하지 못하거나.“ (쉬르칭이 뤄즈에게. p.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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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이난마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랑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되기는 정말 어렵다.” (p.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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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뤄즈의 자기 독백이나 자조적인 감정들을 절절하게 표현하는데 수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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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이라면 단 한 줄에 끝날 감정을 거의 한 문단을 써서 아주 심오하게 표현한다. 안 좋게 말하면 군더더기가 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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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백미는 입체적인 조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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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성화이난의 ex 예잔옌은, 이름만큼 애잔한 인생을 살았고 성화이난의 가정사와 묘하게 얽혀 있기도 한데, 그녀의 아픔도 이해받지 못하고 성화이난에게 (새 여자가 생겨) 거의 버려지다시피 하는 것에 좀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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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즈를 만났다고 과거 예잔옌과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과 애정까지 부인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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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작가의 유려한 문체다. 글을 참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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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감정은 정말이지 너무나 가벼웠다. 자신의 슬픔에 파묻혀 모든 것을 침묵으로 짊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제껏 한 번도 충분히 너그럽거나 거리낌 없이 군 적이 없이 항상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었다.“ (p.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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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란 그 뒷 이야기가 없는 거거든.“ (p.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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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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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뤄즈처럼 애태우며 바라보기만 했고, 부치지 못할 편지들을 쓰며 울기도 했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그를 두 번 다시 본 적이 없다. 그는 내 얼굴도, 내 이름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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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뤄즈는 다르다. 뤄즈는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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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얘기 없는 나의 미완의 짝사랑을 ‘낭만'으로 만들어준 뤄즈와 성화이난의 사랑을 축복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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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잔옌은 부디 더 좋은 남자 만나길!)
뤄즈가 성화이난을 사랑하는 것은 아무도 몰라 (p. 464)
"뤄즈처럼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체면을 가장 신경쓰면서 자신에게마저 진실하지 못하거나." (p. 23)
"그녀의 감정은 정말이지 너무나 가벼웠다. 자신의 슬픔에 파묻혀 모든 것을 침묵으로 짊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제껏 한 번도 충분히 너그럽거나 거리낌 없이 군 적이 없이 항상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었다." (p. 473)
"낭만이란 그 뒷 이야기가 없는 거거든." (p.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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