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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들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평점 :
#조각들 (2020) #미나토가나에 #김영사 #비채 #kakera #kanaeminato
"걔의 진짜 기분 같은 건 분명 아무도 모를 거예요. 있는데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도려냈으니까.“ (p. 95)
올해 출간된 미나토 가나에의 ‘조각들’을 읽었다.
인터뷰 형식이다. 세대를 뛰어넘는 8명의 인물이 미모의 성형외과 의사인 다치바나 히사노와 만나 증언한다.
도넛에 둘러싸여 죽어버린 말라깽이 소녀에 관하여.
인터뷰이가 무려 8명. 그것도 꽤 진부하게 느껴지는 증언 또는 자기 넋두리들을 세심하게 읽지 않으면 소설 내용을 놓치고 만다. 혼란스러워 노트에 적었다.
도넛으로 죽은 소녀의 이름은 기라 유우. 빼빼 마른 상태로 도넛에 둘러싸여 자살한 상태.
<스포주의>
1. 시호: 요코야미 야에코의 동창생. 사노의 친구. 중년의 여성.
2. 기사라기 아미: 기라 유우의 동창생. 인기없는 아이돌.
3. 호리구치 겐타 (and 호리구치 세이야): 아버지는 사노, 시호, 요코아미 야에코와 동창, 아들 세이야는 유우와 동창
5. 유키 기에: 유우의 중학교 1학년 담임.
6. 시바야마 도키코: 유우가 도쿄 거주시 고등학교 담임.
7. 요코아미 야에코: 유우의 엄마, 뚱뚱한 체형으로 64라는 별명이 있었음.
8. 유우 본인의 인터뷰
인터뷰어인 의사 히사노는 유우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동기를 찾고자 옛 친구들이나 유우의 지인을 만나지만, 아무도 유우의 자살에 대한 직접적 원인은 모른다.
마치 한 사람이 말하듯 증언의 어투는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부분이 많다. 곱지 못한, 마음 속 어딘가 구멍이 뚫려 있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준다. 착하고 따뜻한 천성은 한 명도 없다.
그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외모. 신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이다. 뚱뚱했거나 키가 작았거나, 코가 낮다거나.
과거 동창생으로, 가장 성공한 히사노의 학창 시절이나 가식적인 성격도 거침없이 폭로하기도 하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냉소 섞인 동경을 내비치는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보고 싶은 스스로를, 타인을 재단하고 있다.
소설의 중요한 키워드는 ‘미용’이기라보다 ‘도넛’이 아닐까.
죽은 소녀가 둘러싸여 죽은 것도 도넛들이었고, 어릴 적 유일하게 먹을 수 있던 음식도 도넛이었고, 바삭바삭 맛있게 튀겨진 행복과 사랑의 상징이라고 믿었던 그것도 도넛이었다.
"도넛은 한가운데에 맛있는 성분이 모이거든. 그걸 합치고 또 합치기를 계속해서 마지막에 남는, 맛있는 성분이 꽉 찬 도넛 한가운데 부분은 만든 사람에게 주는 상이래.“ (p. 90)
소설에서 도넛의 구멍이 주는 의미는 소설 전체의 핵심과도 같다.
구멍은 인간의 근원적이고 필수적인 욕구와 생이 접한 통로이며, 존재하는 증거의 조각이기도 하다.
"도넛 구멍은 보고 싶은 것을 비춰주는 마법 거울 같다고 생각했어.“ (p. 223)
“자기가 보고 싶은 풍경을 떠올리면서 구멍 건너편을 보는 거야. 그러고 나서 그 도넛을 먹으면 구멍 너머로 그린 풍경이 현실이 돼. 그러니까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데, 엄마는 도넛을 못 먹으니까 유우가 먹어줄래?” (p. 265)
그 구멍을 통해 과거와 미래의 행복을 그려 넣었을 소녀의 마음은 자기파괴적인 선택으로 영원히 좌절되고 만다.
사후 밝혀지는 소녀의 내면과 어른들의 허영과 욕심과 자기변명이 비틀린 도넛 구멍 너머에 넘실대고, 소설 ‘조각들’은 끝까지 냉소를 잃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 이 구멍 너머에서 뭘 봐야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른다면 하다못해 이 구멍을 막아줄래.” (p. 293)
이러한 찢겨진 절규의 끝은, 오직 상대방의 반응에서만 유추해볼 수 있던 인터뷰어 다치바나 히사노의 마지막 말에서 냉소의 정점을 찍는다.
“당신이라는 조각이 딱 들어맞는 장소는 반드시 있으니까요.” (p. 301)
이토록 거짓처럼 들릴 수 있을까.
책, 티비 출연, 강연으로 성공하고 근육질 의사 남편을 둔 미모의 피부과 (본래는 피부과라 한다.) 여의사의 당당한 이 한 마디는, 제각각 추잡한 조각들이 그녀의 집도하에 가장 이상적이고 딱 맞게 재단되어 완성된 '작품'의 대미를 장식한다.
"맛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나도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완판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도넛으로 만들어주세요" (p.95)
미나토 작가는 그렇게 비틀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걔의 진짜 기분 같은 건 분명 아무도 모를 거예요. 있는데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도려냈으니까. (p. 95)
도넛 구멍은 보고 싶은 것을 비춰주는 마법 거울 같다고 생각했어. (p. 223)
자기가 보고 싶은 풍경을 떠올리면서 구멍 건너편을 보는 거야. 그러고 나서 그 도넛을 먹으면 구멍 너머로 그린 풍경이 현실이 돼. 그러니까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데, 엄마는 도넛을 못 먹으니까 유우가 먹어줄래? (p. 265)
나는 앞으로 이 구멍 너머에서 뭘 봐야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른다면 하다못해 이 구멍을 막아줄래. (p. 293)
맛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나도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완판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도넛으로 만들어주세요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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