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보다 강한 실 -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안진이 옮김 / 윌북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모든 직물은 꼬는 것으로 시작된다.” (p. 18)

 

윌북의 신간 총보다 강한 실, 직물이라는 씨줄에 인간과 문명, 역사, 사회, 경제라는 날줄로 꼬아 아주 근사한 작품을 만든 인문 도서이다.

 

저자 카시아 세인츠 클레어는 베스트셀러였던 '컬러의 말'을 출간한 바 있는데, 이번엔 실 한 가닥을 쫓아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직물과 옷에 대한 탐구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책은 직물의 역사를 상세히 서술한 책이 아니다. 그런 책을 집필할 의도는 없다. 이 책은 직물이 어떻게 세계와 역사를 바꾸었는지 알려주는 13가지 다양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p. 11)

 

목차를 보면 책이 다루는 바를 전체적으로 훑을 수 있다.

 

선사시대 동굴에서 발견된 최초의 섬유 가닥, 이집트 미라 (투탕카멘)를 감싼 린넨, 고대 중국의 비단, 실크로드, 바이킹의 모직, 중세 잉글랜드의 양모, 레이스, , 모피와 버버리, 레이온, 우주복, 스포츠 의류, 거미줄 직물 등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직물들의 역사와 발전사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각 섬유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학적인 설명이 더해져서 유기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을 읽었는데, 고대의 궤적을 훑는 부분에서 두 책은 닮아 있었다. 다만 이 책은 여성의 일로 여겨지는 직물, 방직을 통해 특별히 그들을 조망하고 있고, 흔적도 남지 않은 그들의 존재를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유의미한 작업을 하고 있다.

 

고대부터 직물, 방직 등은 여성이 하는 일로 정해 있었다.

 

당시 시대적으로 남성 여성 분담하여 감당할 일들이 있었을 테니 특별히 반감을 가질 이유도, 불편함도 없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남성이 절대 다수인 고고학자들이 선사시대에 도자기 시대아마 시대 (식물인데 여기서 실을 추출했다)’가 아닌 철기시대청동기시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마치 그것만이 그 시대의 주된 특징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p. 51)

 

긴 세월 자연의 풍화 작용을 이겨낼 섬유 가닥은 많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약하게나마 나무의 흔적이나 직물 등이 아주 드물게 발견이 된다고도 한다. 특히 이집트에서 말이다.

 

저자는 투탕카멘의 발굴 현장을 얘기하며 미라와 미라의 심장을 싼 린넨을 언급한다. 당시 탐사대는 그 천 따위를 쓸모없이 여겨 막 헤치고 훼손시켰다는데. 그들이 폄하했던 그런 천 따위가 실은 그 시대에 매우 고귀하고 성스러운 섬유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레이스를 언급한 부분에선 특히 그 시대의 빈부 격차와 여성들의 노동 착취 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레이스는 매우 섬세한 장식으로 기능적인 요소가 있는 게 아니지만, 치장을 좋아하는 귀족들이 레이스를 구입하면서 가격이 폭등하게 된다. ‘레이스는 특권의 상징이고 고용의 창출이었지만 실제 레이스를 뜬 여성들에게는 그 노동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p. 209)

 

그러기 위해선 길드를 형성해야 하는데 다른 길드 (염색공, 아마공)와 충돌하고, 또 가내에서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레이스 작업 등이 조직적으로 길드를 형성하기에도 무리였다고 말한다.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챕터의 데님이었다. 흔히 말하는 말이다.

나도 청바지 같은 것을 발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을.“ 앤디 워홀, 1975 (p. 238)

 

청도 면직의 일종인데, 면은 알다시피 목화로 얻고, 수작업을 통해 채취하는 섬유다. 목화 농장하면 흑인 노예들을 빼놓을 수 없는데, 저자는 이 같은 역사적 배경도 함께 설명하고 있다.

 

데님은 그 직물이 처음 나온 장소에 기인하고 있다. 프랑스의 님 Nimes이라는 도시에서 만들던 두꺼운 모직 서지serge 직물이라고 한다. 서지 데 님스 (님스의 서지)라는 말이 축약되어 데님이 되었다고. (p.242)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 청청패션 등.

 

청바지는 상징과도 같다. 일탈, 자유, 반항, 섹스 어필.... 제임스 딘, 말론 브란도하면 청바지가 먼저 떠오르듯이. 아무나 살 수 있지만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마성의 직물. 살찌면 제일 먼저 안 맞는 게 청바지 아니던가.

 

청바지를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시킨 인물은 게스도, 닉스도 아니라, 독일 출신의 뉴욕 이민자 리바이 스트라우스였다. 아무튼 초창기에는 청을 입으면 호텔에서 문전 박대 당하고 학교에선 불순해 보인다고 족족 반대한 거에 비하면 지금 현대인에게 청바지는 뗄 수 없는 아이템이 되었다.

청바지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엄청난 양의 면과 물과 또 합성 화학 물질 등이 시내와 강으로 흘러가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저자는 움베르토 에코의 허리에 대한 생각이란 에세이를 소개하며 청바지가 만들어낸 병폐를 같이 짚어준다.

 

이 책은 특별히 직물이나 옷에 관심이 있거나 종사자 분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읽는 중간 나는 조금 졸기도 했다. (이사하고 나서 여전히 피로감이 해소 안 된듯;;;)

 

우리는 천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천이 온몸을 감싸며,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도 수의가 얼굴을 덮는다.” (p. 10)

 

그렇다. fabric은 우리의 몸에서 뗄 수 없는 또 다른 피부다.

 

우리 삶에 자연처럼 맞닿아 있는 그것을 잘 사용하고 보호하는 것이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당신 몸엔 무엇이 덮여 있는가.

 

모든 직물은 꼬는 것에서 시작한다. (p. 18)

우리는 천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천이 온몸을 감싸며,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도 수의가 얼굴을 덮는다. (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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