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일 - 지적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스탠리 피시 지음, 오수원 옮김 / 윌북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문장의 뼈와 살을 바르는 법>

 

문장의 일 -지적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by 스탠리 피시/ 오수원 옮김

How to write a sentence-and how to read one

 

 

먼저 이 책은 내게 쉽지 않은 책이었다. 단시간에 읽을 수 없는, 곱씹으면서 정독해야 할, 영문과 수업 교재로 써도 손색이 없을, 지적인 책이었다. (몹쓸 종속 형식 문장(?))

 

문장의일이라는 편안한 제목에서, 단아한 크림색 책표지에 빡빡하지 않은 내지의 여백에서, 나는 안심하며 느긋하게 책을 펼쳤으나 어느새 노트를 펼치고 필기하고 몇 번씩 문장들을 반복해 읽고 서평을 작성하는 고뇌(?)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간 너무 가독성 좋고 재미 위주의 소설만 읽었던 것에 대한 반성을 하며 읽기 시작했다.

 

문장의일은 문장의 검시관이라 할 수 있는 저자 스탠리 피시가 문장이 무엇인지, 어떻게 기능하는지,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한 논증을 아주 집요하게 하는 책이다. 따라서 품격 있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볼 만한 책이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지라 집에 여러 권의 유명한 작문 책이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의 문장만을 해부해 접근한 책들은 본 적이 없었다. 건조하다면 건조할 수 있을 정도로 본질에 천착한, 한마디로 특이한 책이었다.

 

, 문장이란 무엇인지 이 인용구를 보자.

 

어느 날 길에 모인 명사들.

형용사 하나가 지나간다. 짙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인.

명사는 충격과 감동으로 변화를 겪는다.

이튿날, 동사가 이들을 몰아 문장을 창조한다.

 

-케네스 코치, 영원히- (p. 33)

 

문장을 사랑하는 것, 그 사랑하는 마음의 시작이 바로 작가의 출발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문장을 이루는 것은 단어이며, 그 단어는 마구잡이로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관계에 따라서 제자리에 배치되어야 진정으로 힘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로베르가 말한 대로 딱 맞는 단어 (mot juste)'여야 한다는 것. 저자는 소설가 업다이크의 간단한 문장을 이용해 글을 입체적으로 살리는 문장의 힘에 관해 얘기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연습해 볼 것을 권유한다.

 

약속건대, 이 책을 통해 문장이 주는 기쁨과 문장의 기교, 좋은 문장을 음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빚어낼 수 있는 능력을 드리겠다.” (p. 21)

 

원서가 영문이고 저자가 다루는 예도 영미 문학이기 때문에 우리와 잘 안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영어로 접하는 것이 어떤 면으로 더 명확하고 설득력 있을 수도 있다.

 

2장에 <스트렁크와 화이트에게 답이 없는 이유>는 내 유학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스트렁크와 화이트는 미국 대학생들이라면 모두 읽는 ‘The Elements of Style (영어글쓰기의 기본: 국내 번역판 제목)'의 저자들이다. 나도 두 권이나 갖고 있고 번역본도 있다. 미국 대학교에서 리서치 수업할 때 반드시 필요한 교과서이다. 다루는 지침은 이 책 4장에도 설명된 것처럼 이와 같다.

 

문장을 짧게 써라.”

직설적으로 써라.”

잔뜩 쌓아놓은 절의 미로에서 길을 잃지 말라.”

수동태를 피하라.”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지 말라.”

비유는 가능한 한 적게 쓰라.” (p.62)

저자는 이것들을 불행한 조언이라고 말한다. 왜냐면 글에는 맥락이 중요하고 이것은 목적과 함께 짝을 이루어 말이나 문장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성공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위의 지침들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문장이란 관점이나 강조점을 힘있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다.

 

유학 때 작문을 내면 매번 교수들에게 혼이 났다. 물론 슬픈 이방인, 모국어가 아닌 자의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작문은 내게 늘 어려웠다. 전공 실기에 매달리느라 바빴지 영문법이나 작문에 크게 시간을 쓰지 못했던 터였다. 리포트 내기 전에 원어민 친구들에게 체크를 받으면 그들의 질문은 대부분 같았다.

 

이건 누굴 말하는 거야?”

 

이건 갑자기 튀어나온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소리야?”

 

이 책의 저자가 그때 내가 직면했던 문제들을 꺼내었다. 그러니까 맥락없는 문장들은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전달력을 상실한다. 특히 한국식으로 된 영작문은 영미권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맥락의 차이를 저자는 평가 차원이라고 말한다. 즉 언설이 발생하는 특정 목적이라는 맥락. 예로 프랑스는 육각형이다.”라는 한 문장이, 보는 사람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고려해 옳은 진술이 되어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틀린 진술과 상반되는 옮은 진술, 단 특정 상황, 진술을 읽거나 듣는 특정 당사자, 특정 목적과 의도 측면에서 옳은 진술의 문제다” (p. 64)

 

모든 언설이나 주장은 평가 차원과 관련해서만 발화되며, 평가 차원이 있어야만 문장이 가리키는대상이 비로소 시야에 들어온다” (65)

 

문장의 종류에 대해서도 논한다. 종속 형식 (Hypotaxis)의 문장, 병렬 형식 (Parataxis)의 문장, 또 풍자 형식의 문장이 그것이다. 각각의 형식은 당연히 효과가 다르다. 종속 형식은 문장의 요소들을 인과, 시간성, 그리고 우위의 관계로 배열한다고 말한다. 자유롭게 연상되는 것으로 딱히 방향 없이 문장을 끌어가는 병렬 형식보다는 좀 더 지적이고 고차원적인 문장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종속 형식은 논리적으로 배치되어 극적인 효과를 발하고, 병렬 형식은 느슨하면서도 흐르는 듯한 자유로움 속에 나름의 논리를 구축한다. 저자는 종속 형식의 모범으로 마틴 루서 킹 2세의 <버밍행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1963)>, 병렬 형식 혹은 구조의 예로는 선구자인 거트루트 스타인을 거론한다. (그녀는 글에 구두점을 찍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뒤에 하드보일드의 명장이자 투명하게 세공한 미니멀리즘의 거장 헤밍웨이 얘기도 놓치지 않는다.

 

그 다음 장인 첫문장에 관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첫 문장은 압축성이 특징이다. 단시간에 많은 정보를 제시하는 일이 그 기능이다.” (179)

 

재밌게도 작가는 첫 문장의 각도는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쏠렸다는 뜻인데, 즉 그것이 예상하는 전개 방향으로 이미 향했다는 뜻이다.” (p. 167)

 

첫 문장으로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고요한 사색으로 시작하는 문장, 도전적이거나 공격적인 문장, 사물을 통해 기능하는 문장 등. 저자는 랄프 왈도 에머슨, 너대니얼 호손 등의 문장을 예시로 들어 첫문장의 기능을 설명한다.

 

마지막 두 장은 끝문장에 관하여, 그리고 글 자체가 자신이라는 숭고하고도 고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대표적으로 저자의 스페셜리스트인 존 번연을 예로 들며 내가 쓴 문장이 곧 나라는 사실을 신비롭고 성스럽게 풀어 나간다.

 

이 책은 한 번 읽어서는 전부 다 파악하기 어렵다. 한 번으론 작가의 집요하고도 고귀한 신념을 깨달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러 번 읽으며 또 예시로 적용된 소설들을 펼쳐 읽어가며 천천히 습득해갈 때 빛을 발하는 책이라고 본다.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쉽게 쓰여지지 않았다. 작가의 그 고매하고도 집요한 열정을 생각하면 한 장 한 장 쉽게 넘기기 미안할 정도다.

 

나는 소설들은 작가들이 떠오르는 상념과 영감으로 쭉쭉 써서 나중에 퇴고하면서나 고치는 줄 알았는데, 저자가 예로 들은 필립 로스나 레너드 마이클스, 존 번연 등의 영미 소설의 문호들의 글을 접해보니 그들의 문장이 굉장히 논리적이고, ‘뜻과 목적을 위해 고심하며 배치된 견고한 구조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확실히 글을 잘 쓰는 교수님들의 글은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적확하고, 특정 강조되는 문장이나 단어에 포인트가 있었다. 마치 음악과도 같았다. 천천히 물 흐르듯 혹은 여리게 피아니시모로 가다가 딱 클라이맥스나 액센트를 치는, 어떤 선율의 흐름이나 리듬감 같은 것이 문장에 분명히 존재했다.

 

내 작문의 문제는 그런 특정 효과나 계산 없이 비논리적인 병렬 구조로, 맥락과 목적을 이탈한 채 썼다는 것이다. 글에는 분명히 맥락이 존재하고, 구조가 존재하고, 강조되어야 할 부분들이 있는데 말이다. 이것은 비단 영문 작문뿐 아니라 어느 작문에도 해당하는 말 같다.

 

이 책을 진작에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문장의 힘을 알았다면, 내 글은 달라져 있을까? 적어도 문장을 보는 내 눈은 이전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하지만 글쓰는 것을 사랑한다면, 이 책은 그 출발점인 문장을 사랑하게, 사랑해서 다시 보게 해 주는 책임은 분명하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도록 열어주는.

 

문장을 만드는 일은 문장을 이해하는 일이고 이는 다시 문장을 감식하는 일이다.” (p. 25)

 

이제 천천히 다시 감식해볼까 한다.

#윌북 #문장의일

         

"문장을 만드는 일은 문장을 이해하는 일이고 이는 다시 문장을 감식하는 일이다." (p.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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