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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랑의 노래 작가정신 소설향 2
김채원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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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에서였다. 이소라의 blue sky 를 부르는데, [미친 아침은 맑아도 눈물입니다] 부분이 나오자 눈을 반짝이며 이 노래 제목이 무엇이냐고 묻던 아이가 있었다. 미친,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노래에는 호감이 간다고 했다. 나는 묻고싶었다. 너도 네가 미쳤다고 생각하니?

한 때 나를 보고 미쳤다며 손가락질을 해대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손가락질 하나 하나의 상처를 견뎌내기 위해 나는 정말 미쳐야만 했다. 스스로가 미쳤음을 인정하게 된 지금에 와서는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너는 지극히 정상이다, 라고 틈만 나면 말해주고 있다.

김채원의 미친 사랑의 노래를 읽는다. [ 여름의 幻 ] 이라는 부재가 달려있다.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나는 무엇이 미친 사랑에 관한 노래인지 찾아내지 못한다.
주인공은 흘러 들어와 흘러 나가는 바람에 따라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만 같아 보인다.
조금쯤은 전통적이고 조금쯤은 나약해 보여 나는 인상을 찌푸렸던 것도 같다.

[무엇을 숨기려했는가, 무엇을 두려워한 걸까. 무엇 때문에 발광을 하다가도 삶에게 시치미를 떼는 것일까.] 라는 구절이 굵게 박힌 뒷표지를 몇 시간 동안 들여다보다가, [미친] 이라는 단어에 대한 내 환상이 만들어낸 실망으로 치부하고 책상 밑으로 책을 집어던진다.

[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 어디로 데려가다오. ]

상처를 가리던 가발을 벗어 던진 채 떠나는 여자에 대한 그 한마디. 하필 그 울림은 왜 책이 떨어지는 탁, 하는 무심한 소리 뒤에 울려야만 했을까. 그 때 울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책을 들어 처음부터 꼼꼼히 다시 읽어 내리진 않았을 것이다.

미친 사랑의 노래를 두 번째 읽고 나서야 나는 언젠가 미친, 에 흥분하던 예전 그 어떤 아이가 생각났다. 잘 지내고 있을까? 아직도 스스로를 미쳤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고 있을까? 가발을 벗어 던지고 떠난 그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어디로, 어디로 ..


만약 기회가 되어 그 아이를 다시 만난다면 나는 말할지도 모른다.
[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미쳤고, 그래서 지극히 정상인걸지도 몰라, ]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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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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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바나나의 그 유명하다는 글들을 나는 읽어본 적이 없다.워낙에 가려 보는 타입인데다가 특히 번역된 글들은 별로 좋아하지를 않는다.번역된 글들이 정말 그 작가의 문체일까가 나는 사실 의심스럽다.아무리 번역을 잘하는 번역가라 하더라도 그곳에는 그 작가만의 문체만 순수하게 있지는 못할 것이다.번역가의 문체는 어느정도 뭍어 있을테고 그건 어쩌면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러나 나는 원문을 읽을 능력이 안되므로 별로 좋아하지를 않는다.내가 문체라는 것에 비중을 제법 두는 이유는 문체가 그 글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함과 동시에 작가의 개성을 간접적으로 글 전체에서 표출하는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읽게 되었는지는 이번에도 역시 나는 기억나지 않고, 읽은 소감을 말해 보라면 글쎄, 아무 생각 없는데, 라고 말 할 수 있는게 고작인 하드보일드 하드럭이다.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비슷한 분위기에 휩쌓인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읽어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도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어도 내용과 스토리의 성격과 진행 방식이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에게 비슷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것이 번역의 단점일 수도 있고 내 자신의 구분하지 못함일 수도 있겠지만 어떠랴. 어쨌든 나는 문체부분은 이미 포기하고 읽었고 그래서 작가의 작품의 많은 부분을 놓친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읽었긴 읽었다 이거다.

하드보일드 하드럭에는 두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옛 연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와 결혼을 앞두고 죽음을 맞이한 언니에 대한 이야기 이다. 각자 화자는 다르고 주위 배경도 다르고 결론도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 에 관한 점이라는 것이다.
'죽음' 이라는 부분은 나에게 상당히 예민한 부분이다. 누군가 죽었을때도, 누군가 죽을지 모를때도, 내가 죽고 싶을때도, 나에겐 언제나 예민한 부분이었고 그것은 내가 살아있으므로 어쩌면 당연한 것들일지도 모른다. 설령 나 뿐일까. 누구에게나 죽음이라는 것은 아직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조금은 생소하여 어떤 의미에서든 환상을 갖고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친근하고 그러면서도 두렵고 막연한것이 아닐까.

하드보일드 하드럭에서 이야기 하는 죽음은 모두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상대방의 죽음을 알게되는 그런 당황스러운 죽음. 이들이 얼마나 슬퍼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형으로 나오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은 실제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 슬픔이 마음에 와 닿지는 않지만, 나를 그 소설에 대입시켜 볼때 나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급작스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많이 당혹 스럽고 많이 힘들고 슬플 것 같다.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이렇게 주저리 거린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는 것이다. 그냥 그랬을 뿐이다. 그냥, 죽음에 대한 당사자의 모습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 대한 것들을 보았을 뿐이다.분명한 것 한가지는, 누군가 죽어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간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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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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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들을 대부분 싫어한다. 내가 말하는 부분이 상대에게 다른 방향으로 접수되어도 억울하고, 상대가 나에게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충분히 설명을 안해주고 앞에 주어 잘라먹고 말하는 것도 무척 화가 난다. 한번 이야기해서 끝날 것을 몇 번의 신경전과 말다툼 후에서야 풀어지는 것을 보면, 지름길을 알고선도 빙 돌아온 기분이들어서 진이 빠지고 대화하기가 싫어지는 경우도 종종있다. 물론, 내가 너가 아니고 사람과 사람은 각기 다르므로 오해라는 것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공들여 설명을 한다해도 표현방법의 차이나 관념의 차이 사고의 차이 등에서 오해는 빈번히 생긴다. 그렇게 공들여도 오해생기기 쉬운 인간들간의 관계, 그 공마저 안들인다면 얼마나 많은 오해들에 파묻혀 지내야할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그 오해의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중에 하나가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듣는사람 좋고 말하는 사람 좋고 가볍게 웃자고 하는 이야기. 물론 하는 사람도 농담으로 하고 듣는 사람도 농담으로 접수한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러면 어떨까? 하는 사람은 농담인데 듣는 사람은 진심으로 듣는다면? 하는 사람은 진심인데 듣는 사람은 농담으로 듣는다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중에서 오랜시간을 지내더라도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배 앓아 낳은 자식의 속도 모르는게 인간인데, 몇 년 접한(혹은 몇 번) 상대와 나의 코드가 맞을 것이라는 자부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농담 때문에 더 불쾌해 지는 것은, 농담이란 말을 너무 빈번하게 사용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가끔, 내가 뻔히 화낼 말을 하고서는, 화내는 나에게, “농담인걸 갖고 뭘 그러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농담이라면 무엇이든 다 넘어가고 웃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부터가 짜증스럽다.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농담도 구분 못하는 사람, 혹은 속 좁은 사람이 되는데, 그럴때마다 농담이라는 단어를 아무대나 끼워넣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사람들의 행동이,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회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듣기 좋은 말, 하기 좋은 말, 적당한 말들만 골라 해주는 사람은 너무도 많다. 적어도 내 측근들에게는 그런 흔한 말보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솔직한 평가와 대응으로 내가 조금더 깨닫고 배우는 바가 있기를 원하는 바이다. 그렇지 않다면, 측근과 친한 사람과 친구의 의미가 무엇에 있을지도 궁금하다.

농담이라는 것은 분명 무익한것만은 아니다. 대화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 윤활제 역할도 하고, 적당한 때에 적당한 농담으로 사람의 기분이 좋고 분위기를 즐겁게 해줄 수도 있다. 농담이란 것은, 어쩌면 무겁고 칙칙한 대화를 조금쯤 자연스럽고 부담없게 하기 위해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정작 문제는 “농담” 이 아니라, 아무곳에나 “농담이었어” 라고 끼워넣는 우리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농담이라는 단어의 빈번한 사용이 농담과 거짓말 변명 빠져나갈 구멍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아, 나는 역시 농담이 싫다. 단순한 “농담” 이 싫은게 아니라, 뒤죽박죽 섞이면 안될것들이 섞여진채 모두 하나로 뭉뚱그려져 농담이라고 불리우는, 그 농담 이라는 단어가 싫은것일지도 모르겠다.

박완서의 아주오래된 농담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고 쉽게 이해받지도 못한 부분을 한번에 이해받은 기분이 들어 흡족했다. 조기발견 못한 암으로 시한부인 환자의 보호자에게 먼저 통고를 하고, 보호자는 대부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환자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는 병원생활. 사랑에 속고, 시대에 속고, 이상에 속고, 일생에 속아 산 것도 분한데 죽을때까지 기만을 당해야 옳겠냐며 이러한 거짓말을 강요당할 때처럼 의사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낀적도 없다는 영빈에게 현금은 유쾌하게 대답한다.

“얘는, 그게 어떻게 거짓말이냐, 농담이지.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들어서 즐거운 거, 그거 농담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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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빠일기
오샤레 지음 / 이야기마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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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된것 중에 '요즘은 별 책이 다 나오네!' 라고 생각되었던게 두개있었는데, 하나는 '엽기적인 그녀' 였고, 다른 하나가 이 '호빠일기' 라 이거였지. 물론, 두개 다 내용을 읽어보기 전, 그러니까 책을 딱 손에 든 그 순간에 바로 들어버린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야.

여기서 하나 집고 가자면, '호빠' 란 뭐냐. 사실, 나도 뜻은 잘 몰라. 남자 접대부가 있는 호스트바, 정도라고만 대충 알고있는것이니까. 이 책은 '오사례' 라는 남자 접대부가 호스트 생활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적어놓은거야.

금남지대 호스트 바, 그 유쾌하고도 흥미진진한 사건들. 이라는 타이틀을 건 이 호빠일기는 미안한 얘기지만 유쾌하지도 흥미진진하지도 못했다. 그저, 남자 호스트가 호빠일기를 냈다. 그것뿐. 그냥 그것 뿐.

뭐, 각 언론사에서 올린 문구들도 웃기는 빤쓰다.
'상상을 초월하는 호빠 안의 풍경묘사 - 스포츠투데이' <- 상상을 초월하긴! 개뿔! 너네들도 룸쌀롱가서 여자들 끼고 그렇게 놓았잖아 -_-; 여자가 남자끼고 너네랑 똑같이 노니까 충격이냐?
'술과 쾌락이 넘치는 호스트 생활 7년의 참회록 - 스파크' <- 참회록이라니? 마지막에 두페이지 아버지 쓰러지신거에 대한 얘기가 이 책을 참회록으로 만들어줬나부다 -_-;
'유부녀들, 바람난 여자들의 놀라운 이중생활 보고서 - 우먼센스' <- 유부남들, 바람난 남자들의 이중생활 보고서는 나오질 않아서 섭하신가 보군요 -_-;

포르노도 나름대로의 문학성이 있고, 야한 이야기도 뭔가 담고 싶은게 있고, 섹스일기장도 뭔가 느끼는게 있을 것이라는 평소 내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해야할까. 작가 딴에는 뭔가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었던것 같은데 (머릿말을 보면) 읽다보면 그런것은 전혀 안느껴지고, 이것은 작가가 이해할 수 없게 너무 은유를 섞어줬거나, 내 이해력이 딸리거나 기대가 너무 컸던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이 책은, 쓴 사람이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사실 빼고는 별로 놀라울 것도 충격이랄 것도 재미있을 것도 없다. 재미를 추구할 계획이었으면 화끈하게 재미있는 맛이라도 있어야 할터인데, 그런것도 아니고 어줍잖게 뭔가를 이 책으로부터 전하고자 말은 그럴싸하고, 그렇다고 호스트들의 슬프고 힘든 생활이 적절하게 묘사되었냐? 그것도 아닌것 같다. 그 어디에도 충실하지 못한 그냥 '호빠' 라는 소재에 온갖 구색을 끼워다 맞춰 책으로 보이게 만든 책?

그저, 다 아는 이야기, 남자가 접대부 입장에서 썼다, 그것뿐. 여자가 썼다면, 어떻게 이야기 하였을까? 그 잘난 언론사들은? 출판사는? 책으로 낼 생각을 했을까?

화려한 생활을 꿈꾸며 호스트계에 접어들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어주었으면 한다고 머릿말에 나오던데, 반드시 그런것만 같지도 않다.

순진한 여성들이여, 부디 이 책을 읽으며, 신기하다, 재미있다, 통쾌하다, 나도 여자지만 저 여자들 넘하네, 저 남자들 불쌍해, 놀라웁다, 라는 소리는 하지 말아달라. 그러는 당신네들이 정말 안쓰러워 보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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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로 만든 집
윤성희 지음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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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단편집 『레고로 만든 집』을 읽어보고 싶어진건, 작가의 이름 때문도, 제목이 와 닿아서도, 내용이 흥미로워서도 아니었다.

1973년생. 지금 나이 29살. 등단 1999년. 윤성희의 프로필을 결론 내보면, 27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는 것인데, 등단이란 것이 서른을 넘은 나이에서도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나에게 그것은 충격이었다. 어쩌면 부러움일 수도 있고, 혹은 도대체 어떤 글이길래, 라는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등단 후 첫 단편집 레고로 만든 집에는 총 10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있다. 신춘문예 당선작이자 제일 앞에 있던 레고로 만든 집을 읽은 하날이는, 사실, 어떠한 설명도 부연도 없이, 그저 주인공의 행동만을 묘사하는 소설의 의미를 찾아내기가 너무 어려워서였는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이 책이 마음에 다가온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책을 찌라시에 소개하지 않는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될 만큼 참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 작품 두 작품, 읽던 나는, 이 단편집에 수록된 주인공들에게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각기 다른 직업의, 각기 다른 사람들이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다 같은 사람으로 보였다. 이들은 상황은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외로움. 혼자.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그 외로운 자신의 모습을, 때로는 다른 사람을 통해, 때로는 자신을 통해, 찾아가고 있었다. 전부 같아 보이는 그들을 보며, 지루하다기보단, 어떤 한 사람을 하나하나 알아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아, 나중에는 읽기가 매우 즐거워지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한편을 읽을 적마다, 나는 프로필을 들춰 윤성희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도 했다. 혼자 있는 주인공들, 외로운 주인공들, 그럼에도 버티는 주인공들, 자신의 세계에 빠져있는 주인공들.. 그 모습들이, 너무도 직설적으로 느껴져서, 혹시 작가 당신의 모습 역시 그러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윤성희의 소설을 보면, 어떤 행동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그냥, 가볍게 읽어보면, 약간은 싸이코틱한 행동들의 묘사를 그저 늘어놓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주인공은 복사기에 자신의 얼굴을 프린트하고, 종이 비행기에 동전을 올려놓고 날려보기도 하고, 자동차를 멀리서 보면서 손으로 조종하기도 한다. 그 행동을 읽다보면, 그 행동을 왜 하게 되었는지 뭔가 설명을 원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런 설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이 단편집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설명이 필요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결국은 그 주인공이 다른 사람도 아닌, 결국엔 혼자여서 외로운, 우리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생활에 혹은 자신의 가면에 가려져 스스로도 때때로 망각하는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을,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아를 찾는 행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읽어본 사람들은,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나는 앞으로도 윤성희의 소설을 더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소설을 읽음으로서 스스로를 찾아가고, 위로 받음은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이 됨과 동시에 내 스스로가 인간임을 즐기는 일이 될테니까 말이다.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걸 알고 있는 넘들은 한번 읽어봐라.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혹시, 또 아는가, 이 외로운 세상에서 동지를 얻은 기분이 들지도. 반드시, 혼자라고 생각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넘들만 읽어봐라. 그렇지 않은 넘들은, 공유하긴커녕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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