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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작가로서 기본적으로 일본 사회의 비판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제목에서부터 말해주듯이 "인생이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자유분방한 작가다. 물론 이기주의만 아니라면 나는 두팔벌려 환영이다. 하지만 어차피 인간은 두뇌만 본다면 본능적으로 동물적이고(+이기적), 사회적이고(+공감적), 이성적이다. 굳이 동물적이거나 사회적인 자기의 일부를 없애서 기형아가 될 필요는 없다. 말투는 과격해서 이상한 느낌이 나지만 바로 뒤에서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 않겠느냐만, 반지성적인 동양의 두 국가 일본과 한국을 비판하기에 좋은 책이다. 이성은 유사이래 어느 시기와 장소에 누구에게나 있었지만 이성 그 자체를 신성시하고 발전한 문명은 서양밖에 없었고 그 문명을 토대로 냉장고와 컴퓨터가 나왔다. 기술만을 받아 들인다는 것은 헛소리다. 서양의 귀납적 사고방식과 미국의 탈권위, 동양의 중용이 모두 인간적일수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중요하다. 주체로서도, 객체로서도 효율적으로 살아야 한다. 주체에게는 그것이 평온이고(행복이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잘못 알려져 있다. 그 자체는 운이 좋다는 뜻일 뿐이다. 우리가 말하는 소소한 행복은 평온이다.) 객체에게는 운석을 막아주고 주체의 성장을 보호해줄 지성적 사회다.
Quotes:
"인간은 분에 넘치는 두뇌를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사용하는 데에는 저항감과 고통을 느낀다. 반면 본능을 관장하는, 서로 물고 뜯고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 파충류와 별 차이 없는 가장 원초적이며 밑바닥에 있는 뇌 부위에 의지하려는 관성은 몹시 강하다. 과연 그렇게 사는 쪽이 자연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훌륭한 뇌를 내버려 두면 있는 재주를 그냥 썩히느 ㄴ격이 아닌가. 모든 가능성에 뚜껑을 닫고, 감정과 본능에만 휘둘리는 한심하고 비극적인 삶을 살면 인간이 되지 못해 마지막에는 곤충이나 다름 없는, 아니 그보다 못한 말로를 맞게 된다. 나약한 인간이 강하게 살려 할 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사고력밖에 없다. 즉, 이성이야말로 최고의 무기다. (...) 이성의 길을 걷는 순간 인생은 빛나기 시작한다. (...) 이성을 꺼리고 감정을 우선시하며 본능에 따르는 삶이 편할 지도 모른다. (...) 새로운 삶을 열어 가려 한다면 (...) 이성과 함께 독립의 길을 걸어야 마땅하다."
- p.83-84
"품성이 착한 사람과 바보처럼 착한 사람을 같은 부류로 여겨서는 안 된다. 전자는 거짓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의 사고력이 있지만, 그렇다고 남을 속이려 하지는 않는다. 현실의 더러움을 충분히 인식하는 한편, 가능한 한 이상을 좇아 살기 위해 유념하는, 실로 인간다운 인간을 가리킨다. 후자는 이제 막 인생이 시작되었는데, 아직 어떤 목표를 향해 매진하지도 않았는데, 아니 목표조차 명확하게 정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자신의 전부를 또는 사회 전체를 다 파악한 듯한 표정을 하고서 유치한 허무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삐딱한 태도로 감정과 본능이 이끄는 태만한 생활에 빠져든다. '설교는 사양하겠어'라는 한마디에 사로잡혀 자포자기에야말로 삶의 미학이 담겨 있다는 나르시시즘을 겨드랑이에 끼고서 데카당스팡인 척하지만, 실천력도 패기도 없는 뜨내기로 전락할 뿐이다. 그들은 그 어떤 아름다운 말로도 감싸 줄 수 없는 같은 부류의 뜨내기들을 상대하고, 한탕을 기대하고, 하룻밤의 술값을 위해서라면 제아무리 수치스러운 짓이라도 한다. 그 당연한 결과로 변호의 여지가 없는 낙오자가 되다 못해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예술을 빙자하여 자신의 못난 인생을 그럴싸하게 치장하려는 자들이 즐기는 이런 삶의 방식은 마조히즘의 극치이며, 거기에서 풍기는 것은 자기도취의 썩은 냄새일 뿐 아름다움과는 실제로 아무 관계가 없다. 또 거기에서 태어난 작품 역시 그들과 같은 유이다. 따라서 누가 더 잘났는지 다투는 일이 아니면 생의 보람을 찾을 수 없는 삐따가고 유치한 자들과, 자기보다 훨씬 못난 놈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싶어 하는 졸렬한 자들이 공감할 뿐이다. 어렸을 때라면 모르겠는데 스물이 넘어서도 부모와 직장과 사회와 국가와 각종 신에 의존하고, 아내와 자식과 술과 도박과 방사에 의존하고, 그리고 죽음에 의존한다. 이 얼마나 불품없는 인생인가. 이런 말이 있다. "너를 키우는 자가 너를 파멸시키리니." 타자에 기댄 삶의 끝은 파멸이라는 뜻이다. 정말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부모와 직장과 사회와 아내와 각종 신과 권력과 권위에 의해 파멸되는, 그런 인생을 안이하게 받아들여도 좋은 것인가. 정신은 물론 혼까지 내맡기고 건네주고 팔아넘겨도 좋은가.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인가. 마조히즘에 푹 절은 인간으로 생을 마감해도 좋은가. 진심으로 그걸 바라는가. (...) 부모의 과도한 사랑과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도저도 아닌 가치관, 만화와 드라마, 영화, 소설이 그리는 아주 잠깐 현실을 잊게 해 주는 세계에 중독되어, 원래 같으면 그 시간에 단련했어야 마땅한 정신이 오히려 흐물흐물해졌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면 가혹한 현실사회 한가운데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에 거부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꼬리를 내리고 물러설 것인가.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려 몸부림칠 것인가. 유치한 수집품으로 장식한 방에만 틀어박혀서는, 그 지옥을 천국이라 우기며 보이지 않는 척 들리지 않는 척 할 것인가. 그 필연적인 결과로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궁지에 몰렸을 때,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 돌리면서 이런 고함이나 지를 것인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으라고!""
- p.86-88
"종교가 내비치는 것은 절대 새벽빛이 아니다. 신비를 가장한 황혼의 빛이다. 그쪽에는 인간성을 짓뭉개는 깜깜한 어둠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하면 할수록,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립의 정신이 깎여 나간다. (...)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사기극에 옳다구나 걸려들어 기분 좋게 속아 넘어가서는 폐쇄적인 나날에 빠져든다. 최면에 걸리거나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마음과 정신은 물론 혼까지 쏙 빼앗기고는 거의 백치가 되어, 존엄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가엾은 노예 신세로 전락한다. 그러나 당사자는 어지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이성과 지성을 깡그리 몰수해 가는 종교적 광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래야 한다는 자각도 하지 못한다. (...) 숭고하게 울리는 그들의 말보다는 그들의 풍모를 주시한다. 속세 사람들보다 훨씬 세속적이고 천박한, 먹고 마시고 싶은 대로 해 피하지방에 둘러싸인 뭉글뭉글한 몸과 탁한 눈 그리고 추악한 외모를. 그것이 성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밤낮으로 고행을 불사했다는 인간의 육체이고 풍모인가. 과거에는 그랬을지 모르나, 지금의 그 꼴은 무엇인가. 욕망에 몸이 단 범부의 전형 아닌가. 한 꺼풀 벗기면 그저 어디에나 있는 너절한 아저씨가 아닌가. 왜 그렇게 저질 사기꾼에게 속아, 그렇게 쉽게 굴복하고 받들어 모시고 겉만 번지르르한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인가. 그들의 어디에서 카리스마를 느끼는 것인가. 사실 신 따위는 아무 상관 없고 아버지를 대신할 존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그러니 그런 아저씨에게 이끄릴고 매료되는 것이 아닌가. 가령 그렇다 해도, 그들이 아버지를 대신할 만큼 너그럽고 따뜻한 인물이라고 정말 생각하는 것인가. 아버지를 대신하는 인물이 어째서 툭하면 돈을 요구하는가. 그렇게 몸과 마음을 받쳐서라도 아버지를 얻고 싶은가. 혼자라는 처지가 그리도 고통스러운가. 언제까지 어린애에 머물러 있을 작정인가. 그런 자신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나잇살도 먹고, 남들처럼 두뇌도 갖고 있으면서, 자유와 고독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인가.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이글거리는 지옥 불에 타 버릴 것이라는 어린애 속임수만도 못한 수작을 부리는 치들은, 신자 대부분이 신의 은혜로운 구원을 얻기 위해 모여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처음부터 간파하고 있다. 그 범죄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태생에 갖가지 문제점이 있고 특히 육친의 사랑에 굶주려 마음이 뻥 뜷린 사람들, 그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과대평가해 그것만 있으면 마음이 펑온해지리라는 큰 오해를 품은 사람들은 그럴 법한 자가 눈앞에 나타나 친절한 한마디만 건네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전 인생을 갖다 바치고, 그 어떤 불합리한 명령에도 복종한다는 것을."
-p.121-123
"사대주의는 자기가 없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또는 자기를 갖지 않으려 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래야 편히 살 수 있다는 이유로 자시느이 권리를 버리고 추종의 길을 택한 자는 인간이기보다 곤충에 가깝다. 설령 국가 체제를 바꿔 본들, 불특정 다수의 인식과 의식이 근본부터 바뀌지 않는 한 유사한 비극이 끝없이 반복될 뿐이다. 그렇다고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것 하며 체념하는 것은 특정 소수가 원하는 바다. 국가는 언제까지나 그들의 소유물에 불과할 것이고, 나머지 국민은 오직 그들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신분을 뒷받침하기 위한 꼭두각시로 변할 것이다. 비정상적인 번영과 파멸을 거듭한 뒤엔 결코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게 괴멸할 것이다. 국가를 소유한 자들은 당연히, 특권적인 혜택을 계속 누리기 위해 온갖 대의명분을 쥐어짜 낸다. (...) 그들은 뜬구름 같은 허황된 환상을 마치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높은 위치에 올려다 놓고, 거기에 엎드려 절하고 귀의하라고 직간접적으로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지만, 그 그럴듯한 제단의 이면에는 욕망으로 얼룩진, 최종적으로는 자신들만 좋으면 국민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이기적인 본심이 숨겨져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전쟁도 공해 문제도 원전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세금과 연금이라는 명목으로 거두어들인 막대한 돈도 올바르고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니, 지금쯤 평화롭고 안전하며 신뢰할 수 있는 국가로 정착했을 것이다. 게다가 국가가 뭐라고 굳이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국민 사이에 국가에 대한 귀속 의식이 자연스럽게 고조되어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우러났을 것이다. (...) 겸손하게 어디까지나 저자세로 기업이란 고용을 창출하고 사회를 풍요롭게 하며 세상과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그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 헌신하는 노예로서의 국민이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세심하게 손을 쓴다. 한편, 자선사업과 기부 등의 위선적인 행위로 지배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위장한다. 그들의 충실한 수하인 정치가나 관료들 또한, 독재국가 혹은 패전 전의 일본에서 쓴 수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먹고 마시고 입을 수 있고 일정한 곳에서 살 수 있는 동안은 국민 사이에서 부글거리는 만성적인 분노가 폭발하지 않는다. 그들의 해소할 길 없는 답답함과 짜증이 반역의 정신을 싹틔우는 일은 절대 없다. 하물며 폭동이 일어날 리 없다고 확신하는 지배층은 대지진이나 중대한 원전사고를 당하고도 양처럼 온순하게 처신하는 국민을 보고서 더 확신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 그들은 국가의 지시에 순순히 따르는 국민에 새삼스레 놀라고 기뻐했을 것이다. 그 후에는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더 무모한 요구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대대적인 증세, 징병제와 황국의 부활, 패권주의 등 시대에 역행하는 흐름이기 때문에 눈치만 보아 왔던 것들을 실행할 수도 있겠다고 내다본, 전쟁 영웅을 동경하고 파멸을 좋아하는 왜곡된 애국자도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 p.139-145
"사회주의 국가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념 때문에 붕괴했다. 자본주의 국가는 현실에 너무 맞추다 보니, 즉 욕망에 너무 충실하다 보니 붕괴하고 있다."
- p.146
"그런데 개중에는 연애 초기의 유치한 이미지에 집착해 해어나지 못하는 자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미학에 어울리지 않는 생생한현실의 벽 앞에 서면 딱딱하게 얼어붙고 만다. 그러고는 몸을돌려 초기 단계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그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뜬구름 같은 연애를 시작하려 한다. 그들은 상대의 인격을 완전히 무시하고서 자신이 그리는 연애의 모습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 상대를 이상적인 연애의 소도구로 삼아 연애극을 연출하는, 자신에게 도취된 젊은이가 많아진 것이다."
-p.154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적합과 부적합을 판단하고 재능의 유무를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 요컨대 자신을 스스로 단정하면 단정할수록 정답에서 멀어질 뿐, 무슨 일이든 직접 부딪혀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는 얘기다."
- p.174-175
"오랜 시간 이어 온 삶을 무시하고 찰나에 불과한 죽음에 집착하는 것은 너무도 바보스러운 짓이다. (...) 아무리 형편없는 삶이라도 함부로 내던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형편없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또는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 자체가, 이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 자체가 바로 정신적 능력의 탁월한 소산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점이기 때문이다."
- p.196-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