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도가니 - 공지영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이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을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있는 것이다."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상한 일은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사람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은 정나미 떨어지는 그만큼 인간에 대해 경외 같은 것이 내 안에서 함께
자란다는 것이다.>


공지영 작가는 내게 있어 참 이상한 작가다. 그녀의 작품을 몇 편 읽었으면서도 아니 그 작품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녀의 신작을 찾아 읽는 편은 아니고 작품을 봐도 큰 감흥을 느끼지는 못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무진시를 뒤엎은 해무, 그 축축하고 어딘가 은밀하고 눈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희미함이라는
이미지로 시작되는 소설 <도가니>는 왠지 모르게 처음부터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단 몇 줄 만으로
이제부터 할 이야기들이 무엇인가 보여줄 수 있는 작가의 필력에 반해버린 것이다.

강인호는 아내의 주선으로 남쪽 도시 무진시에 있는 청각장애인학교 '자애학원'의 기간제 교사 자리를 얻어
한때 민주화운동의 메카였던 무진. 첫날부터 마주친 짙은 안개 속에서, 그리고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교사들이 다수인 내려가게 된다.

무섭도록 침묵에 싸여있는 학교 분위기에서 인호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한 청각장애아가 기차에 치여죽는 사고가 나도 이를 쉬쉬하는 교장, 행정실장, 교사들, 그리고 무진경찰서 형사
사이에서 인호는 모종의 침묵의 카르텔이 작동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부임한 첫날 우연히 듣게 된 여자화장실의
비명소리를 신호탄으로, 인호는 점차 거대한 폭력의 실체를 알아가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치사한 인간이 자신보다 약자를 괴롭히고 욕보이는 인간이다.
그래서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살인과도 같은 중량의 취급을 받는다. 요즘 너무나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아동 성범죄지만 그에 관련된 범죄는 어이없이 빈약한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것이 한국의 현실이라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정의쯤이야 무시하고 불의쯤이야 쉬쉬하고 넘어가는 것 또한 한국의 지금이다.

그러나 소설 <도가니>는 그러한 현실로부터 눈을 똑바로 뜨고 직시하며 고개돌리지도 않고 가혹하고 지저분한
현실을 미화시키려 들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어내는데는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듣지 못해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아동들에게 일어나는 추악한 일들을 마주할 용기,
그 더러운 일들을 벌여놓고도 태연하고 뻔뻔하게 무죄를 주장하는 파렴치한들을 마주할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 또한 그 끔찍한 비극을 들춰내는 다수 쪽이 아니 쉬쉬하기에 급급한 소수쪽에 치우쳐 있음을
마주할 용기.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시험에 빠지고 고민에 빠지고 혼란에 빠지는 일이 그렇게 있었을까 싶을 만큼 읽는 동안
심장이 쿵쾅거리고 너무나 끔찍한 (그러나 이미 사회이슈조차 되지 못할만큼 빈번해진) 일들로 인해 두통이 엄습했다.
그렇게 하나의 하늘 아래 어린이를 유린하고 사회적 약자를 제물 삼아 자신의 욕구를 충촉시키는 짐승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무진시의 안개가 그치지 않길 바라는 그래서 그 추악한 진실과 내가 대면해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강인호의 마음이 갑자기 무척이나 이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