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금 내 상태는 망치로 뒤통수 한 대를 맞았을 때 기분, 딱 그 기분이다.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케빈 아저씨가 바른 걸음을 걸었을 때만큼, <식스센스>에서 브루스 아저씨가 왜 아내 옆에만 가면 아내가 추위로 몸서리를 치는지 깨달았던 순간만큼 머리 속이 하얘졌다. <살육에 이르는 병>을 읽기 전에 주의할 점이라면 무슨 상황에서든지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나가겠다는 굳은 다짐을 준비해야한다는 거다. 이 책 앞에 떡하니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문구가 붙은 만큼 소설은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절반 가까이에 이르는 분량이 눈뜨고 읽어 주기 힘든 상황들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고 그 상황이라는 것이 잔인한 살인 수법과 시체 애호증과 같은 비정상적인 성적인 묘사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저 '재밌는 추리 소설 한 편 읽고 싶은데..'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든 독자(이를테면 나같은 경우) 입장에서는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음.. 이 책을 읽기 전 알아두어야 할 주의 사항이라면 이쯤 해두고.. 앞서 내가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기분을 느낀 부분은 당연히 그 잔혹한 표현 수법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충격적인 결말을 확인한 순간,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라는 다소 자극적이고 공갈같은 책 뒷표지의 문구가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정말 그랬다. 책의 결말을 읽은 순간 진짜로 나는 첫 페이지로 돌아가서 첫 장을 꼼꼼히 제대로 읽어봤다. 그리고 앞장을 읽는 동시에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미심쩍었던 부분이나 작가가 교묘히 흩뿌려놓은 트릭들을 되짚어 보느라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을 정도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아니 놀랍다기보다 작가를 칭찬해주고픈 점은) 내 머리 속을 하얗게 만들고 하얘진 머리가 팽팽 돌아갈 만큼 혼란스러운 상황과 결말을 보여주면서도 작가의 문체 자체를 그렇게 격정적이지도 흥분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안정적이고 어느 순간에 마치 논문에서나 나올 듯한 딱딱한 문체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니 대단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겠지만. 아마 당분간은 추리 소설 뭐 재밌는거 있어?하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일단 "굉장히 잔인하고 잔혹해서 니가 토할지도 몰라"하고 무시무시한 경고를 날려준 다음 "근데 다 읽고 나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 쫙 돋을껄."하고 바로 이 책만 추천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