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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충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갑자기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내 몸을 휘감는 순간이 있다.
바로 수은충이 기어가는 순간.
<수은충>은 내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검은 기운들과 악한 마음들이 드러나는 순간을 수은충에 비유하며
일곱가지의 소름끼치는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밤, 비는 추적추적을 넘어 빗방울이
땅바닥과 마주치는 소리가 우뢰처럼 들리는 밤에 손에 들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을 정도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살인을 저지르고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삶의 방향조차 잃어버린 사람, 원죄와도 같은 죄를 저질러
평생을 그 짐을 지고 나가야하는 사람, 친구의 자살을 유희쯤으로 느끼며 타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 등 <수은충>은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는 실수 혹은 평생 한 번도 겪지 않을 경험들을
주인공들에게 배급해주고는 그들의 일상을 미스테리하고도 악몽같은 나날로 탈바꿈시켜 놓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개와 결말로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지켜나가며 뒷이야기가 잔뜩 궁금해지도록
만들어 놓고는 끝나버리는 단편의 묘미를 만끽하고 싶다면 안성맞춤인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동시에 풍기며 자꾸만 내 몸 어딘가에도 수은충이 기어다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짧지만 참 탄탄한 작품이구나하고 감탄하게 된다.
<수은충>은 그런 괴이한 분위기와 상황들을 빌려 우리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감정들을 끌어내고
있다. 인간의 멈출 줄 모르는 이기심도, 타인의 목숨에 대한 한없이 가벼운 존중, 죄를 지는 순간부터 우리를
짓누르는 족쇄가 되어버리는 영원의 순간들까지 결코 살면서 겪어보고 싶지도 않고 그런 일을 경험한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듣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넘겨버릴 것만은 아닌 이야기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