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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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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느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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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민규라는 작가의 이름만 들으면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 한 켠이 왠지 슬퍼진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비웃기만 하는 박민규의 소설 속 주인공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패전 전문 투수 감사용, 왕따라 설움과 폭력 속에 버려져 서로에게 의지하는 <핑퐁>의 모아이와 못,
정의의 이름으로 지구를 지키고 싶었으나 정신 병자 취급만 당했던 <지구영웅전설>의 바나나맨까지.
마치 마이너를 위해, 마이너에 의해, 마이너의 대변인을 자처한 것처럼 작가는 대다수가 외면했던 마이너
(혹은 찌질이)들의 삶을 유머러스하고 자칫 과대망상적이기까지 한 유머로 그려왔었다.
그런 그가 사랑이란다.
아니 이거 왜 이러십니까? 그 센스있는 유머를 왜 버리시고 게다가 80년대 신파성 다분한 사랑 얘기라뇨?하고
의아함 반 실망 반이었지만 이미 "박민규 중독증"에 걸린 나로서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작품을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왜 이 작품이 신파인가 잠깐 언급하자면 제아무리 쿨한 사랑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쌓여지면 언젠가는 따분
해지고 고리타분해지고 뻔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는 처음부터 신파라는 운명을
띄고 태어났다. 게다가 잘생긴 남자가 별다른 계기도 없이 못생긴 (그것도 '그냥' 못생긴 게 아니라 대놓고
수근거릴 정도로 못생긴) 여자를 좋아하고 먼저 대시까지 한다는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 거의 0%에 가까운
이야기 전개는 이거 뭐 신데렐라 저리가라다.
하지만 역시 박민규를 다르다. 그렇게 뻔한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더니 어느 순간을 정점으로 그들의
사랑과 그들의 순수한 진심이 내 마음 속에 천천히 쌓이게 만들어놓고는 결국엔 그들의 떨림과 아픔까지도
내 것인 것처럼 만들어버린다.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랑이 나타나자 끝없이 의심하고
갈수록 자신을 비하하며 부끄러워하는 여자의 마음과 그녀의 부끄러움을 이해할 수 없어 더욱 미안해지면서도
자신의 진심을 이해시키고 지키려하는 남자의 마음이 거짓되지 않게 뻔해 보이지 않게 나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도 어쩌면 박민규의 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한 미사여구 없이 구구절절한 감정 설명 없이도 그것이 사랑임을.. 사랑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납득시킬 수 있는 것도 박민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이건 어쩌면 내 마음에 이미 자리잡은
박민규에 대한 절대적인 신임에서 온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신파라는 전제보다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행위인가라는 전제가 앞선 작가의 시선에서 우러나온 당연한 결과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