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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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아였던 초등학생의 어린 '나'는 어느 날 나머지 공부시간에 공부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야한 잡지를 보다가
선생님에게 들키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폭력적이었던 아버지를 학교에까지 모셔오라는 선생님의 엄명이
떨어지자 '나'는 어머니가 일하고 계신, 그러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고층 빌딩으로 향한다. 그래도 꽤나
머리를 써서 그당시 유행했던 '슈퍼맨 따라하다 죽는' 아이의 행렬로 위장해 옥상에서 뛰어내리는데 그 순간
거짓말처럼 어디선가 빨간 팬티를 밖으로 빼입고 빨간 망토를 두른 슈퍼맨이 나타나 자신을 '정의의 본부'로
데려간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영웅들 (주로 DC 코믹스 소속의 주인공들)이 모여있다는 '정의의 본부'에 도착한 주인공은
슈퍼맨을 물론이고 원더우먼, 배트맨, 아쿠아맨, 로빈 등과 지내며 영어를 배우고 영웅들의 친구(라 쓰고
심부름꾼이라 읽는)가 된다.


.. 여기까지 들으면 이거 뭐 지구가 위험에 빠지면 나타나 지구를 구한다는 태권브이의 전설만큼이나 당황
스럽지만 이 큰 줄기가 지구 영웅 전설의 핵심이라고 볼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는 등장 인물과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설득력있게 또한 꾸준히 나를 쇄뇌시키는 작품이었다.

자신을 바나나맨이라고 지칭하고 자신과 슈퍼맨과의 친분을 꺼리낌없이 과시하고, 원더 우먼의 채찍을 몰래
가져와서 남들을 위협하는.. 참 좋게 봐줘도 또라이스러운 전개에 처음엔 뭔가했었다. 아무래도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이라 도무지 그의 분위기에 익숙하지가 않았고 어릴 때도 기껏 꾸준히 봤던 만화라고 해봐야
'빨강머리 앤'과 '아기 공룡 둘리' 종류가 전부였던 내게는 슈퍼 영웅들의 이야기는 더욱 더 생소하게만 들렸다.
특히나 슈퍼맨의 그 변태스러운 복장이라니.. 어린 시절에 보아도 지금 보아도 민망한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슈퍼 영웅들의 이야기 속에는 세계 강국과 지도자를 자처하려는 미국의 의도와 맞물려 진 슈퍼
영웅들의 숨겨진 이야기와 영웅들 사이에서도 암암리에 존재하는 힘과 위치의 대결, 슈퍼 영웅은 모두가 백인
뿐이라는 인종차별적인 행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들어있다.

그래서 처음에 이거 뭐 초등학생 입상작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그 속에 곳곳에 숨어있는 이러한 장치들을
발견할 때마다 역시 이름있는 문학상을 받은 이유가 다 있었네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게 된다.

그리고 그 황당하고 정신병적으로까지 보이는 전개 속에 숨어있는 (..뭔가 다들 숨어있다) 영웅이 될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씁쓸함마저도 은근히 풍겨오고 있어 묘하게 책의 마지막장은 덮는 내 손길이 아쉬우면서도
쓸쓸해져 오기도 했고..

그렇지만  그 쓸쓸함에도 불구하고 내친 김에 박민규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어질만큼 장르를 구분
짓기 힘들고 특히 국적마저 세계를 아우를듯 자유로운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허구의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잘 활용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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