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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1.5평 청춘기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물론 그렇지 않을 사람도 많겠지만 난 객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읽을 책을 정하는데 있어 책 표지를 많이
따져보는 편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적인 이유가 되는 건 아니지만.. "와세다 1.5평 청춘기" 또한 그
선정 기준에 맞춰 그냥 가볍게 지나칠 뻔 했던 책 중에 하나였지만 이웃님의 추천으로 마음을 다시 먹고
읽었더니.. 왠걸 표지만 보고 놓쳤다면 굉장히 아까웠을만큼 재밌게 읽혔다.
이 작품은 실제 작가인 다카노 히데유키가 기나긴 대학 시절(과 졸업 후 몇년.. 장장 11년)동안 살았던
노노무라라는 자취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유머러스하고 가볍지만 그렇다고해서 경박스럽지 않는 필체로
재미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1.5평 다카노의 자취방은 다다미 석 장 크기로 그의 말에 따르면 성인 남자가 두어 바퀴 구르면 끝에서
끝까지 도착가능할 만큼 협소한 공간이다. 노노무라에는 1.5평 방들과 2평짜리 방들이 있는데 왠만한
사람들은 들어가서 잠깐 살 생각도 하기 힘들만한 공간이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기본 3년 이상
길게는 20년 가까이에 이르는 긴 세월을 살아냈다고 하니 이 사람들과 관련된 소설 속 이야기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황당한 것도 왠지 수긍이 갔다.
(뭐랄까.. 책을 읽는 동안 이미 노노무라가 뿜어대는 아우라에 중독되었다고나 할까..)
자칭 프리랜서 작가임을 자처하지만 하루엔 절대 두 가지 일은 하지않는다는 나름 확고한 신념을 가진
다카노, 10년째 사법고시를 준비 중이지만 정말 준비만 하는 겐조, 십 년 이상된 슬리퍼도 버리지 않고 버릴
정도로 짠 수전노 마쓰무라, 다정하지만 의외의 면에서 날카로운 지성을 발휘하는 주인 아줌마까지..
노노무라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 부대끼고 별 것도 아닌 일에 티격태격하면서도 또 그럭 저럭 살고 있는
이들의 소소한 일상들을 읽고 있다보면 정말 에피소드들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말로 다 하기에도 벅차지만
놀라운 점은 어쩜 이렇게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일종의 청춘의 방황들과 고민들을 그 가벼운 유머 속에 잘
버무려 놓았을까하는 점이었다.
20대라는 시기가 나는 자신만의 혹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궤도에서 잘 해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편한 눈으로 봐주지 않고 안정되어져 있어야할 30대를 위해 노력하고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다른 사람들을 작가처럼 틀에 박힌 기성 세대로, 나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몰아 넣고 생각해버리지만 그것도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다보면 그 틀 안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지금 복잡하지만 뭔가 정리되지 않는 내 기분을 작가는 막막함이라는 단어로 콕 집어내줬다.
- "막막한 건 사실인데 뭐에 그렇게 막막한지를 모르겠다."라는 것이다. 백 번 옳은 말이다.
나도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나 하고픈 대로 하고 살았고 지금도 그러고 있으며 현재에 이렇다 할 불만은
없다. 하지만 뭔가 내 주위에 먹구름이 덮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것을 신문기사체로 정리하면
'장래에 대한 불안'이 되겠지만 당사자의 느낌은 훨씬 더 복잡 미묘하고 애매하다.
하지만 이런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을 상담해주고 있다고 해서 이 책이 설교성 짙다든지 고리타분하다든지
하는 면은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제목답게 가볍고 유쾌하고 밝아서 지금의 그 막막함도 긍정적인
막막함이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