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모두 함께 밤에 걷는다. 단지 그것 뿐인데 말이야.
어째서 그것뿐인 것이, 이렇게 특별한 걸까."
저 멘트를 조금 수정해서 내 느낌을 표현하자면 정말 평범하고 작은 얘기들일 뿐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왜 이렇게 가슴이 벅차 오르는 걸까..정도가 될 것 같다. 이전에 접했던 작품을 통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온다 리쿠의 이미지는 환상적이고 미스터리한 느낌..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얘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밤의 피크닉'을 읽고 나니 그녀가 왜 노스탤지아의 마법사라고 불리는지 실감하며
진심으로 내 가까이에 두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64년 생인 그녀가 2004년에 내놓은 작품이니 그렇다면 마흔을 바라보면서 쓴 이야기가 분명할텐데
어떻게 이렇게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선 고등학생들의 심리와 그들의 고민을 잘 표현했는지 역시
타고난 작가다.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자 어른이 되고 나서 자주 하게 되는 말이 '그 때가 좋을
때다. 고민이라고는 공부밖에 없을테니까..'인데 그렇게 한 살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그 때의 그
감성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무뎌지면서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간다. 하지만 고맙게도 온다 리쿠는
그 때.. 그 시절로 자연스럽게 나를 끌어들이면서 어느 덧 하나 둘씩 잊고 있던 예전의 추억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때는 꽤나 심각했던 고민들, 어느 날인가 밤을 새워가며
친구들과 이 얘기 저 얘기를 해가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기억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어렸던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내가 잊고 있던 기억들로의 회귀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가볍게, 대단치 않게 흘려보냈던
낮과 밤의 변화, 해가 지고 뜨는 풍경만으로도 왠지 가슴이 뛰던 그 감성까지 돌려놓아 주는 것이다.
책을 읽는 일이 무척이나 즐겁지만 "밤의 피크닉"을 읽는 동안은 내 마음 속에서 마치 작은 꽃씨들이
차례대로 새싹을 틔우는 것만 같다. 만약 내가 글솜씨가 뛰어났다면 이 설레임을, 이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생생하게 써내려갈텐데 그러지 못해서 무척이나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