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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속에는 분명 그만의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그것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아픔이 대단할 정도의 트라우마가.. 하지만 문제는 이 트라우마를
과연 내가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는가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여느 작가들, 즉 2차 세계 대전을 실제 경험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수기처럼 글을 써 내려간
작가들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프리모 레비나 빅터 E. 프랭클처럼 유대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전쟁의 경험과 미국인으로 미국
군인 신분의 포로로서 보네거트가 경험해야했던 전쟁이 물론 다른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경험을 들려주는 방식의 차이다.
난 아직도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이가>를 읽는 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후에도 그
작품만큼 읽기 힘든 작품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곤하는데 그에 반해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은
분명 눈이 찡그려지고 가슴이 아려올만큼 슬픔과 분노가 담겨져 있는 것 같긴한데 그다지 슬프거나
화가 나지 않는다.
아니 사실 커트 보네커트의 소설 속에 드레스덴이라든지 포로, 독일군과 같은 전쟁에 관련된
단어들이 없었다면 이 작품이 반전을 다룬 작품인지 아니면 트랄파마도어 행성이 출현하는 SF
소설인지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작가는 자신의 아픈 개인사를 시간 여행이라는 개념과 3차원을 넘어서 4차원의 형태로 낯설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써내려간다. 물론 그 이야기 진행이 조금은 두서 없이, 언뜻 보면 지나치게 비극적인
상황조차도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내뱉어 읽는 이로 하여금 당황스럽게 만들 때도 있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것 또한 작가의 재능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한 개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들이 실제로 일어났고 또 지나갔지만
이제는 그 상황마저 여유를 가지고 돌아볼 수 있는 거. 그것이 커트 보네커트의 작품이 여느 반전
작품과는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