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게된 사정이 있다. 몇 년전에 아내와 살림을 합치면서 책도 당연히 그렇게 되었는데 나는 이책이 내께 아니므로 당연히 아내 걸로 여겼다. 그리고 제목에서 통속적인 느낌이랄까, 그런게 느껴져 들춰 보지도 않고 책장 구석에 거의 구겨넣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도 언젠가 시간이 아주 널널해 지거나 무료함에 미춰버릴 지경에 이르면 꼭 한 번 들춰 보리라 하는 마음은 조금 먹었던 것도 같다.
그후 이사를 하면서 책 정리를 할 때 이 책은 비닐 하우스에 마련한 책장에 꽂히는 신세가 됐다. 그곳은 주로 다 읽었거나, 또 다시 볼 필요까진 없거나, 보지 않았지만 구태여 안봐도 되겠다고 여긴 책들이 주로 꽂힌 곳이다. 그런데 며칠전 이책 1권이 거실 책장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중간 부분이 겉표지에 접힌채. 해서, 아, 이 양반이 이 책을 읽은게 아니군? 하는 생각이 들어 물었더니 자기가 들여 놓은게 아니고 읽던 것도 아니고 당신책도 아니란다. 세 번 부정한 셈이다.(ㅎㅎ) 아마 동생(처남)책이 이사할 때 같이 묻어 온것 같다고 한다. 여하튼 더 따져 봤자 의미 없으니 그냥 읽어 보자 마음먹고 하우스에 있는 나머지 세 권도 가져다 놓고 읽기 시작 했다. 요즈음 시간이 널널한게 제일 큰 이유 겠지만.
조성기 라는 작가는 전에도 접한적이 없다. 만약 접했었다면 이 책을 진작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1971년 무려 스무살의 나이에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했지만 상당한 휴지기를 거쳐 80년 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검색을 해보니 이책은 총 7권으로 발행된 것으로 나왔다. 1992년 초판 발행이고 현재는 절판. 얼마전 < 야훼의 밤 >이란 제목으로 다시 나와 있는듯 하다. 그 책엔 이 책 1,3권이 합본돼 있다. 이 책은 한 권 한 권 따로 떼어 놓고 보아도 각각이 독립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2권(라하트 하헤렙)은 별도 한권의 책으로 나와 있고 이 책으로 작가는 오랜 침묵 끝에 1985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책 소개와 작가 후기에 이 책은 기독교 소설 이고 자신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밝히고 있다. 읽어보니 기독교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고민과 고뇌의 흔적은 어느 정도 느낄수 있다. 어느 한쪽으로 편향 돼있거나 하는 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지나친 자기 미화나 타 종교에 대한 힐난이나 무조건 적인 비판은 보이지 않는다. 4권에서는 김교신과 무교회 주의에 대한 소개와 인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한 기독교에 대한 공부와 신앙을 대하는 태도가 시종일관 진지하게 전개되고 있다. 약간 성스러운 느낌이랄까, 하는 점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억지 스럽거나 유치하지 않다.
하지만 4권 까지 읽고 아쉬운 점은 기독교 내부비판의 강도가 약하고 사회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지 않나 하는 점이다. 즉, 시대적 배경(1970년대)에 따른 한계일수도 있겠지만 일탈하는 기독교 단체와 지도자들의 행태에 대한 묘사가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하에서 자행된 기독교 탄압과 그에 따른 반발과 저항에 대한 부분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철저히 비켜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또하나 거슬리는 점은 시종 '하나님'이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건 논의가 많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 권을 읽어봐야 겠지만 전반적으로 자기 신앙에 대한 개인적인 만족과 구도자적인 태도 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나머지를 마저 읽기 위해선 책을 구입하거나 빌려 봐야 겠는데(알라딘 중고엔 뜨고 도서관 검색엔 없는 것으로 나온다)그럴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 책은 누구/무엇 덕분에 읽은 것일까? 아내? 처남? 널널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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