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백민석이 오랜 절필 끝에 돌아와 쓴 첫 미술 에세이다. 한겨레의 책 소개는 이러하다.
"<리플릿>은 백민석 작가가 수집한 리플릿을 펼쳐놓고 미술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 본 책이다. 백 작가는 1995년 등단 이후 신선하고도 기괴한 문학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었던 소설가다. 그는 8년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던 때에도, 돌연 10년간 절필했던 기간에도 미술관을 다녔다. 책은 그가 복귀한 이후 2015년 3월부터 1년간 <한겨레>에 연재했던 ‘백민석의 리플릿’ 26편을 묶어낸 것이다." (한겨레/문화/책과 생각, 2017-01-19)
내가 그의 소설을 처음 접한 건 무려 16년 전 『목화밭 엽기전』(문학동네, 2000)을 통해서였고, 그 경험은 충격이었다. 내용의 엽기성은 둘째 치고 몹시 낯설고 차가웠던 작가의 묘한 쿨함(혹은 냉정함) 때문이었는데, 그런 '긴박하고 쌈박 담백한' 글은 처음이었다. 그는 한국 소설가로서는 (당시에) 이례적으로 SF소설 『러셔』(문학동네, 2003)를 썼고, 나는 그 책을 못 해도 다섯 번은 족히 읽고 또 읽었던 것 같다. 그 외에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문학동네, 2001),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문학과지성사, 1997) 등 그의 초창기 작품들을 꽤 본 편이다. 그래서 확신컨대 백민석 작가는 잘 쓴다. '잘 쓴다' 에는 '잘 본다' 와 '잘 묘사한다' 가 필요한데, 잘 쓰는 소설가가 '잘 보는' 눈으로 본 미술 전시회 감상기이니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너무 기대했던 탓인지, 책은 쉽지 않았고, 몇 부분은 끝까지 다 읽지 못했다. 중간에 집중이 자꾸 달아났다. 이유는 몇 가지 있으나, 우선 전시를 직접 가 보지 않은 사람이 글만 읽고 전시와 작가, 작품을 이해하기엔 설명이 다소 부족했다. 내용 중 많은 분량이 현대미술을 다루는데, 현대미술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기도 하거니와 대중들에게는 까다로운 감상 대상이어서 더 그러했던 듯. 도판이 부족한 것도 한 몫 했다. 아마 기사 연재분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라 그런 듯 하다.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살을 충분히 붙이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어 약간 아쉽다.
나는 운이 좋게도 1부 1장 <콘크리트 아틀라스>에서 다루어진 강영민의 <가위눌림>과, 1부 3장<고통은 아주 어두운 빛깔이다>에서 다루어진 케테 콜비츠를 관람했었다. 그래서 관련 내용을 읽을 때는 전시장에서 느꼈던 개인적 감상과 작가의 감상을 비교할 수 있어서 "아, 소설가의 미술 읽기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했었다.
강영민 <가위눌림-자본주의적 건설과 파괴의 딜레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5
(출처: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백민석의 리플릿 원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83122.html)
예컨대, 강영민의 <가위눌림-자본주의적 건설과 파괴의 딜레마>는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의 대형 설치작품으로, 작품의 삼면을 돌아가면서 보면 "불평등에 분노하지 않는 나의 아들은 엘리트로 성장할 것이다.", "조기 교육은 인류를 진보시킬 것이다.", "글로벌화는 우리의 운명이며 후퇴는 없다.", "대출의 노예로 사는 것이 나의 선택이다.", "오락산업은 사회적 강박으로부터" 등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무한경쟁 구조속에서 성공신화의 캐치프레이즈에 세뇌되어 노예의 위치를 획득한 대중의 처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들을 여기 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가위눌림'이란 의식이 있으면서도 신체를 움직일 수 있는 상태를 일컬으니, 알면서도 꼼짝없이 사회 구조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개인의 처지를 비유한 것일 게다. 나의 '보기'는 여기까지였고, 백민석의 '보기'는 아래와 같이 나아갔다.
"작가 강영민은 자기 작품 앞에 선 관람자에게 대놓고 '불평등에 분노하지 않는 나의 아들은 엘리트로 성장할 것이다'라며 엄숙하게 선언한다. 이 간명한 문장에 관람자가 읽기 쉽게 몇 단어를 채워 넣으면 '불평등에 분노하지 않는 (처세를 지닌) 나의 아들은 (체제 순응적인) 엘리트로 성장할 것이다'가 된다.
하지만 읽어보니 아직 몇 단어는 더 들어갈 틈이 있다. '체제 순응적인' 앞에는 '이 사회가 바라는'이 들어갈 수 있겠고, '불평등' 앞에서는 '정치적'이라는 수식이 어울릴 것이다. 만약 '정치적'이 모호하게 느껴진다면 '정의의 원칙에 반하는'이라고 한마디 더 덧붙일 수 있다.
만일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을 읽었다면 '불평등'이라는 단어 아래 이렇게 메모를 달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호 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p.22)
과연 소설가다운 해석이다. 그는 작품의 규모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관람자는 결코 그 전체의 규모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없다. 우리가 지난밤 악몽의 전모를 결코 알 수 없는 것처럼, 가위들의 집합 혹은 전체 구조가 또 하나의 가위로 작동하는 것이다."(p.23)
작품을 관람할 때 왜 굳이 이런 구조와 크기로 설치했나 내심 궁금해 했었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던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깊숙한 해석이다. 그가 시간을 들여 충분히 꼼꼼히 여러 번 감상하고 느끼고 참고자료를 찾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의미를 재구성 한 것을 읽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정도의 이해와 공감은 내가 알고 있는 전시 혹은 작가에 한해서만 가능했다. 나머지 내용을 제대로 이해 못한 것은 미술과 미술사에 대한 나의 부족함 탓이 크다! 다시 말하면, 독자의 입장에서 모르는 작가와 작품을 이 책을 통해 곧바로 알게 되고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배경지식을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백민석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밀도 높은 문장으로 압축적으로 설명한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다. 각각의 전시에 대한 이해에 중점을 두지 않고 각 전시에서 작가가 읽어 낸 '주제의식'에 방점을 두고 읽는다면 괜찮다. 그는 미술사와 역사, 사회학, 철학, 문학 등을 아우르는 방대한 인문학적 배경지식으로 무장한 훌륭한 가이드이다.
참고로, 이 책을 읽는데 혹은 현대미술을 조금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책들을 추천해 본다.
우선은 박상미의 『나의 사적인 도시』이다. 큐레이터이자 갤러리운영자이자 작가이자 번역가인 저자가 뉴욕에 거주하며 블로그에 올렸던 뉴욕과 현대미술에 관한 에세이집이다. 뉴욕이라는 세계 문화예술 트렌드의 중심지에서 미술 뿐만 패션, 음악, 문학에 이르기까지 (주로 현대)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감상과 소개를 내용으로 한다. 통찰력이 있으면서도 독자에게 친숙하고 편안한 문체로 전달해 읽기에 부담이 없다. 혹시 『리플릿』을 읽고 어렵고 아쉽게 느껴진다면 이런 스타일의 책을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리뷰를 쓴 적이 있기에 링크를 건다(http://blog.aladin.co.kr/chocopresso/9269189).
서양미술사 개론서의 고전인 에른스트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아주 전형적인 입문서에 해당할 것인데 분량이 만만치 않고 전체 미술사를 다루므로 읽기 전부터 질려버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아직 읽지 않아서 개인적 평가는 못 내리겠지만 리뷰들이 이구동성으로 매우 훌륭하다는 평이다. 이 책보다 더 추천하고픈 책은 윌 곰퍼츠 Will Gompertz 의 『What Are You Looking At?』인데, 국내에는 『발칙한 현대미술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저자는 7년간 영국의 Tate 갤러리에서 디렉터로 활동하다 현재 BBC 에서 arts editor 로 일하면 예술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예전에 번역본이 있는 줄 모르고 원서를 샀었는데 발견한 김에 번역본도 사야겠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전체 윤곽을 잡아준다면, 이 책은 현대미술을 각론으로 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내 야심은 사실에 기반한 현장감 있는 책을 쓰는 것이었다. 학술적인 의도는 아니다. My ambition has been to write a fact-filled and lively book; it is not intended as an academic work." 라고 밝히는데, 그 동력은 Tate 미술관에서 디렉터로 일하면서 세계 유수의 갤러리와 박물관을 여행하고, 일반인들에게는 덜 알려진 개인 소장품들을 접하고, 예술가들을 직접 방문하고, 수백만 달러가 오가는 현대미술 경매를 지켜보면서 쌓은 경험이라고 말한다. 거기에 더해 BBC에서 아트에디터로 일하면서 대중과 예술의 교점에 대해 쌓은 철학이 또한 이 책을 쓰는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안규철 작가의 사물에 관한 에세이집 『그 남자의 가방』을 추천한다. 안규철 작가는 주로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매우 정제된 형태의 사물 혹은 건축적 구조로 표현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추천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사물에 대한 탁월한 성찰의 모음으로써 그 자체로 완결성 있는 책이기도 하고, 또 이 책을 통해 다양한 표현형식과 해석의 자유를 갖는 현대예술에 있어 작가의 사유의 방식 그리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해 나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샘플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따로 짧게 리뷰를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간단히 예를 들자면, <서랍>에 대한 사유는 다음과 같은 식이다.
"사소하고 무해한 것으로부터 엄청난 결과를 동반하는 정치적 결정에 이르는 <일>들, 세계에 대한 온갖 판단과 개입과 변형은 누군가의 책상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서랍은 그 밑에 들어 있다. 그 위치가 이미 말해주듯이 그것은 책상과는 반대로 어둠에 관계된다. 어둠은 서랍의 본성이다. 어린 시절에 한동안 나는 빛 대신에 어둠이 나오는 전등은 왜 없는 것인지 궁금해했던 적이 있었는데, 서랍이야말로 바로 그런 네거티브한 등불이다. 서랍을 포함하여 모든 상자는 만들어진 어둠이며, 잘게 분할된 인공적인 밤이라 할 수 있다. (……) 서랍이 스르륵 닫히는 순간 그것은 우리의 시야에서 일시에 사라진다. 우리가 이 일에 너무 익숙해 있어서 그럴 뿐이지 이 사라짐은 감탄할 만한 마술적인 사건이다. (……) 서랍은 우리가 넘겨주는 사물을 우리 시야 밖으로 데리고 가서 자신이 갖고 있는 어둠 속에서 잠을 재운다. 서랍을 다시 열기 전에는 그 잠든 사물을 깨울 수 없고 다른 상태로 변화시킬 수 없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우리들의 <일>은 서랍이 닫히면서 유보된다. (……) 모든 상자는 단절된 두 개의 시점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이며 타임머신인 것이다"(p.120)
미술작품을 좋아하지만 현대미술은 해설이 없으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뭔가 답을 예상하고도 이게 맞나 싶고 괜히 틀린 것 같고 왠지 다른 정답이 있을 것만 같은 어려운 시험문제와 같이 느껴져서 제대로 즐기고 있는 건지 매번 확신할 수가 없었다. 미술관에 가는 일이 놀랍고 즐거운 경험이 아닌 불가해하고 불편한 일이 되기 일쑤였는데 이 책을 읽은 후 한 예술가의 작업 방식을 들여다 봄으로써 오늘날 미술이 행해지고 존재하는 과정을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었기에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