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의 대가라고 해서 토론에도 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가일 수록, 자신을 비롯해 수많은 영민한 동료들이 자신이 헌신해 온 분야의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문제들을 발견하고,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으로 해결하거나 혹은 실패하는 것을 오랫동안 경험해 왔으므로 최소한 어떤 문제가 해결 가능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만큼은 자신만의 철학이 공고해지게 마련인 듯 하다. 다만 그 철학이란 것이 자신의 전문분야에 한정된 이야기라는 데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종종 있단 것이 흠이라면 흠이랄까.
『사피엔스의 미래』는 "인류는 정말 진보하는가?"라는 질문을 두고 알랭 드 보통, 스티븐 핑커와 같은 스타 지성인들의 격돌로 화제가 된 2015년도 멍크 디베이트의 내용을 그대로 책으로 옮긴 것이다. 멍크 디베이트는 캐나다의 금광 재벌 피터 멍크가 세운 오리아 재단이 2008년부터 해마다 두 차례씩 열어온 국제 현안 및 공공 정책에 대한 세계 정상급 지식인들의 토론 대회이다. 금광으로 번 돈을 인류의 지적 진보를 위해 사회 환원하는 부자라니. 금광으로 벌었든 기업활동으로 벌었든 돈을 번 것은 어쨌거나 사회의 유무형의 자원과 용인과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인식을 가진, 나아가 그 사회는 인류 구성원의 일부이므로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의 지적 힘을 모으고 향상시키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뜻을 가진 부자. 그리고 그런 부자들이 있는 사회. 부럽다.
토론의 주제인 인류의 진보에 대해 "인류는 분명 진보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입장에 선 두 명의 토론자는 모두 과학자로, 실험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인지 및 언어에 관한 저술로 유명한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와, 동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과학, 환경, 경제 분야의 저널리스트로 활약 중인 매트 리들리다. 이들의 반대편에서 "인류는 분명 변화해 왔지만 진보해왔다고는 확신할 수 없으며 앞으로의 미래 역시 그러하다."라는 입장에 선 두 명의 토론자는 설명이 필요없는 작가 알랭 드 보통, 그리고 (나로서는 이 책 이전엔 알지 못했지만) 2005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었던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이다.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인류의 진보를 긍정하는 두 과학자는, 주로 빈곤의 개선, 물질적 번영, 지식의 확산, 성 평등 개선, 전쟁 감소 등에 대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전반적으로' 인류는 발전해 왔다고 주장하며, 그 외에 우리가 걱정하는 핵무기나 기후변화와 같은 위협도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힘과 인류의 지혜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입장을 편다. 한편 진보를 부정하는 두 인문학자는 '전반적'이고 '양적'인 통계자료가 보여 주는 것은 인류 번영의 진실이 아닌 표면적 현상에 불과하다며 '진보'를 논하기 위해서는 양적인 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도 함께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지금 인류 사회가 겪고 있는 어지러울 정도의 변화는 '진보'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변화'에 가까운 것으로 본다. 알랭 드 보통의 경우, 인간은 근본적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완벽한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결함 있는 호두(두뇌)'를 가졌으므로 외부 환경(빈곤, 교육, 평등 등)이 변화해도 변화한 환경에 적응해 또 다른 불안과 불만족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결국 어떤 형태의 발전도 인류에겐 '또 다른 변화'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에 다가가는 진보라고 볼 수는 없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편다. 그와 같은 편인 말콤 글래드웰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꺼내든 방법이 또 다른 문제를 추가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를 기준으로 진보를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예컨대, 통계상으로 전쟁의 빈도는 줄었지만 대신 전쟁의 형태 및 내용은 더욱 파멸적으로 변했고, 연결성의 증가는 민주주의의 확산과 자유의 증가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전염의 위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저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당신이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떤 진전이 있을 때 그것이 또 다른 문제를 추가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요? 새로운 문제들은 뭔가요? 새로 발생하는 문제들은 해결한 문제들보다 더 큰 문제인가요? 아니면 같은 가요, 더 작은가요?'"(본문 161쪽)
여기에 대해 진보론자들은 이렇게 반론한다.
"낙관론은 자기실현적 예언입니다. 비관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진보는 우리 자신의 허약함과 핵무기 확산을 포함한 문제들을 보고 암울한 운명을 탄식하는 대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창의력과 노력을 기울일 때 찾아올 결과입니다."(본문 139쪽)
이것이 전부다. 진보론자들은 인류의 문제해결능력(과학기술)을 믿는다. 반대론자들은 과학기술이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동시에 같은 만큼의 위험을 내포할 수 있으며, 또한 양적인 지표로 환산할 수 없는 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으므로 과학만능주의를 경계하고 조금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양측의 주장은 어떤 상호 공감이나 이해에 기반한 건설적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멍크 디베이트 자체가 주제에 대한 찬반양론을 대결시켜 토론 전후에 한 번씩 진행되는 유료 방청객의 현장 투표로 승부를 가리는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은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 했던가. 해결책이나 상호이해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일종의 쇼비즈니스이므로 양팀은 복식 격투기 선수들처럼 잘 싸워주면 된다. 때문에 토론 참여자 모두가 상대방 진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시작부터 끝까지 조소와 조롱으로 일관하며 자기네 입장만 늘어놓느라 바빴다. 이럴 바에는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제1장(토론 기록)을 읽을 필요 없이 그 반밖에 안 되는 제2장(사회자와의 토론 전 1:1 개별 인터뷰)만 읽어도 되었을 뻔 했다.
토론 참여자들이 때때로 이성을 잃으며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 진행자 러디어드 그리피스 (Rudyard Griffiths) 는 종종 상호비난으로 얼룩졌던 토론이 소득없는 언쟁으로 끝나지 않도록 중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발언자 자신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한 의견을 예리하게 핵심만 추려 내어 분석 정리하며 토론을 이끌어가는 힘이 놀라웠다. 덕분에 그에 대해 찾아보니, 주로 세계 경제, 지정학, 기업 의사결정 등 굵직한 문제들을 다루는 TV 해설자로, 또 인터뷰 및 토론 진행자로 캐나다에서는 매우 유명하며, 연방 선거 토론 때도 진행자로 참여할 만큼 토론 진행에 뼈가 굵은 전문가였다. 그의 진행을 보기 위해서라도 다른 토론 영상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누구나 흥미를 가질만한 주제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도 일부 볼 수 있었으나, 읽는 내내 불통의 드라마를 지켜보는 것은 상당히 답답했다. 양쪽편 모두 일리있는 주장인데 일부러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편을 들 수 밖에 없도록 구성한 토론은 나와는 맞지 않는 형식인 것 같다. 개인적인 수확이라면 러디어드 그리피스와 말콤 글래드웰을 알게 된 정도일까.
마지막으로 알랭 드 보통의 재밌는 '결함 있는 호두' 이론을 인용하며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 것 같은, 지극히 그다운 통찰이다. 사피엔스의 미래를 성찰하기 위해 사피엔스의 부정할 수 없는 본성을 먼저 성찰하는 생각의 깊이가 좋다.
"혹자는 기계, 기술, 인터넷, 아이폰과 더불어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완벽할 정도로 지혜롭고 완벽할 정도로 친절한 불멸의 생명체를 만들어낼 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사람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그것과는 다른 종입니다. (……) 우리 몸의 척수 맨 위에는, 제가 부르기 좋아하는 이름으로 '결함 있는 호두'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호두 머리는 대단히 파괴적인 충동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교육으로도 바로잡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경우 도움을 주려고 해도 저항을 합니다. (……) 남을 용서하고 친절히 대하고 서로 공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함이 있는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결함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본문 48~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