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플러그드 보이 - 애장판, 단편
천계영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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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생이었을때 본격적으로 만화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 처음 접했던 한국 작가의 순정만화가 언플러그드 보이였다. 천계영을 일약 스타 작가로 만들어 놓은 이 작품은, 캐릭터 산업에서도 한 몫 거둬간, 나름의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해도 말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천계영의 말을 빌리자면 '반보주의'라고 하는데, 광고회사를 다니면서 익혔다고 한다. 받아들이는 사람들보다는 언제나 좀 더 먼저 새로운 개념과 성향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너무 앞서나가면 호응을 얻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발이 아닌, 반 발 먼저 나간다는 의미의 '반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광고에서 따온 이 생각은 만화에도 잘 적용되었다. 영상 매체의 대표라고 할만한 광고는, 확실히 만화의 주요 대상이 되는 학생들에게 익숙한 매체일테니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만화는 그때의 나에게 굉장히 잘 스며들었다. 별 생각없이, 별 뜻없이 흘러가는 소품(?)에서도 90년대 후반을 확실히 나타내주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풍선껌은 제법 인상적이었는지, 짱구의 초코비가 시판되었듯 현겸이가 불고 다니던 풍선껌도 슈퍼에서 구할 수가 있었다. 그때 우리반의 학생이 36명이었는데, 이 만화를 읽지 않은 사람이 없었던 관계로, '왜 고흐는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라는 질문에 모두 똑같이 '어린 창녀에게 주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던 일이 있었다. 6년 전의 이야기인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확실히 그때의 우리를 나타내는 아이콘 중의 하나였던 것을 다시 실감한다.

그 해에 생일 선물로 받아서 고이 모셔놓은 책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애장판이 다시 나올 줄은 몰랐다. 감회가 정말 새로워, 서점에서 내내 만지작 거리다가 결국은 사왔다. 좀더 예쁜 그림의 하드커버 표지로, 두권이 한권으로 묶여서 출판되었다. 집에도 있는 책인줄 뻔히 알면서, 다시 사서 다시 읽었더니 뭐라고 해야할까.. 흔히 말하는 '감회가 새로웠다'라고 해야할까..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더 어렸던 나이를 추억할 수 있었던 통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추억이 되어도 좋을 만화지만, 확실히 지금 봐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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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장군전 30
박수영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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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책이 3권까지 나왔을 때였고, 사모으기 시작한 것은 책이 6권까지 나왔을 때였다. 그때 내가 중학생이었던 듯 한데 벌써 대학생이 되었으니까, 이 책도 제법 오래 연재되고 있는 것이다. 만화를 좀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기가 읽는 것의 1/30을 사 모으기가 힘들다. 돈도 돈이지만, 과연 이 만화가 처음의 그 재미를 그대로 가지고 갈까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만화를 사 모으는 사람들에게, 나는 작가와 출판사가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것은, 만화 뿐만이 아니라 어느 책에나 통하는 말이지만 말이다.

내가 장군전을 사모은 것은, 나름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 만화를 읽은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동감하는 말이 '초반에는 재미있었는데 갈 수록 재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거, 대단히 치명적이고 위험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만화의 생명은, 솔직히 재미에 있다. 재미가 있기 때문에 읽는 것이고, 그래서 사 모으는 것이다. 그런데, 만화가 재미가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거야 말로 배신이다. 더군다나, 처음에는 재미있었다가 갈 수록 재미가 없어진다니.. 이번에 31권이 나왔다는데, 나는 30권까지 서점에서 다 사모았다. 새로 책이 나왔다고 하면, 습관처럼 그냥 사게 되는데, 사면서도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나 하고 의심하게 된다. 작가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재미가 없어진 책에대해 독자는 냉정해 질 수 밖에 없다. 이건 당연한거다.

책이 재미있었을 때는 작가가 '100권까지 하겠다'는 말을, 유쾌한 농담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재미가 급하강 한 지금에는, 정말로 100권까지 나오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다. 삼국지라는 불멸의 베스트셀러에, 작가 나름의 상상력을 섞는 것은 상관 없다. 그 상상력이 이 만화의 매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벌써 여러권을, 아무런 내용없이 허비했다는 기분이 든다. 특히, 20권을 넘기면서 부터는, 한권을 읽는데 5분이면 족할 정도의 책이 되어버렸다. 퀄리티가 떨어졌다는 기분이 들어서, 정말로 씁쓸하다. 제발 처음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처음에 내가 느꼈던 그 쫀득한 재미가 정말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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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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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제목과 옅은 커피색 표지가 마음에 들어 다른 사람의 것을 빌려 읽은 책이다. 폴 오스터라는,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이 작가의, 젊은 시절(이라고 해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걸친 시기를 지칭하지만) 이 기록된 자전적인 이야기다. 자전적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박완서님의 소설들 처럼 극적인 요소를 풍기기 보다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휴먼다큐 같은 분위기의 책이다.

힘들고 절망적이었던 시간들을 곱씹으면서, 특유의 문장력으로 매만지는 솜씨가 그야말로 일품이다. 어느 지극히 일상적인 부분, 밥을 먹고 자연스레 뽑아 드는 담배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쓰린 부분들을 드러낸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곧 우연이 되고, 마침내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일상이, 갑작스레 '인생의 잊혀지지 않는' 그 무엇으로 돌변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돌변도 대단하지만, 이것이 어느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문장 전체 문단 전체, 결국은 책 전체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 더 대단하다. 살아있는 것처럼, 생명을 가진 유기체의 팔딱이는 힘. 생동감 느껴지는 생생한 묘사에서 유기체의 힘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내뿜는 기운 자체가 유기체만이 가질 수 있는 그것이다. 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읽어나가게 하는 신기한 힘. '젊은날 닥치는 대로 글씨기'라고,제목 옆에 달아놨지만 '제대로 쓴 산문'이 더 알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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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캣 Black Cat 12 - 뉴 웨폰
야부키 켄타로 지음, 박련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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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전혀 없었는데, 동생 앞으로 배달된 택배상자에서 만화책이 무더기로 나왔다. 원래 만화책을 사 모으는 녀석이긴 했지만 대게가 한두 권씩이었기 때문에 열 권이 넘는 책을 한번에 구입한 것은 나름의 사건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놀랐는데, 그 책이 내가 전혀 알지 못한 책이라는데서 나름의 쇼크를 받았다. 블랙캣? 알 수 없는 제목의 알 수 없는 내용. 분명, 동생의, 젊은 날의 실수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어느 날부터인가 나까지 팬이 되어버린 것이다.

주인공은 트레인. 트레인 하트네트로 제목이기도 한 '블랙캣'인 남자다. 암흑의 거대조직 크로노스의 최정예 집단 '시간의 파수꾼' NO.13으로 있다가 탈퇴하여 최근에는 스벤이라는, 나름의 개성 있는 남자와 동업중이다. 그들이 택한 동업직종은 스위퍼. 에피소드처럼 보여지는 그들의 일이나 생활은 '겟백커스 탈환대'를 연상하게 한다. 제법 흡사한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 만화나 저 만화나, 주인공의 운명이란 꼬이기 위해 존재하고, 주인공의 몸이란 다치기 위해 존재하며, 주인공의 머리란 복잡해지기 위해 존재한다.

이 불멸의 공식은 트레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요즘 그는 매우 복잡하고 골치 아픈 상황 속에 놓여있다. 한때 동료였던 크리드가 저지른 엄청난 일에 얽혀 들었기 때문이다. 동료에서 원수가 된 남자 크리드. 그는 건드릴 수 없는 적이라 생각했던 크로노스에 반기를 들면서 시간의 파수꾼마저도 제거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 정도만 복잡하면, 천하태평 트레인도 그냥 하던 일이나 하며 밥을 빌어먹고 말 터인데, 주인공인 이상 그럴 수가 없다. 크리드가 트레인에게 이상할 만큼 집착하기 때문이다.

상황은 트레인이 얽힐 수밖에 없게 되었고, 무사태평의 주인공이지만 주인공 자리가 주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지, 계속해서 연관되기 시작! 게다가 아직 풀지 못한 비밀 이야기들이 한 가득 이라 만화는 지칠 줄 모르는 달린다. 멈출 새가 없는 듯 하다. 추천하기 부끄럽지 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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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키튼 1 - 사막의 카리만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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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나오키상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그의 맹목적인 팬이다. 만화의 팬이라면 누가 그를 거부할 것이고, 또 누가 그의 작품에 침을 뱉겠는가! 단연코 그럴 사람은 없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수식어가 증명하듯, 그는 언제나 촘촘한 복선과 수십, 수백 겹으로 포장된 공포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인 후 좀처럼 놔주질 않는다. 최근에 나온 어떤 영화처럼, 전기톱으로 얼굴을 갈아버리는 잔혹한 장면은 조금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그는 언제나 그 이상의 공포를 창조한다. 그래서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그가 그린 만화 마스터 키튼. 사실, 앞에서 장황하게 말한 나오키상이 그린 것이지만, 그는 그야말로 '그렸을 뿐'이다. 글은 다른 사람이 썼는데, 왠지 만화 자체가 다른 나오키상의 작품과 굉장히 흡사한 오오라를 내뿜는다. 분명 나오키상이 같은 주제와 인물로 만화를 그렸으면 이와 같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 해도, 평소 나오키상이 내게 준 믿음만으론, 나는 이 만화를 읽었을 것이다.

마스터, 달인이라는 뜻이다. 주인공 키튼은 대단히 훌륭한 재원이다. 옥스퍼드에서 고고학을 수학하여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며, 최고의 SAS대원이었던 동시에 유능한 보험조사원이다. 그의 화려한 경력만 보면, 그는 분명 '엘리트의 인생'을 살아야 마땅한 '엘리트'이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중학생 딸을 둔 이혼남에다가(그는 이혼을 '당했다')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시간 강사 자리는 얻기 힘드는데, 부업으로 뛰는 보험조사원은 의뢰가 폭주한다. 게다가, 천부적 서바이벌능력이라는 반갑지 않은 재능 덕에, 제대한지 십수년은 될 것 같은 SAS에서도 툭하면 그를 찾아내 어딘지 알 수 없는 오지나 적지 한 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이만하면 그의 엘리트적 경력과는 상관없이, 그가 불쌍해지지 않는가? 그렇다. 그는 분명 불쌍하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아 되살아나는(?) 그를 보는 것은 왠지 유쾌하다. 상황에 못 이겨 그렇게 되어버린, 처량한 인디아나 존스 같지만, 왠지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도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기억,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는 것이 '고고학'인 것처럼, 그의 인디아나 존스 같은 모험도 '사람'을 더듬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능에 가까운 서바이벌 능력과 한 가득한 인간미를 내뿜는 키튼. 본인은 부정하지만 그는 정말 인생의 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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