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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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제목과 옅은 커피색 표지가 마음에 들어 다른 사람의 것을 빌려 읽은 책이다. 폴 오스터라는,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이 작가의, 젊은 시절(이라고 해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걸친 시기를 지칭하지만) 이 기록된 자전적인 이야기다. 자전적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박완서님의 소설들 처럼 극적인 요소를 풍기기 보다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휴먼다큐 같은 분위기의 책이다.

힘들고 절망적이었던 시간들을 곱씹으면서, 특유의 문장력으로 매만지는 솜씨가 그야말로 일품이다. 어느 지극히 일상적인 부분, 밥을 먹고 자연스레 뽑아 드는 담배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쓰린 부분들을 드러낸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곧 우연이 되고, 마침내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일상이, 갑작스레 '인생의 잊혀지지 않는' 그 무엇으로 돌변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돌변도 대단하지만, 이것이 어느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문장 전체 문단 전체, 결국은 책 전체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 더 대단하다. 살아있는 것처럼, 생명을 가진 유기체의 팔딱이는 힘. 생동감 느껴지는 생생한 묘사에서 유기체의 힘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내뿜는 기운 자체가 유기체만이 가질 수 있는 그것이다. 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읽어나가게 하는 신기한 힘. '젊은날 닥치는 대로 글씨기'라고,제목 옆에 달아놨지만 '제대로 쓴 산문'이 더 알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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