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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없어야 나라가 산다 - 학벌주의의 뿌리를 찾아서
김동훈 지음 / 더북(The Book)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평소 행실은 방자하기 그지 없으나, 그래도 일단은 교육학을 공부하는 학생인지라 이런 책들을 접할 기회가 많다. 개인적인 관심도 물론이지만, 학과에서 주어지는 텍스트로도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감상을 축약하고 시작한다면, 책에 쓰인 말은 모두가 골백번 옳은 말이지만 나처럼 줏대 없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독인 이야기다. 서울대가 가지고 있는 숫한 폐단과 함께 어느새 그 금자탑을 우러르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대학은 교육부라는 관공서에서 거의 모두 쓸다시피 하여 주관하고 있다. 대학 뿐만 아니라 사립 초, 중, 고도 마찬가지다. 이런 형태의 교육은 선진국이라는 구라파에 비교하면 굉장히 이상한 것이긴 하다. 우리나라 교육계는 교육부를 마치 왕처럼 모시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군림하는 행정부, 그 행정부의 한 부서일 뿐인 교육부가 우리의 대학교육을 비롯한 모든 교육을 총괄한다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어느날 부터 그 '왕좌'에 반역을 꾀하는 '반동분자'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 존재를 일컬어 '최고 명문 서울대'라고 했다. 국가에서 쑥쑥 키워주고, 졸업한 동문들이 온갖 양분을 쏟아부어 우량의 우량으로 키워낸 대학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을 지배하는 듯한 곳이기 때문에 사실은 '서울대'가 아니라 '한국대'같은 이름이어야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서울공화국'의 애칭이기 때문에 별 수 없다.
책은, 처음부터 서울대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유감없이 서술한다. 일반인이 그저 우러르기만 했던 서울대가, 사실은 우러를 수 밖에 없는 것임을 담담히 말한다. 다만, 그동안 일반인들이 우러렀던 서울대의 특징(그러니까 예를 들면 최고 수재들만 모여서 아주 높은 수준의 연구를 한다는 등) 을 말함이 아니라, 예산의 절반을 쓸어가고, 대기업에서는 너도 나도 돈을 부어 투자해 주려고 하고, 졸업 동문들이 낸 모금액이 단대 별로 몇백억에서 몇천억에 이른다든지 하는 것들을 말한다. 이 부분은, 우러르게 만들었다 놀라게 하고, 결국은 화나게 한다.
쉽게 말해, 과잉투자를 하고 있는 거다. 서울대에 투자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서울대도 교육부 산하의 국립대 중의 하나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인데 그런 것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그 높은 프라이드를 상처낸 것인지, 서울대는 특별법을 제정하려 했었다는 것도 자세히 나와있다. 서울대를 나와서 고시에 합격하면,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드는 기준에서는 3,40억을 먹고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정말로 한숨이 나왔다.
저자의 다른 책, <한국의 학벌, 또하나의 카스트인가>도 내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울대를 '모시는'이런 분위기에 대한 비판을 하려면 당연히 입시제도에 대한 문제가 나온다. 저자 역시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울대 중심의 학벌사회를 탓하던 그런 신랄한 맛은 별로 없다. 입시제도 자체가 워낙 난점이라 그렇겠지만, 이 부분은 좀 평범하다. 다만, 국립대학의 운영 문제에 대한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라 신선했다.
내내 흥분하면서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읽었는데, 이 책은 중대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나처럼 줏대 없는 사람은, 책을 읽는 동안에는 분개하지만 책을 다 읽고나서는 '역시 서울대가 좋은거구나'라는 생각에 깊게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서울대에 다니는 친구를 그야말로 '우러르며' '모시게'되기 때문이다. 끝까지 비판의식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 것이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