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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9
토마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아, 이 콩알같은 그림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한 손에 가비얍게 쥐어지는 가뿐함과 귀엽게 디자인된 표지가 일단 맘에 든다. 그리고 지금은 폐간된 여성순정지 '오후'에서 [헤어진 남자친구와 친구하기]라는 단편으로 데뷰한 이 작가의 그림체를 이미 본 나로서는 시작부터 한 점 주고 들어가게 된다. '오후'가 배출해낸 작가랄 게 사실 없는, 기존의 매니아층을 형성한 작가들을 죄 모아다 만든 잡지인지라, 잡지로서 자랑이 될 배출작가랄 게 없지만도, 암튼 토마는 그런 작가다. 그때의 그림은 이강주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었고(나쁜 의미는 아닌) 펜선은 단순하면서도 젊은 감각이 담겨있었다. 그러던 작가가 엠파스에 [선생님과 나]를 연재하면서 콩알같은 그림으로 변신했다.

너무나 조그마해서 파스텔 색의 글씨들은 읽기도 어려웠지만, 표정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콩알같은 그림인데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었다. '선생님과 나'는 함게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거나 내 질문에 선생님이 대꾸하면서 진행되는데 미묘하게 눈썹이 일자이거나, 미묘하게 처져있거나 해서 콩알그림은 표정 변화를 준다. 그러니 귀엽고 재치있는 짧은 대사만큼이나 콩알그림은 매력이 있었더랬다.

'남자친9'는 콩알보다는 조금 커졌지만 어쨌든 여전히 작다. 거기다 등장인물도 많아졌고 그 중 두 명은 무려 펑크밴드와 락밴드 소속이다. 그런 캐릭터는 야자와 아이의 '나나'처럼 8등신에 쭉쭉빵빵 남녀이고 화려한 액세서리와 거친 패션감각이어야 한다는 이미지건만 콩알보다 조금 큰 그림에선 기껏해야 헐렁한 바지자락 직직 끌며 사자머리를 한 펑크밴드 처자가 나올 뿐이다. 그게 또 어찌나 귀엽고 우습던지.

스토리는 아기자기하면서도 분명하다. 분명한 기승전결을 따라서 한 커플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다가 그 뒤에 어찌어찌된 이야길 잘 표현한다. 낄낄 웃다가 "아, 맞아 맞아!"라고 공감하다가 마지막엔 낮은 한숨과 함께 책장을 덮게 만드는, 어쩌면 유치해질 수도 있었을 이야기를 재미와 함께 담담한 일상 속에서 만들어냈다. 그림이 크던 작던 토마라는 작가의 만화가로서의 감각은 이런 부분이 아닐가 싶다.

만화책이라고 대하지 않고, 귀여운 그림책 정도로 생각하고 찾는다면 좋겠다. 생일인 친구에게 가볍게 선물해주기에도 귀염성 있어서 좋을 듯. 어쨌든 내 책장 한 켠에, 눈에 잘 띄고 꺼내기 쉬운 곳에 놓여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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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티 MISTY 6
변미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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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변미연이란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권이 막 나온 2003년 겨울이었다.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약간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남자의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작가에 대해서나 작품에 대해서 사전지식이라곤 하나 없이 구입했다. 1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40여분의 시간동안 몇번을 감탄했는지 모른다. 신인작가의 첫 권을 잡고 이렇게까지 감탄할 수 있다는 것에 신기했었다. 그리고 어느새 6권이 나왔으니, 변미연이란 작가에 대한 관심도 벌써 햇수로 3년이 되었다.

1권을 낸 뒤 만화웹진 한 곳에서 이 작가에게 집중했고, 그 웹진을 자주 찾는 만화독자들에게 조금식 알려졌다. 그리고 이 작품을 본 만화독자들이 입에 침 튀겨가며 친구들에게 전도하여 지금은 제법, 작가의 팬이 늘어나 있다(고 생각한다). 이름있는 만화잡지에 번듯이 연재한 경력도 없는 작가, 그저 단행본만 4달에 한권씩 착실히 내는 작가. 결국 2005년에는 윙크나 계간만화, 허브 등의 잡지에 단편이나 중편을 연재하기에 이르렀다. (그때문에 6권이 많-이 늦어졌지만 작가에게 좋은 기회가 생긴 걸 탓할 수 없는 독자의 마음 -_ㅜ)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 하면, 신인답지 않은, 그리고 나이답지 않은(...으흙!) 노련한 이야기 전개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마음을 파고드는 그, 순간의 한 줄! 썩 잘 그리는 그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화면을 장악하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에 휘말려 작품 그 자체에 빠져들고 만다. 예전, 만화가 강경옥의 연출력의 핵심에 대해 "한 페이지에서 독자를 집중시킬 컷을 단 하나만 만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작가, 변미연이 그렇다. 독자를 집중시키고 싶은 컷, 독자를 빠져들게 하고 싶은 대사, 그 한 컷과 한 줄을 위해 페이지를 과감하게 잘라낸다. 그러면서 피식, 낮게 웃으며 "그 외에 뭐가 있어? 아무 것도 없잖아" 라는 대사를 넣는 것이다.

1권만으로는 Y물이라 일컬어지는 동성애물로 보일 수 있으나 2권으로 넘어가면 달라진다. 미모에 능력까지 갖춘 S대출신 학원강사가 등장하며 남자의 이야기 외에 여자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아니, 어떨땐 그 여자의 이야기가 본 주인공을 압도할 때도 있다(주객전도,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그리고 익숙한 재즈들, 익숙한 책들, 익숙한 거리들이 펼쳐진다. 6권에서는 그간 어렴풋이 짐작만 가능했던 조성배 작가의 옛 이야기와 그의 속내도 드러난다. 그러기까지의 노련한 작가의 펼쳐냄은, 왜 많은 만화평론가들이 이 작가와 작품을 주목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순정만화 지상주의자인 나로서는 이 작품 앞에 넙죽 엎드려 "팬이어요!"를 외치는 남성독자들을 보며 괜시리 어깨 펴지고 콧대가 높아진다. 여성독자들 만큼이나 남성독자들이 이 작품을 주목하고 좋아한다. (이럴 때면 역시 만화를 논하려면 순정만화를, 이라는 명제가 성립된...쿨럭) 언젠가 작가를 직접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 생기발랄함과 역동적인 모습에 같이 있던 사람들 모두가 반해버렸다. 1권에 나왔던 1호선 백운역에 팬들끼리 가보기도 하고, 2권에 나왔던 인천 자유공원을 가보려고 2시간 걸려 인천을 가기도 했다. 굉장한 판매부수를 기록하진 못했더라도, 작품을 읽어본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란 쉽지 않은 법.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새삼 이 작품을 다른 많은 독자에게 소개할 자리를 찾는다.

당신은 재즈를 좋아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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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유(W) - 2집 Where The Story Ends [재발매]
더블유 (W) 노래 / 윈드밀 이엔티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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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앨범을 알게 된 건 변미연이라는 만화가를 통해서였다. 워낙에 이 신인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지라 그가 소개한 음반도 잽싸게 들어보았는데... 아, 이런 멋진 앨범을 소개해줘서 고맙습니다, 변미연님! 회사에 혼자 남아 늦게까지 야근할 때 볼륨을 실컷 올려두고 듣는 기분은 정말 최고!!

가사를 곰씹는 재미가 있는 노래는 즐겁다. 물론 흥겨운 멜로디 위로 그 가사들이 올려지면 더 즐거운데 W의 2집이 그렇다. '소년세계'의 가사를 보라, 풋풋한 소년의 모습이 절로 떠오르지 않는가.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헐렁한 교복 속 덜 자란 몸을 어색하게 움찔거리는 소년들. '소년세계'를 듣다 그런 소년들을 보게되면 실실 웃음이 나온다. '버블 샤워'는 또 어떤지. 늦은 밤의 야근에 제격이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건가, 나는 과연 잘 하고 있는 건가. 그럴 때 '너는 잘못 되지 않았어'라고 위로를 받으면 머리 속의 잡념을 털어낼 수 있다. '만화가의 사려깊은 고양이'는 또 어떤지. 만화를 좋아하고, 그 멋진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를 좋아하는 만화독자라면 반길 노래가 아닌가. '은하철도의 밤'은 아련한 기차소리를 배경으로 미야자와 켄지의 동화 속으로 들어간다. '거문고자리'는 한시 한 편을 읊조리는 듯 꽃처럼 피고 지는 삶을 경쾌하게 노래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짜증이 나도 화가 나도, W의 노래들을 듣다보면 가사와 멜로디 속에 모든 기분이 다 풀리고만다. 요즘 즐겨듣는 곡은 '거문고자리'. 찬 바람에 마음이 스산해진 탓인지 꽃처럼 피었다가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사람들 생각에 마음이 아릿해져선지.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노래를 들으며 검은 밤하늘을 올려보곤 한다. 아메바피쉬의 그림으로 아기자기 하게 꾸며진 앨범자켓은 꿈공장에서 찍어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명체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인사하며 친근한 몸짓을 나눈다. 그렇게 W의 곡도 마음에 다가온다. 오래도록 즐겁게 마음에 남을 곡들, 눈 내리는 밤에 '은하철도의 밤'을 들으며 다시 되새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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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nM27 2006-04-26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왜 별이 3개 일까요.. ^^;
 
어린이와 평화 - 박기범 이라크통신
박기범 지음 / 창비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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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는 이 책의 정가를 수정해달라. 9800 + 200, 200원은 이라크 전쟁피해 아동을 위해 쓰입니다... 이렇게 말이다. 책을 읽고서 나의 감상은 책 값이 너무 싸다! 라는 거였으니.

지구촌 어디든 울음 없는 곳이 없고 100평 빌라에 사는 월 용돈 300만원의 사람에게도 눈물은 있는 법이지만, 그래선지 다른 이의 고통에 무관심해지는 것이 현대인이다. 타인의 고통에서 나를 떼어내어 무연한 관계로 남고 싶은, 치졸한 자기 본위. 살아가려니 어쩔 수 없이 타인의 고통에 둔해져야 했더라, 라고 나 역시 말하고 그렇게 충고하지만. 그렇더라도 고통받는 타인을 도우려 하지 않는 것은 분명 죄가 될 것이다. 벌써 몇년째 뉴스에선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피해를 말한다. 당장 그곳에 달려갈 수 없으니 뉴스를 무심하게 지나치는 우리에게 박기범은 그러지 말라고, 달려가지 않더라도 그 뉴스를 지켜봐 달라고 간곡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다쳐가는 아이들의 이름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들어보라, 그들도 당신의 자녀와 형제와 친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라고 말이다. 순간 순간 도망치고 싶은 상황- 미사일 폭격이 계속되고 군인들의 총 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곳에서 박기범은 구도의 길을 걷듯 자기 자신을 들여다봄으로 타인을 들여다본다. 간곡한 그의 글을 읽다보면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라크와 그리고 이라크만이 아닌 전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는 학살과 눈물의 현장을. 그리고 그 뉴스들에 갈수록 무심해지는 나와 우리를.

[어린이와 평화]는 이라크에 파병 중인 한국인이라면 어떤 대의명분으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죄라는 현실을 일깨워준다. 매섭게 질타하지 않는다. 그저 울고 또 울어 부은 눈으로 간곡하고 애절하게 부탁하고 속삭이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글이다. 당장 이라크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부치지 않더라도, 자신의 죄, 우리 모두의 죄가 무엇인지 잊지 말라는. 이라크 상황에 대한 정치적인 분석은 다른 책에서 읽더라도 인간 본연의 정으로 읽어야 하는 이라크 상황은 무엇인지- 나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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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이야기 - 천상의 언어, 그 탄생에서 오늘까지
이은경 지음 / 열화당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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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지경사'의 [꿈꾸는 발레리나]나 [핑크빛 발레슈즈]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만화 [스완]이나 [스바루] [두다댄싱]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에 호기심이 들 것이다. 뿐인가 [빌리 엘리어트]나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왕의 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역시 이 책에 호기심이 들 것이다. 그럼, 호기심을 넘어서 과연 구입할 정도의 책이냐면...

열화당이라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출판사. 특히 열화당 사진문고는 그 속을 보지 않았더라도 서점에 진열된 걸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도판의 인쇄 상태라면 열화당이란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출판사. 발레리나들의 아름다운 사진을 골라낸 저자의 센스도 물론이고 그 사진들을 섬세하게 종이에 담아낸 것에 다시 한번 역시 열화당이구나, 싶다.

사실 발레 애호가(?)도 아닌 이가 선듯 손에 넣기엔 부담스런 가격이다. (더구나 나는 영화나 만화가 아니고는 실제로 발레 공연을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냉큼 사버린 건 어느 페이지를 어떻게 펼쳐 읽어도 재밌었기 때문이다. 기자 출신이라선지 문장력이 좋은 저자, 뿐인가, 기자인 탓에 구할 수 있었던 많은 도판 그리고 국립발레단의 협조가 있었다. 데스크에서 혹독히 단련된 기자다운 유려한 글은, 거기에 발레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나 있다. 저자의 머리글부터 읽는 이를 흥미진진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이렇게 짝사랑하는 사람이 쓴 글이라면"하고 본문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 책이 과연 기대할만한 책인지 염려스럽다면 책 머리든 책 뒤든 저자의 말을 찾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저자의 말이 없으면 옮긴이의 말이라도)

발레 문외한이라도 발끝으로 서서 춤을 추는 발레리나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리 없다. 그네들의 웃지못할 속사정, 세간의 환상과는 다른 비참함, 그리고 재능과 운과 노력으로 쌓아올린 정점의 자리에 있는 이만이 갖는 화려함. 저자는 그 이야기들을 재치있고 애정어린 말로 풀어간다. 더군다나 위에 언급한 책이니 만화니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궁금해할 발레 스타의 사진들을 고르고 골라 실었으니 눈요기로는 반가울 뿐이다. 글로만 알던 니진스키를 보게 된 기쁨이나, 만화가가 그렸던 [꿈꾸는 발레리나] 삽화보다도 더 만화에서 빠져나온 듯한 용모의 파블로바 사진을 본 뒤의 감탄. 조금이라도 발레에 관심있는 이라면 궁금해할 내용을 쏙쏙 담아준 것은 저자의 센스가 아닌가 싶다.

4페이지를 정신없이 읽어보다 서서 읽자니 시간이 맞질 않아 결국 그 자리에서 구입을 결정해버렸다. (온라인 서점이 아니면 도서구입을 아예 하질 않던 내가 몇년 만인지!)(그러고선 온라인 서점에 리뷰를 올리다니...)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어느새 새벽이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그리고 감탄스럽게 읽을 수 있었다. 큰 맘 먹고 사노라던 지갑을 열 당시의 작은 망설임조차 잊었다. 이제 남은 건 직접 공연을 보러 가는 것. 책 값보다 몇 배의 관람료가 나가겠지만 이걸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고 새로운 애정을 갖게 된다면 반가운 일일 것이다. 내게는 2차원의 예술로만 느껴지던 발레를 이제 3차원에서 만나봐야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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