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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라이트의 다니엘서 강해 - 오늘날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는 법
크리스토퍼 라이트 지음, 박세혁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오늘날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는 법
이 책은 다니엘서를 통해 오늘날 어떻게 우리 삶과 사고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섬세하게 보여주고 알려준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종교인구 1위 967만명 기독교(45%), 2위 761만명
불교(35%), 3위 289만명 천주교(18%) 순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중고등학교 교실에 들어가 자신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밝히는 아이들은 한 반에 1~2명인 실정이다. 요즘 한 반에 보통 25명 정도라고 한다면 수치와 너무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단순히 교회에서 말하는 가치와 세상에서 말하는 가치의 충돌로 인한 것일까?
다니엘서는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6장은 다니엘과 연관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고, 7~12장은
다니엘이 받은 꿈과 환상에 대한 기록이다. 다니엘서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다니엘과 세 친구들, 풀무불, 사자굴, 그리고
꿈 해석이 떠오른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다니엘서에 등장한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은 기원전
605~562년에 재위했고 신바빌로니아 문화를 건설했으며, 대규모 건축 사업을 일으켰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바빌로니아의 공중 정원’이다.
다니엘, 하냐냐, 미사엘, 아사랴이라는 이름은 1장에서 포로로 끌려가면서 이름이 바뀌게 된다. 벨드사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이다. 이 책은 다니엘서의 대한 주석이 아니다. 다니엘서의 통일성이나 후반부의 장들 혹은 다니엘서 전체의 연대에 관한 비판적인 물음에 대한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지상의 왕국 안에서 살아가는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살 수 있을까? 어떻게 그리스도인은
어떤 다른 종교의 문화이든 세속적이며 점점 더 이교화되고 있는 서양 문화이든, 낯선 비기독교적 문화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증언할 수 있을까? 오해나 고통, 위협, 심지어는 죽음과 같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니엘서를 꼼꼼히 읽지 않으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당시의 문화와 환경을 모두 다 거부 했다고 생각하지 쉽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거부한 것은 왕의 내려준 음식에 관한 것뿐이었다. 그 밖에 이교적 교육에 대해서, 공직자로 임명 되는 사실에 대해서, 이방신의 이름으로 개명하는 일에
대해서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거부하지 않았을까?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느부갓네살 왕의 왕권과 바벨론 국가가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세워졌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왕에 대한 전적인 충성에는 거부했음을 보여준다. 다니엘은 이교적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관이 어떠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인물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동시에 주변의 세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하기 위해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세상에 굴복하거나 순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복음을
알리고 전하기 위해 세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적 지배자들이 정의와 정직, 긍휼의 마음으로 잘 다스리도록, 그들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함과 동시에 그들이 부패하거나 비윤리적인
관행에 관여하는 것을 알게 될 때, 성경적, 윤리적 가치에
반하는 법률을 통과시킬 때, 국가가 내부적으로나 의심스러운 전쟁으로 과도하며 정당성이 없는 폭력을 자행할
때, 국가가 하나님의 피조물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주고 지구의 기후를 위협하는 일을 저지를 때, 그런 정책에 반대하는 기도를 할 수 있고 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반대하는 목소리도 내야 한다.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과 국가를 비판 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의 영역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할수록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기준으로 정치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평가하는 우리의 능력이 더 날카로워질 것이다.
느부갓네살의 꿈을 두 번 해석한 젊은 다니엘, 벨사살이 본 손가락으로
쓴 글자를 해석한 노인 다니엘이 등장한다. 다니엘서 3장에서
금 신상에 절 하지 않아 풀무불에 던져진다. 그리고 6장에서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절 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
다니엘은 9장에서 기도를 한다. 예루살렘에서
느부갓네살에게 붙잡혀 끌려왔을 당시 어린 소년이었다. 그의 기도에 나오는 죄악들, 반역, 불순종에 개인적으로 참여한 적이 없다. 하지만 다니엘은 자신의 백성과 자신의 죄로 고백한다. 이스라엘의
죄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고백하며 회개의 기초로 삼는다. 미래에 대한 모든 소망은 오직 이 기초 위에만
세울 수 있다.
이 책은 강해서지만 딱딱하지 않다. 논쟁이 되는 부분들에 대해 솔직히
말하고 저자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에 합당한 이유를 알려준다. 또한 몇몇 부분들은 난해한 상태로
놔두기도 한다. 다니엘서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많은 오해와 착각이 산산이 없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세상 속에 살아가고 그 세상이 하나님을 외면하거나 대적하는 곳이라면 더욱더 다니엘서를 읽음으로써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니엘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을 듯 하다.
<인상 깊은 구절>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로마서 13장에서
바울이 말하듯이) 왕과 그의 정부가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음 – 하나님이
그 순간 그분의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그들을 그 자리에 두셨음- 을 인정하는 것과 왕에게 무조건적인 ‘언약적’ 충성을 바치는 것을 구별할 수 있었다(너무나도
많은 그리스도인은 필수적인 구별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 아래에서
국가를 섬기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은 국가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국가를 섬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이 살게 하신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자”했지만, 모든 비판이나 의문을 침묵시키는 우상 숭배적인 애국주의를
거부했다. 느부갓네살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음을 부풀려서 스스로 신적인 지위를 지닌다고
주장하면서(나중에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절대적인 요구를 하기가 너무나도 쉽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더
높은 우선순위에 충성하는 마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에 대한 언약적 충성- 으로 양심의 자유를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이런 통찰의 중요성과 그에
근거해 그들이 취한 입장은 왕의 음식이 왕의 풀무불이 되었을 때(단
3장) 완벽히 입증된다. 그들이 1장에서 내린 결정 덕분에 그들이 훨씬 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을 때 그들은 믿음을 지켜낼 수 있었다.(60~6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