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전도 -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
랜디 뉴먼 지음, 정충하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

 

이 책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실천적 전도 지침이 담겨 있다. 온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면 좋겠지만 그러한 경우는 드물다. 부모, 자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는 경우를 교회에서 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겉으로는 모두 다 같이 교회 출석을 하지만 개인의 신앙은 천차만별일 수 있고 목사님들이 농담으로 던지는 오늘도 예배당에 끌려와 가족의 평화를 위해 자리에 앉아 계신 아버지, 자녀분들을 축복한다는 말은 우스개 소리가 아닐 듯 하다.

 

전도(傳道)의 기독교적 의미는 기독교의 교리를 세상에 널리 전하여 믿지 아니하는 사람에게 신앙을 가지도록 인도함이라 되어 있다. 그렇기에 가족 전도는 힘들고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며 수고와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핍박 당하고 있는 북한 지하 교회 교인들, 굶주림에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기도를 하며 팸플릿을 들고 모르는 이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조금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나의 허물을 다 알고 있는 아빠, 엄마, 누나, 언니, 동생, 오빠 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약간의 용기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이럴 때 드는 가장 먼저 된 생각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모범을 보이지 못한 내가 어떻게 동생에게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겠는가?”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할 수 있을까?” 등등 부정적이고 불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현재 가정은 점차 파괴되어 가고 기능을 잃고 있다. 가정이 하나님이 주신 공동체임을 인정하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할 듯 하다. 하나님은 친밀함을 배양하고 신뢰를 쌓아 올리고 다른 모든 관계의 기초로서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기 위해 가정을 제정하셨다. 하지만 마귀는 그것을 싫어하기에, 가정을 친밀함이 아닌 불화의 근원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계속해서 행한다.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은 높지만, 그분은 말씀 가운데 우리에게 가정이 결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가정 역시 하나님보다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최악의 가정이라도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복음의 구속의 능력은 가정의 어떤 죄보다 더 크다.

 

 

가족 전도는 매우 어렵다. 모르거나 조금 아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감정적인 다툼이 일어나기 쉽다. 감정적인 다툼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죄의식과 분노이다. 두 가지는 내부와 외부, 모두로부터 공격해 오는 것처럼 보인다. 감정적인 문제에 대해 성경의 렌즈를 통해 넘어지게 하는 문제들을 철저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예를 들어 두려움, 염려, 수치심, 상실감, 슬픔 등이 있다. 이런 문제에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비추어 봐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스트레스의 배경음을 무시한 채 전도 방법이나 기술에만 초점을 맞추면, 효과적인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수님의 전도 모범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전도에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원의 유일한 길을 제시하는 방법은 많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호소하는 것도 전도 대상자에게 접근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것은 특히 가족에게 복음을 전할 때 유용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전하는 복음이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매력적인 부분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반면 달갑지 않은 부분은 지나치게 축소하거나 총체적으로 빠뜨린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관용과 긍정적인 자존감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부분만 듣기를 원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심판이나 회개 같은 개념을 낯설게 여기면서, 거의 언급하지 않거나 최소한만 언급한다. 이런 메시지는 처음에는 좋게 들릴 수 있지만, 결국 사람들을 진짜 복음으로부터 떨어뜨릴 수 있다.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복음을 전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랑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속죄의 희생을 전제한 대속적인 사랑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 속에는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보답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비그리스도인과 결혼하는 (혹은 연애하는) 동기는 다양하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잘못이다. 하나님의 공급이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의 결여를 의미하기도 하고 정욕의 결과이며 심지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 교육이나 교회 교육에 대한 반항으로 일종의 스릴을 느낀다.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표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우상 숭배이다. 즉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중심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드러내는 증표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먼저 자신의 불순종에 대한 회개를 해야 한다. 불순종의 죄를 고백한 후에야 비로소 복음의 온전함으로 믿지 않는 배우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성경적인 겸손은 죄에 대해 과도하게 허풍을 떠는 것이나 자신이 얼마나 악한지를 떠벌리며 그 안에서 뒹구는 것이 아니다. 다름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악하며 또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를 떠벌리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교만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계속해서 새로워져 가고 있으며 그러한 표적을 나타내야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겸손은 사람들을 복음으로 이끄는 기독교의 핵심이다.

 

가족 전도는 포기 할 수도 포기 하지도 못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천국과 지옥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육체적인 죽음 이후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안식하며 살게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 하지 않는 이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급박하지만 침착하게 서둘러야 하지만 신중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해야 하고 관계를 형성해야 하고 올바르고 명확한 복음을 설명해야만 한다. 가족 전도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 큰 도움과 위로와 격려를 받을 듯 하다.

 

 

 

 

 

 

 

<인상 깊은 구절들>

 

어떤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는 큰 희생을 요구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사랑했던 죄를 떠나보내야 한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는 큰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완강하게 걸어 온 길을 바꾸는 것은 그들에게 불가능하거나 굴욕적으로 느껴진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는 도저히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선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죄의 어둠과 그 결과가 그들을 움츠리게 만들며, 그들은 결국 실망하게 될 거라며 뒤로 물러난다. 만일 당신이 전한 복음이 그들을 실망에 빠지게 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 강한 타격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미지의 삶으로 모험을 떠나기보다 차라리 익숙한 쓰레기 더미에서 계속 뒹굴기를 원한다.(13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