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철학자의 유쾌한 만남 감성과 이성
고명수.강응섭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성과 이성

이 책은 시인과 철학자 사이의 편지 형식의 대화를 통해 서로가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엿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시인과 철학자를 티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시를 읽거나 철학책을 보는 이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생각하고 사유하고 묵상하고 고민하는 것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러기에 강연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시인과 철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뿐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시를 쓰고 철학적 사고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낮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해전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닌 이어령 교수와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와의 대담집인 <지성과 영성의 만남>이 떠올랐다.

전혀 조화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인물의 대화를 엮은 책인데 다양한 주제가 함축적으로 나와있다. 이 책 또한 시인과 철학자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반대로 같은 부분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동기는 시인은 어떻게 시를 잉태하는지 또한 철학자는 시를 어떻게 사유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 되었다.

고명수 시인과 강응섭 철학자 이 두 명이 2여년간 편지를 주고 받은 것을 엮어 내었기에 더욱더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시인이 먼저 철학자에게 묻고 그것에 대해 철학자는 답을 하는 형식을 갖추었지만 서로의 사상을 개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인도, 철학자도 아닌 독자들은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윤동주의 <서시>,  <별 헤는 밤> 김소월의 <진달래꽃> 등이 예시로 들기에 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봐도 친숙하게 느껴진다.

원초적인 질문을 시인은 철학자에게 던진다. 시란 무엇일까? 자신이 생각하는 시에 대해 생각하고 의견을 개진한다. 또한 시인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시인은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지를 이야기 하고 더욱 한발 짝 들어가 존재를 드러내는 언어란 무엇인지, 풍요 속에서도 간절하게 궁핍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에 대하여 생각을 말하고 묻는다.

이에 대해 철학자는 자신의 철학적 사고와 더불어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답을 해준다. 철학자의 말을 전부다 이해할 수 있진 못하지만 큰 틀에서 무엇을 말하자고 하는지는 알 수 있다.

시인은 말로 마음의 물꼬를 틔우는 것이 시라고 이야기를 한다. 또한 시를 쓴다는 것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언어체계로 인하여 분절되고 고착된 우리의 고정관념의 벽을 깨뜨리고, 그 태초의 무한한 의미의 세계로 환원시킴으로써 우리가 잃어버렸던 생활과 정신의 자유를 되찾아 주는 일이라고 한다.

시인, 철학자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말을 다루는 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말로 인해 가장 많이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지만, 그것을 치유하는 것 또한 말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인과 철학자는 우리의 삶 속에서 알게 모르게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시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사전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시인은 하나의 시어를 고르기 위해 말의 색감, 늬앙스, 리듬까지고려한다고 한다.

시인들은 대개 비본질적인 삶의 허상을 떠나 본질적인 삶을 추구 한다. 시인들은 남달리 감수성이 예민하고 마음이 여려서 누구보다도 상처를 많이 받는 존재들이다. 시란 일상을 떠도는 빈말공허한 말을 벗어나 찬말충만한 말을 찾아가는 것이다.

시인은 촛불 집회를 보면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언제나 뾰족한 이데올로기들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것은 폭압적인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혹은 보수, 진보 하는 좌우 이념의 대립으로 나타나서 평화를 뒤흔들어 놓기도 하고 이데올로기들은 개인의 평화로운 일상을 무참히 짓밟곤 했다.

자본주의의 치명적 유혹에 대해 유하의 시<체제에 관하여>에서 인간의 욕망과 허영을 증폭시키면서 수족관에 갇힌 산낙지처럼 사람들을 자신의 체제에 맞게 길들인다. 현재 소비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운명은 수족관에 갇힌 산낙지와 비슷하다. 가게주인은 산낙지에게 필요한 공기와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게주인의 이윤을 위한 것이다. 포획된 산낙지가 싱싱해야 더 많은 손님이 가게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수족관에 갇힌 산낙지는 분업화된 사회에서 파편화된 지식만을 배우는 우리 현대인을 상징하고, ‘가게 주인이 공급하는 공기란 자신의 전문화된 노동의 대가로 해서 받는 임금일 것이다.

그러나 임금이란 더 큰 자본의 형태로 회수되기 위해 일시적으로 제공되는 것에 불과하다. 가게주인이 산낙지에게 공기를 주입하듯이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줌으로써 노동자가 다시금 소비자가 되어 자본가의 상품을 구매해 줌으로써 자본가는 자신의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런 상품화와 교환가치에 의해 평가되는 자본주의 체제에 길든 사람들은 물신의 노예가 되어 간다.

두 학자의 수 많은 생각과 말들이 오가는 속에서 우리의 일상과 삶, 그리고 그 동안 가졌던 의심과 불안들이 녹아 있는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