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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스미스 ㅣ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 두 여성이 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인 19세기의 영국에 사는 동년배의 두 여자. 그들은 서로를 속이기 위해 만나지만 곧 서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모든 진실과 의도의 배를 가르고 진실한 욕망을 끄집어내는 날카로운 첫 키스의 부드러움, 주체할 수 없게 서로를 끌어당기는 애무, 그리움.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넘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당시는 페미니즘 운동이 본격화되는 때이기도 했지만 이 이야기가 동성 연애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배경으로 급진적인 사랑을 다루고자 하진 않습니다. 레즈비언 소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고 해서 그런 선이해를 갖고 접근해야 할 지적 소설이 아니라 알아야 할 진실을 밝히기 위한 몇 번의 급격한 반전을 엔진으로 부지런히 이야기를 견인해 나가는 장르 소설입니다.
시골이라 할만한 브라이어에 사는 막대한 상속녀 모드 릴리.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정신병원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그녀.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처방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가 삶을 마무리 한 광기 들린 어머니. 모드는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다고(그녀를 낳다가 죽었으니) 알고 있으며 언젠가 어머니처럼 미쳐버릴 것을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죽은 생모 대신 병원의 간호사들을 어머니처럼 따르며 자랐던 어린 시절. 어느 날 삼촌이라는 사람이 그녀를 데리러 옵니다. 오래 전부터 모드를 데려가기 위해 간호사들에게 돈을 주고 그녀를 양육하게 했던 것입니다. 브라이어의 대저택에 있는 누구도 그녀에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모드는 전염병 같이 불결하고 야생동물처럼 예의를 모르고 훈육할 수 없는 구제불능일 뿐입니다.
삼촌은 야심만만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음란한 소설들에 관한 완벽한 하나의 책을 만드는 것. 영원히 끝나지 않을 작업입니다. 그 일에는 조수가 필요했고, 모드는 그 일을 위해 삼촌의 고요한 저택으로 이주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엔 저항도 해봅니다. 도덕적 판단을 해서가 아니라 억압적이고 어두운 곳에서 어린애다운 고집으로 반항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항을 완전히 멈추고, 그 끈적끈적하고 소용돌이치는 물살 속으로 몸을 내맡”깁니다. 그녀가 “유순해진 것은 채찍질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 아”닙니다. “인내심의 잔인함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미친 자의 인내심만큼 끔찍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드는 그곳에 시간과 분위기, 그녀의 일이 길들여집니다. 삼촌에게 책을 읽어주고, 삼촌의 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항상 가죽장갑으로 손을 감싸고 있으며, 적나라한 그림과 문장들을 기억 세포 안에 보관합니다. 그녀에겐 책 자체가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돈의 가치를 가늠할 때도 책을 기준으로 해야만 이해할 수 있었고, 급박한 상황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낯익은 활자체입니다. 그래서 리버스 씨와 런던(모드의 눈에 런던은 우선 “글자투성이”의 도시입니다)으로 도망을 치게 되면 “나 자신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형태의 삶을, 아니 정해진 형태가 업는, 가죽과 장정이 없는, 책이 없는 삶을 살 그곳!”에서 “종이는 금지할 것이다!”라고 다짐합니다.
삼촌이 죽고, 혼자 남은 모드는 삼촌의 많은 책을 처분합니다. 도망 치기 전 면도칼로 그어버린 책들은 태워버리고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멀쩡한 책들은 대부분 팔아 버립니다. 삼촌 생전엔 책이 상하지 않도록 페인트로 창문을 막아 종일 어두운 서재였지만 이제는 시간에 따라 흘러나오는 빛을 받아낼 수 있게 어둠을 거둬버렸습니다. 혼자 남은 모드. 그녀는 그곳에서 글을 씁니다. 지옥이었지만 이제는 약간의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글이었습니다. 글을 써서 책을 내는 것. 그것으로 돈을 받아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것. 이야기의 뼈대를 발라내고 제가 던지는 질문으로 회귀합니다. 「지옥과 마찬가지의 세상에서 책을 읽는 건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