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
위명우 지음 / 바른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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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러 종류 및 장르의 책을 읽어왔지만 희곡집, 즉 연극 대본은 고등학생 때 문학시간에 읽은 이후로 10여년만에 처음 읽어보았다. 소설에 비해서 희곡은 대화가 직설적으로 명시되고 상황 및 감정에 대한 표현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덜 흥미롭다고 생각했었다. 은유적이면서도 수려하게 감정을 묘사하는 소설이 좀 더 수준높다고 지금까지 생각해왔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나의 큰 착각이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첫번째로 희곡은 연극 대본이다. 연극을 하는 배우를 위해서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당연히 상황 및 감정에 대한 묘사가 상세히 적혀 있다. 배우가 이 모든 것을 이해해야 온전한 연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과 감정을 연극을 보는 관객들에게 전달해야하므로 대사 또한 매우 직설적이다. 이해하기 힘든 대사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여러번 곱씹지 못하고 한 번만 시청이 가능한 연극 특성 상 많은 관객들이 단번에 이해하긴 힘들 것이다. 즉,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희곡의 특성은 단점이 아니라 본래의 목적성을 띤 고유의 특성이었다.

두번째는 희곡만의 상상력 자극법이 있기 때문이다. 희곡을 직접 읽어보니 소설과는 다른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바로 이야기를 상상하는 방법이 달랐다. 소설을 읽으면 작가가 묘사하는 배경, 등장인물, 상황 등이 머릿 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내 머릿 속에 이야기들이 장황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희곡을 읽으면 눈 앞에서 배우들이 연극을 연기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소극장 무대 위에 여러 배우들이 올라와 희곡, 즉 연극 대본에 의거하여 진실된 연기를 펼친다. 소설이 자연스러운 느낌이라면 희곡은 극적인 느낌이다. 강렬한 연기가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아 더욱 흥미로웠다.


이 희곡집에는 총 세개의 희곡이 있다. 그 중 책 제목이기도 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꽤 신선했고 깊게 생각해봐야할 주제들이 여럿 있었다. 노동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경제는 극심한 불황이 지속되고 정부는 일부 인원들에게만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폐쇄적인 복지정책을 펼치기에 이른다. 보조금을 받기 위한 방법은 아이를 낳거나 노인을 부양하며 사는 것. 정부는 노동인구를 어떻게 늘릴지와 노동인구가 아닌 부양해야하는 다수의 노인들을 어떻게 케어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위와 같은 복지정책에서 찾은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최신 기술은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황량하기 그지 없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복지는 극히 일부에게만 제공되면서 전체 사회의 황폐화는 더욱 가속되어져만 간다. 아이를 낳을 수 있고 노인을 모실 수 있는 환경이 우선적으로 조성되어야 하는데 기틀은 제공하지 않으면서 눈 앞의 결과에만 연연한 모습이다.


이러한 배경들이 희곡에서는 위와 같은 특징을 지니며 나타난다. 본 희곡집은 나레이션이 없으므로 오직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서 이야기가 전달되어야하고 관객들을 이해시켜야한다. 그렇기에 앞서 설명했듯이 많은 대사,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대사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또 이해시키고자 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방식이 어색하거나 유치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나, 이를 희곡의 특성이다 생각하고 배우들이 연기한다 상상하며 읽다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읽어진다.



세 희곡 중 '노인을 위한 나라'가 가장 인상 깊었던 이유는 이야기 속 감춰진 주제, 말하고자하는 바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재미 또는 감동만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제기하고픈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서 관객들과 같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저자의 의도가 느껴졌다. 노동인구 감소로 인한 경제 위기, 노령인구의 증가 및 부양의 문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지, 고난 속에서도 지켜야하는 가치는 과연 무엇인지... 숙고할 가치가 있는 심도있는 주제를 다루어서 가장 인상깊었고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희곡이었다.

이처럼 희곡은 희곡만의 고유의 특색이 있다.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 이유를 먼저 이해한 다음 천천히 음미해보면 소설과는 다른 매력을 맛 볼 수 있다. 익숙한 소설과 대비하여 편견을 가지기 보다는 희곡만의 매력에 푹 빠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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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철학자 - 자라난 잡초를 뽑으며 인생을 발견한 순간들
케이트 콜린스 지음, 이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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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우리 집 앞마당을 관리하면서 정원을 가꾼다는 사실 그 자체를 제외하고 다른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 잡초를 뽑으라 하면 잡초를 뽑고, 비료를 뿌리자 하시면 비료 봉투를 뜯어서 마당 위에 골고루 뿌렸다. 나무를 심기 위해 삽질하고 다시 흙으로 덮고, 씨앗을 심기 위해 호미질을 하는 등 생각해보면 정원을 가꾸기 위한 여러 일을 해 왔지만 더이상 생각의 뿌리를 깊게 내리지는 않았었다. 내 생각의 깊이는 '정원을 가꾸기 위해 일을 한다.' 여기까지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나와 매우 달랐다. 정원을 돌보면서 일상 속 세세한 부분까지 면밀하게 들여다보았다. 저자는 정원을 가꾸는 일 속에서 삶의 모습을 찾았다. 생각의 뿌리를 깊게 내리면서 하나의 생각을 하나의 철학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참으로 대단하고 멋졌으며 부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넓고 깊게 사고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저자가 정원의 흙 속에서 발견한 지혜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현명함이 돋보였고, 정원을 가꾸면서 깨달은 철학적 사고는 삶을 빛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각 챕터 별로 여러 철학적 지식이 나오는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화분을 들춰보며 개구리나 두꺼비가 있나 없나 확인하는 장면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떠올린 대목이다. 평소에 양자역학에 관심이 많아서 아는 내용이 나와 더욱 반가웠던 것도 있었다. 화분을 들춰보기 전에는 개구리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화분 밑을 들춤으로써 '관측'을 해야 존재 여부가 결정된다. 즉, 화분 밑을 관측하기 전에는 개구리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공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유를 통해 양자 상태의 모호성을 설명하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양자역학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신비로움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불확정성 원리를 알기 전에는 항상 정해진 사실을 이후에 관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관찰을 할 때 비로소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물론 양자역학 속 세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만...) 세상이 달라 보였다. 정해진 새상 속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어서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능동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세상 속을 살아가며 결정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매우 멋졌다. 또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나만의 자유 의지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나의 흥미를 이끌었던 또 다른 철학적 고찰은 '이상적인 토마토' 였다. 우리는 여러 종류의 토마토를 마주하는데 어떻게 다양한 모습의 토마토를 봐도 이 모든 채소들을 토마토라고 통칭할 수 있을까? 방울토마토, 대추토마토, 샤인토마토, 스테비아토마토, 찰토마토 등 다양한 색상과 형태를 지닌 토마토들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한 눈에 바로 토마토라고 인식한다. 토마토를 대표하는 특정한 상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토마토라는 것이 존재하는걸까? 즉, 이상적 형상이 내재되어 있기에 그것을 기준으로 변형된 존재들도 통칭하여 인지할 수 있는건가? 아니면 축적되어 온 경험적 지식들을 통해 개념을 확립하고 변형해나가며 개념을 확장시켜 가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들은 결국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론'까지 파고들게 된다. 토마토로 시작된 두 철학자의 철학적 고찰 경쟁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신선했으며 생각의 깊이를 더해가고 범위를 확장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수준 높은 철학적 고찰 및 통찰력을 통해 나의 시야를 한 층 넓혀준 저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누군가에겐 정원을 가꾸는 일이 그저 노동이고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정원을 가꾸는 일상적인 일 속에서도 소중한 가치를 찾아낸다. 뜻밖의 깨달음일 수도 있고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지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숨소리로 가득한 푸르른 정원 속에서 삶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혜를 얻고 더 나아가 철학적 깨달음까지 얻을 수 있다. 철학적 고찰을 통해 삶과 관련된 혜안을 얻고 내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이루게 해주는 장소는 당신이 현재 있는 그 곳일 수도 있다. 당신이 마음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장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그러한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번에 대답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또는 혼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우리 집 앞마당. 그리고 지금 내가 혼자 사색에 빠지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 있는 우리 집 앞마당. 우리 집 앞마당의 정원이 나에게 있어 소중한 장소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본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서 읽은 뒤 저의 주관적 견해를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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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예술로 빛난다 -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답
조원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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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예술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 예술가가 살아온 삶들을 톺아보며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양서다. 저자는 미술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한 책으로 유명한 「방구석 미술관」 을 썼었다. 이전 책은 예술가의 삶과 예술 작품에 주안점을 두고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책은 예술을 만들어 낸 예술가의 삶을 통해 내가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다. 또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고 여러 이야기가 담긴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단순히 미술 관련 지식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예술가의 삶을 생동감 있게 살펴볼 수 있게 해주며,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시키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고민하게끔 만들어 주는 책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라는 예술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비운의 안타까운 화가' 였다. 방황의 20대 시절을 보내다가 겨우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생이 끝날 때까지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비운의 화가. 사후에 세상의 인정을 받고 작품의 가치가 빛나게 되면서 더욱 대비되는 비참한 삶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나의 단편적 지식 습득으로 인한 기울어진 편견이었다. 빈센트는 20대 후반에 와서야 화가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을 정도로 늦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진심이었다.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어떻게 그리고 싶은지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다. 빈센트 반 고흐만의 독창적 예술이란 무엇인지 찾아내기 위해 그는 번데기가 되었다. 고민을 마친 그는 나비가 되어 날아왔고, 그의 작품은 비로소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고유의 예술 작품이 되었으며 몇백년에 걸쳐 빛나고 있다.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기까지 인내하는 기간은 결코 쉽지 않다. 기다림 끝에 빛을 보지 못할 수 도 있으며 나비가 되는데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번데기가 되길 주저하면 안된다. 인고의 시간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나만의 가치 있는 삶을 기대하긴 어렵다. 남들과 같은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독창적이고 고유한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번데기가 되어야 한다. 많은 고민을 해야하고 노력을 다하고 실력을 갈고 닦는 등 정진해야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다. 이 때 나비가 되어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에 있어 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고,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치관을 정립할 수도 있다. 무엇을 깨달았던 나는 이 기회를 통해 한 단계 성숙한 것이다.


여기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았다. 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나비가 되어 날아간 적이 있나? 아니면 애초에 번데기가 되고자 한 적은 있었나? 내 삶을 되돌아보고 부끄러워지는 사람은 오직 나였다. 지금 부끄러웠지만 앞으로는 부끄럽지 않은 삶은 살아가고자 한다면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다. 먼저 무릎을 굽혀야 이후에 피면서 일어설 수 있다. 나아가고자 한다면 그 전에 우선 기다릴 줄 알아야한다. 빛나고자 한다면 어둠 속으로 들어갈 줄도 알아야한다. 어둠 속에서 인내해야 이후 대비되는 빛이 얼마나 밝고 찬란하게 빛나는 지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한 문장이 이 책을 가장 명료하게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예술 작품의 의미와 예술가의 삶을 살펴보면서 삶 자체의 지혜까지 사색할 수 있었다. 여기서 얻은 지혜를 내 삶에 적용시킬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얻었고 이정표도 내 손에 가진 것만 같았다. 책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를 진짜 나의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용기있는 발걸음 한 발 짝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삶의 지혜를 얻은 그 사실만으로도 많이 행복하다.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의 삶 또한 나에게 큰 영감과 인사이트를 주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 현재 나의 삶에 대한 솔직한 고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방향 등 나의 삶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살펴볼 수 있었다. 예술을 통해 예술가의 삶 속을 들여다 보고 나의 삶에 대입해보는 경험은 다른 책으로는 할 수 없는 경험이어서 더욱 소중했다. 예술 작품들을 살펴보고 예술가의 삶과 함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거나,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지혜를 얻고 싶은 독자분들이라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아마 예술가들의 삶과 관련된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는 분명 당신에게 큰 깨달음을 줄 것이다.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말이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서 읽은 뒤 저의 주관적 견해를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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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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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결말까지 절대 읽을 수 없는 수수께끼의 책인 『열대』라는 소설의 비밀을 파헤쳐 나가는 환상소설이다. 소설가인 주인공은 학창 시절에 열대라는 소설을 읽다가 머리맡에 둔 채 잠이 들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그 책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중에 찾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16년간 살아왔지만 열대라는 책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인 사야마 쇼이치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침묵 독서회'라는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16년 전에 읽었었던 그 책을 다시 만났다. 책을 가지고 있는 여성에게 잠시만 빌려서 읽을 수 있냐고 묻자 여성은 이렇게 답변한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여성의 답변은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사실이었다. 끝까지 읽을 수 없는 소설인 『열대』의 문은 이렇게 해서 열렸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열대의 비밀을 파헤쳐 나가는 이야기는 이 비밀을 풀고자 하는 학파의 모임에서 시작된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예전에 열대라는 책을 읽었으나 무슨 이유에서 인지 결말까지 다 읽지는 못했다고 한다. 책을 잃어버렸거나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결말은 기억이 안 나는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공통점은 아무도 결말을 모른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물론 소설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 속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기에 결말을 알 수 없는 소설이라는 소재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었다.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모호해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이렇게 현실과 환상을 뒤섞어 놓은 듯한 소설의 구조가 우연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환상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환상 속 이야기 속에 현실의 현실의 현실이 있는 액자식 구조의 특징으로 인해 독자들은 지금 읽고 있는 이곳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을 못할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나 또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현실과 환상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면서 혼란 속에 빠지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결말을 알 수 없다는 열대라는 책이 현실 속에 놓인 순간부터 이 세상은 전부 환상이었는데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마치 현실에 있다고 착각한 것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모임의 구성원들은 열대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각자 자신이 기억하는 내용들을 이야기해서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을 맞춰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지요라는 중년의 여성은 열대의 숨은 비밀을 눈치채고 "내 '열대'만이 진짜랍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홀연히 떠난다. 그리고 그녀가 교토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케우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교토로 간다. 나의 열대만이 진짜라는 말이 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같은 제목의 소설이지만 한 권마다 내용이 조금씩 달라서 책을 읽은 사람들이 전부 다른 내용을 읽었기에 내 것만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걸까? 아니면 소설의 결말은 독자 본인이 완성해나간다는 열린 결말을 내포한 소설을 뜻하는 걸까? 아니면 소설 자체가 곧 읽는 독자의 삶 자체가 되어버린 것일까? 무수히 많은 생각들과 함께 열대의 비밀을 향해 끝까지 달려갔고 그 끝에는 열대라는 소설이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환상의 세계가 펼쳐졌다. 여기는 현실일까? 아니면 환상 속 세계인가? 이 책은 소설인가? 아니면 내가 만든 나만의 세계인가?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책을 펼치는 순간 펼쳐진 세계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였고 내가 믿는 대로 나만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환상소설이란 장르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였다. 결말을 알 수 없는 소설이라는 소재가 나왔을 때만 해도 약간의 무서움이 느껴지면서 미스터리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열대』의 끝자락에 도달해서 드디어 그 책을 펼치는 순간 왜 이 소설의 장르가 환상소설인지 알 수 있었다.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미지의 공간이다. 확실한 건 그 세계는 신비로우면서도 흥미롭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설 속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바로 나다. 다른 누군가가 주인공이 아닌 읽는 독자가 주인공이 되는 느낌을 줄 정도로 나는 그 세계 안에 푹 빠지게 되었다. 환상 속에 빨려 들어간 것만 같았다. 소설 속 세계를 빠져나와서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여기가 현실인지 아직도 환상인지 분간이 잘되지 않았으니까. 이러한 혼돈 또한 이 소설이 주는 큰 재미다. 다른 소설에서는 느끼기 힘든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있어서 매우 신선했다. 이와 같은 신선함을 느껴보고 싶거나 수수께끼의 소설인 『열대』의 비밀을 밝혀내고 싶다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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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언어의 탄생 - 영어의 역사, 그리고 세상 모든 언어에 관하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유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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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어라는 언어의 역사와 영어를 비롯한 전 세계의 언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교양서적이다. 영어가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해 왔는지부터 시작해서 단어의 유래, 발음의 변천사, 철자법의 변화까지 영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있는 다양한 세부 분야의 역사를 총망라하여 다룬다. 영어의 역사를 탐험하는 재미와 언어가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하는지 살펴보는 재미까지 둘 다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변화한 영어의 모습부터 영어라는 언어의 특징, 앞으로도 발전해나갈 영어의 미래까지 영어와 언어에 대한 모든 것들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언어는 전적으로 사람에게 의존한다. 많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세대에 걸쳐서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극소수의 인원들만이 사용하는 언어는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뜬다면 그 언어도 즉시 사어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언어는 더 이상 언어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고 볼 수 있다. 아일랜드의 게일어는 대표적으로 곧 사어가 될 언어다. 1983년에 이미 이 언어를 보존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정부 기관에서 다음 세대까지 이 언어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을 정도니 안타깝지만 현실이 될 것 같다. 역설적이지만 아일랜드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의 영어로 된 문학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이 아일랜드어로 문학 작품을 작성했다면 그들의 작품이 지금처럼 널리 알려질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축복이지만 아일랜드어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참 안타깝다.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언어의 경쟁력이 어디서 나오는지와 언어의 이기적인 특성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국에서 만들어지고 널리 쓰인 영어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영어의 구조를 자유롭게 변화하면서 본인이 표현하고픈 대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이를 문학적으로 사용한 사람이 바로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는 that bastardly rogue(그 사생아 같은 악당 놈)와 같이 부사를 형용사로 쓰기도 했고 breathing one's last(그의 최후를 숨 쉬다 → 숨을 거두다)와 같은 문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표현을 창조하기도 했다. 자신의 언어를 정말로 잘 가지고 놀았던 셰익스피어는 그의 창조적인 표현에 감성까지 더해서 지금도 회자되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개인적으로는 in my mind's eye(마음의 눈 속에 → 기억으로)와 같은 표현이 참 인상 깊었다. Cold comfort(차가운 위로 → 달갑지 않은 위로)라는 표현은 언뜻 보면 유치해 보일 수도 있는데 위로하는 마음을 따뜻하게 여기고 그와 반대되는 차가운 의미를 앞에 붙여서 좋지 않은 위로라는 의미를 표현했기에 감성적이면서 재치 있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이와 같이 영어는 사람의 심리와 감성을 아름답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사용하는 데 있어서 큰 단점들도 존재한다. 바로 발음과 철자다. 같은 알파벳이어도 어느 단어에 있는 알파벳이냐에 따라 발음이 완전히 달라진다. 심지어 같은 단어라도 앞뒤로 어떤 단어들이 붙느냐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철자가 같아도 발음이 전혀 다르니 쉽게 발음하기 어렵다.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같은 발음인데도 철자가 매번 다르니 정확한 철자를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 영어처럼 철자는 같은데 발음이 전혀 딴판인 언어는 거의 없다는 저자의 설명을 읽으니 왜 영어가 그토록 어렵게 느껴졌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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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언어에는 장단점이 있고 영어도 마찬가지다. 시제와 격의 변화가 다른 언어에 비해 적고 문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표현을 창조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은 영어의 장점이다. 하지만 철자와 발음이 일치하지 않아 영어를 배우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조차 어려워하는 점은 분명한 단점이다. 이로 인해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그러나 현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영어를 익혀야 할 수밖에 없다.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성장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하는 것이 언어이기에 영어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언어다. 이러한 영어를 배우기 전에 이 책을 통해 영어의 역사에 대해 먼저 알아본다면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이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서 읽은 뒤 저의 주관적 견해를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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