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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
위명우 지음 / 바른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지금까지 여러 종류 및 장르의 책을 읽어왔지만 희곡집, 즉 연극 대본은 고등학생 때 문학시간에 읽은 이후로 10여년만에 처음 읽어보았다. 소설에 비해서 희곡은 대화가 직설적으로 명시되고 상황 및 감정에 대한 표현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덜 흥미롭다고 생각했었다. 은유적이면서도 수려하게 감정을 묘사하는 소설이 좀 더 수준높다고 지금까지 생각해왔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나의 큰 착각이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첫번째로 희곡은 연극 대본이다. 연극을 하는 배우를 위해서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당연히 상황 및 감정에 대한 묘사가 상세히 적혀 있다. 배우가 이 모든 것을 이해해야 온전한 연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과 감정을 연극을 보는 관객들에게 전달해야하므로 대사 또한 매우 직설적이다. 이해하기 힘든 대사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여러번 곱씹지 못하고 한 번만 시청이 가능한 연극 특성 상 많은 관객들이 단번에 이해하긴 힘들 것이다. 즉,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희곡의 특성은 단점이 아니라 본래의 목적성을 띤 고유의 특성이었다.
두번째는 희곡만의 상상력 자극법이 있기 때문이다. 희곡을 직접 읽어보니 소설과는 다른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바로 이야기를 상상하는 방법이 달랐다. 소설을 읽으면 작가가 묘사하는 배경, 등장인물, 상황 등이 머릿 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내 머릿 속에 이야기들이 장황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희곡을 읽으면 눈 앞에서 배우들이 연극을 연기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소극장 무대 위에 여러 배우들이 올라와 희곡, 즉 연극 대본에 의거하여 진실된 연기를 펼친다. 소설이 자연스러운 느낌이라면 희곡은 극적인 느낌이다. 강렬한 연기가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아 더욱 흥미로웠다.
이 희곡집에는 총 세개의 희곡이 있다. 그 중 책 제목이기도 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꽤 신선했고 깊게 생각해봐야할 주제들이 여럿 있었다. 노동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경제는 극심한 불황이 지속되고 정부는 일부 인원들에게만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폐쇄적인 복지정책을 펼치기에 이른다. 보조금을 받기 위한 방법은 아이를 낳거나 노인을 부양하며 사는 것. 정부는 노동인구를 어떻게 늘릴지와 노동인구가 아닌 부양해야하는 다수의 노인들을 어떻게 케어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위와 같은 복지정책에서 찾은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최신 기술은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황량하기 그지 없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복지는 극히 일부에게만 제공되면서 전체 사회의 황폐화는 더욱 가속되어져만 간다. 아이를 낳을 수 있고 노인을 모실 수 있는 환경이 우선적으로 조성되어야 하는데 기틀은 제공하지 않으면서 눈 앞의 결과에만 연연한 모습이다.
이러한 배경들이 희곡에서는 위와 같은 특징을 지니며 나타난다. 본 희곡집은 나레이션이 없으므로 오직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서 이야기가 전달되어야하고 관객들을 이해시켜야한다. 그렇기에 앞서 설명했듯이 많은 대사,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대사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또 이해시키고자 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방식이 어색하거나 유치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나, 이를 희곡의 특성이다 생각하고 배우들이 연기한다 상상하며 읽다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읽어진다.
세 희곡 중 '노인을 위한 나라'가 가장 인상 깊었던 이유는 이야기 속 감춰진 주제, 말하고자하는 바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재미 또는 감동만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제기하고픈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서 관객들과 같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저자의 의도가 느껴졌다. 노동인구 감소로 인한 경제 위기, 노령인구의 증가 및 부양의 문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지, 고난 속에서도 지켜야하는 가치는 과연 무엇인지... 숙고할 가치가 있는 심도있는 주제를 다루어서 가장 인상깊었고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희곡이었다.
이처럼 희곡은 희곡만의 고유의 특색이 있다.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 이유를 먼저 이해한 다음 천천히 음미해보면 소설과는 다른 매력을 맛 볼 수 있다. 익숙한 소설과 대비하여 편견을 가지기 보다는 희곡만의 매력에 푹 빠져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