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철학자 - 자라난 잡초를 뽑으며 인생을 발견한 순간들
케이트 콜린스 지음, 이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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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우리 집 앞마당을 관리하면서 정원을 가꾼다는 사실 그 자체를 제외하고 다른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 잡초를 뽑으라 하면 잡초를 뽑고, 비료를 뿌리자 하시면 비료 봉투를 뜯어서 마당 위에 골고루 뿌렸다. 나무를 심기 위해 삽질하고 다시 흙으로 덮고, 씨앗을 심기 위해 호미질을 하는 등 생각해보면 정원을 가꾸기 위한 여러 일을 해 왔지만 더이상 생각의 뿌리를 깊게 내리지는 않았었다. 내 생각의 깊이는 '정원을 가꾸기 위해 일을 한다.' 여기까지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나와 매우 달랐다. 정원을 돌보면서 일상 속 세세한 부분까지 면밀하게 들여다보았다. 저자는 정원을 가꾸는 일 속에서 삶의 모습을 찾았다. 생각의 뿌리를 깊게 내리면서 하나의 생각을 하나의 철학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참으로 대단하고 멋졌으며 부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넓고 깊게 사고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저자가 정원의 흙 속에서 발견한 지혜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현명함이 돋보였고, 정원을 가꾸면서 깨달은 철학적 사고는 삶을 빛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각 챕터 별로 여러 철학적 지식이 나오는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화분을 들춰보며 개구리나 두꺼비가 있나 없나 확인하는 장면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떠올린 대목이다. 평소에 양자역학에 관심이 많아서 아는 내용이 나와 더욱 반가웠던 것도 있었다. 화분을 들춰보기 전에는 개구리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화분 밑을 들춤으로써 '관측'을 해야 존재 여부가 결정된다. 즉, 화분 밑을 관측하기 전에는 개구리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공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유를 통해 양자 상태의 모호성을 설명하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양자역학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신비로움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불확정성 원리를 알기 전에는 항상 정해진 사실을 이후에 관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관찰을 할 때 비로소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물론 양자역학 속 세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만...) 세상이 달라 보였다. 정해진 새상 속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어서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능동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세상 속을 살아가며 결정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매우 멋졌다. 또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나만의 자유 의지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나의 흥미를 이끌었던 또 다른 철학적 고찰은 '이상적인 토마토' 였다. 우리는 여러 종류의 토마토를 마주하는데 어떻게 다양한 모습의 토마토를 봐도 이 모든 채소들을 토마토라고 통칭할 수 있을까? 방울토마토, 대추토마토, 샤인토마토, 스테비아토마토, 찰토마토 등 다양한 색상과 형태를 지닌 토마토들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한 눈에 바로 토마토라고 인식한다. 토마토를 대표하는 특정한 상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토마토라는 것이 존재하는걸까? 즉, 이상적 형상이 내재되어 있기에 그것을 기준으로 변형된 존재들도 통칭하여 인지할 수 있는건가? 아니면 축적되어 온 경험적 지식들을 통해 개념을 확립하고 변형해나가며 개념을 확장시켜 가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들은 결국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론'까지 파고들게 된다. 토마토로 시작된 두 철학자의 철학적 고찰 경쟁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신선했으며 생각의 깊이를 더해가고 범위를 확장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수준 높은 철학적 고찰 및 통찰력을 통해 나의 시야를 한 층 넓혀준 저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누군가에겐 정원을 가꾸는 일이 그저 노동이고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정원을 가꾸는 일상적인 일 속에서도 소중한 가치를 찾아낸다. 뜻밖의 깨달음일 수도 있고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지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숨소리로 가득한 푸르른 정원 속에서 삶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혜를 얻고 더 나아가 철학적 깨달음까지 얻을 수 있다. 철학적 고찰을 통해 삶과 관련된 혜안을 얻고 내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이루게 해주는 장소는 당신이 현재 있는 그 곳일 수도 있다. 당신이 마음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장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그러한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번에 대답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또는 혼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우리 집 앞마당. 그리고 지금 내가 혼자 사색에 빠지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 있는 우리 집 앞마당. 우리 집 앞마당의 정원이 나에게 있어 소중한 장소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본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서 읽은 뒤 저의 주관적 견해를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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