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사 강그리옹 - 해외현대소설선 1
조엘 에글로프 지음, 이재룡 옮김, 안규철 그림 / 현대문학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2009. 1.24 

 

나는 좋은 번역(순전히 내 입맛을 기준으로)을 보면 즐거움을 넘어서 고마움을 느낀다. 어쩔땐 그 번역자에게 전화를 하여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싶어질 지경이다.  

 나는 번역자 이재룡을 [욕조]를 통해 만났다. 어쩌면 그 전에도 프랑스 작품들을 이 번역자를 통해 읽은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욕조]를 읽으며 번역자 이재룡이라는 이름을 눈여겨봐두었다. 프랑스어 원문을 모르니 잘된 번역인지 아닌지 내가 알 수는 없으나 나는 잘된 번역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선택하여 번역한 작품은 모두 내 입맛에 맞을 것이라는 믿음까지 갖고 있다.  

[장의사 강그리옹]도 이재룡 번역이다.



장의사 강그리옹, 하면 한 노인이 떠오른다. 그게 이름 끝에 붙은 '옹' 때문인 것 같은데 프랑스어라는 걸 감안하면 참 터무니없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읽기도 전에 무료하고 고집스런 한 노인, 강그리옹에 대한 얘기려니, 맘대로 결정짓고 말았다.



그러나 작품은 강그리옹에 대한 이야기가 주는 아니다.  

[장의사 에드몽 강그리옹과 그 아들]이라는 좀 길다싶은 이름의 장의사와 맞은편 [태양 카페]에서 벌어지는 일들, 장의사 직원들이 장례식을 치루는 중에 벌어지는 헤프닝에 대한 이야기다.  

일단 장의사 상호를 보면 강그리옹과 아들이 함께 장의사를 운영하는 것 같다. 강그리옹은 있지도 않은 아들을 기다리는 염원을 담아 상호를 그렇게 지었을 뿐이다. 아이를 갖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런데 부인에게 운수대통한 일이 생겼다. 그녀는 도시의 용하다는 의사를 뻔질나게 찾아갔는데 그 작자가 너무 잘 치료해서 드디어 바로 자기의 아기를 뱄다고 선언한 것이다.  

어느 날 아침 그녀는 산골 마을과 눈물을 펑펑 흘리는 남편을 뒤로하고 자기에게 생명의 씨앗을 뿌려준 의사를 찾아 버스에 올라탔다. 그 후 강그리옹은 그날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18쪽



이 단락은 이 작품의 많은 것을 대변해준다. 재치있는 문장, 반전, 유머. 이러한 요소들은 엉뚱하지만 선명한 캐릭터들과 함께 읽는 내내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 궁금하다. 작품의 맨 처음에 '우리의 매형에게, 나의 매형에게, 나의 매형들에게,......'하면서 세 쪽에 걸쳐서 열거해놓은 문장들을 다 읽은 사람도 있을까?  

<우리의 **에게, 나의 **에게, 나의 **들에게>라는 패턴으로 반복하여 늘어놓은 문장들은 내 짐작대로라면 장의사 직원 몰로가 닦고 있는 대리석 비문일 것이다.  

지루하고 의미없는 이러한 문장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 속에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숨어있을까. 그렇게 숨어있는 메시지를 찾아냈을때 읽은 기쁨은 배가된다.  

그러나 설령 메시지가 숨어있을 지라도 나는 그런 수고를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흠, 손녀들에게....대부에게.... 하면서 건성으로 건너띄어 읽었다. 잘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랬을까. 작가는 왜 그런 나열을 했을까.  

별 의미도 없어보이는 이러한 비문들을 하염없이 닦고 있는 몰로를 왜 보여주는 걸까.  

이 작품에 어떤 기대감으로 다가가야하는지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건너띄기로 읽었지만 그 부분은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했다는 걸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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