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서평 바로가기



어제 업로드한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서평은 사실 길게 쓴 글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하고 싶었던 여러 말들이 누락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는데도 여러 말 보태게 될 것 같아 빠뜨릴 수밖에 없었는데, 중요한 말이라 게시물을 하나 더 발행해서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 말이란 바로 유전자가 모든 걸 결정하지 않듯, 환경도 모든 걸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읽었던 신경과학이나 유전학 관련 모든 책에서 유전자 결정론을 부정하는 메시지를 읽게 되는데, 아무래도 내 관심사가 녹아든 결과가 아닐까 싶다. 바로 인간 본성 비판인데, 마치 인간 본성이 경쟁이라는 본성론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던 것인데, 반작용처럼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했던 말을 계속했다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불현듯 환경 결정론에 만취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유전에 관해 읽은 책 모두가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말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표현형을 결정하는 인자를 잘 모른다고 말했음에도, 거의 모든 서평을 마치 환경 결정론 지지자의 글처럼 써버렸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 때문에 읽은 책에 누를 끼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초조해지고 말았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는데….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의 저자인 데이비드 무어는 유전자 결정론보다 아주 조금 덜하기는 하지만 위험한 생각이기는 마찬가지다.”라고 말하지만, 글쎄, 환경 결정론의 결정체인 대치동 학원가를 보고도 아주 조금 덜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아가 아기 옆에는 엄마가 있어야 한다는 성차별적 고정관념 또한 환경 결정론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 텐데, 그 결과 세계 어느 곳에서든 여성은 21세기가 4분의 1이 지난 지금까지도 커리어를 쌓기가 매우 힘들다. 이런 결과만 놓고 보면 환경 결정론이 딱히 덜 위험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후성유전학은 이를 테면 채소를 많이 먹는 건강한 식생활을 하고,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고, 친구 관계를 잘 맺으며, 독소를 피하라는 등의 조언처럼 현재 나와 있는 데이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조언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거다. 다른 연구자의 말처럼 지금이 후성유전학 연구의 유아기라면, 행동 후성유전학 연구는 배아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제는 후성유전 연구는 과학자들이 오로지 유전자와 표현형의 상관관계에만 초점을 맞추던 단계에서 벗어나, 발달 과정들이 실제로 어떻게 표현형들을 초래하는지로 관심을 옮기고 있다고 하니, 유전과 환경이 빚는 마법을 찾는 일만 남은 듯하다. 나 같은 독자는 단언하기보다는 다른 책 열심히 읽으면서 기다리면 될 일이겠다.

 

 

진짜 결론: “그냥 결정론은 다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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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의 영향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호르몬은 당신이 믿는 가치에 따라 당신을 더 착하게 만들 수도 있고 못되게 만들 수도 있으며, 우리는이기적으로 진화하지도이타적으로 진화하지도 다른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다만 특정 조건에서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진화했다. 맥락, 맥락, 맥락이 전부다. 

- 『행동』, 808









인간의 행동에 대한 생물학적 기원을 찾으려는 오랜 시도가 우생학의 몰락과 함께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왓슨의 호언장담과 같이 타고난 재능과 상관없이 인간을 어떤 존재로든 빚어낼 수 있는빈 서판(tabula rasa)’처럼 여기는 시각도 편협하기는 마찬가지다. 

- 『나쁜 유전자』, 210










다른 모든 복잡한 특질과 마찬가지로, 지능은 수백 가지 유전자가 상호작용한 결과이며 여러 가지 환경 요인에 의해 형성된다. 그리고 이런 환경 요인은 모든 사람이 학습 기회를 얻는지, 아니면 특정 집단이 학습 기회를 빼앗기거나 재정적 여유가 없는지와 같은 수많은 사회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 『초연결 지능』, 55









신경과학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언급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여러분을 특정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느끼며 행동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두뇌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천성이라거나 앞으로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사실 두뇌는 일종의 움직이는 대상이다. 양쪽 두뇌의 문해력에 관한 나의 연구를 포함해, 두뇌와 행동을 관련짓는 모든 연구들은 특정 시점의 어느 한 측면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즉 두뇌의 정지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식의 연구로는 두뇌의 특정 구조가 얼마나 잘 변하지 않는지, 혹은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지 알 수 없다

- 『나의 뇌를 찾아서』, 46






후성유전학을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다른 형태의 결정론들을 부추기는 마뜩잖은 방식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행동 후성유전학과 관련해 강한 설득력을 발휘한 발견 가운데 몇 가지가 생애 초기 경험의 장기적 영향에 관한 연구에서 나왔다는 점 때문에, 아기가 초기에 발견한 경험이 반드시 그들의 특징에 영속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의심하는 저술가도 있다. 그러나 아기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미래의 고통을 예방하는접종이라는 주장은 대체로 경계해야 한다. 영양이 풍부한 섭식과 질 좋은 환경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사람의 발달은 결정론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이 아니다. (…) 유기체의 후성유전적 상태가 반드시 어느 특정 표현형을 초래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또 하나의 결정론이며, 유전자 결정론보다 아주 조금 덜하기는 하지만 위험한 생각이기는 마찬가지다

-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36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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