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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턴가 유쾌하지 않고, 정의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 주인공에 이렇다 할 긴장감 넘치는 사건없는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도 외모로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이 음울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달의 제단」은 눈에띄는 존재였다. 조부가 일으켜세운 종가의 종손이지만 태생에 문제가 있는 주인공. 애타게 사랑 혹은 정을 갈구하던 그의 외로움이 불러들이는 광기와 파멸. 마지막의 파멸이 그토록 돋보였던 까닭은 스러지기 직전의 순간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그 어느 때보다 허무했던 망국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말했다시피 지구를 구하거나 전인류를 위해 싸우는 등의 엄청난 사건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그 다음 부분에 대한 궁금증으로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소설 전반에 흐르는 기묘한 음울함과 더불어 몇 백년 전에 쓴 서찰의 내용이었다. 모든 정황을 세세하게 알 수 없는 편지글임에도 그것을 받는 이와 쓰는 이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옛 문체가 주는 고상함과 향수가 정말 인상적이어서 시간만 있다면 통째로 어디 옮겨적고 몇 번이고 보고 싶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