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민화 수업
서하나 지음 / 미진사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민화 초보자라 모르는 것이 많다. 민화에 관한 책을 고르는데 표지가 예뻐서 눈에 들어왔다. 내용도 어렵지 않았고 그림 예시가 많이 들어 있어서 어떻게 연습하면 좋을지 생각하며 읽기 좋다. 그림을 그리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이것도 그리고 싶고, 저것도 그리고 싶고, 이게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저게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갈팡질팡한 마음에 무엇을 그려야 할지 정하기 어려울 때 주제를 먼저 잡고 그에 어울리는 요소들을 찾아보자. 사물이나 문양 혹은 추상적인 것이 담길 수도 있고, 뭘 굳이 그려 넣지 않고 색으로 채워볼 수도 있을 것이다. - P132

밑색을 칠할 때 색상과 농도를 너무 진하고 두껍게 칠해놓으면 그 위에 바림을 할수록 색이 더 진해져 그림이 자칫 어두워질 수 있으므로 맨 처음에는 머릿속에 있는 ‘완성될 색’보다 훨씬 연하고 묽게 칠해야 한다. - P140

슬슬 중반에 접어들어가면 해도 해도 티가 안 나는 것 같고 채색이 엉망이 되는 것 같아 지칠 수 있다. 당연한 과정인데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해버리면 실력을 쌓아가기가 어렵다. - P142

내가 원하는 만큼의 그림을 만들어내려면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필요했다. 작업을 하다가 길을 잃더라도 계속 가다 보면 어디엔가 다다를 것임을 안다. 때론 천천히 때론 빠르게 가끔은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기도 하며 그렇게 계속 길을 걷는다. - P1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튼, 연필 - 연필이 연필이기를 그칠 때 아무튼 시리즈 34
김지승 지음 / 제철소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서두에 연필의 종류를 설명한 페이지가 있다.

9H~6H : 살인용(존 윅 시리즈 참고)

이 부분을 보자마자 책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역시나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았는데, 연필의 발명부터 여성의 존재와 이토록 깊은 연관이 있을 줄은 몰랐다. 언제든 지워질 기록을 쓰는 연필과 역사에서 종종 지워지고 마는 여성의 운명을 언급한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다.

잘 알고 있는 연필이 나오면 반가웠고, 생소한 연필 브랜드나 제조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이런 세계도 있었나 싶어서 찬찬히 보았다.

이런 여성들, 청첩장이나 묘비에도 이름을 쓸 수 없는 존재들, 공식적인 기록과 역사에서 지금도 매일 지워지는 그들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서둘러 연필을 쥐었다. - P12

나는 다행히 흑연은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사람이었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더 약해질 수 있는 존재가 나이기도 하다는 걸 모를 수가 없어서 모른 척하고 산 것일지도. 나는 다이아몬드와 흑연의 구성 성분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게됐을 때처럼 ‘계속 강해 보였던 나’와 ‘그렇게 강하지 않은 나’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어, 하고 놀랐다. 놀랐다는 점에 다시 놀라는 그런 놀람이었다. - P46

"코이누르를 소유한 자는 세계를 지배하지만 남성은 이것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경고 혹은 저주가 함께했다. 무굴제국을 비롯해 이 코이누르를 소유했던 남성 군주의 두 제국이 멸망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하면서도 그 경고는 신선하고 멋졌다. - P48

어떤 마음은 너무 오래 산다. 너무 그렇다. - P71

무엇 되기보다 무엇 되지 않기를 바라는 꿈도 있을 것이다. 보존하지 않고 소멸시킴으로써 아끼는 마음이 있듯이. 나는 유서인 줄도 모르고 써온 유서를 버리고 백지에 썼다. 쉼. - P115

사물을 의인화할 경우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투영되는 권력관계가 있다. 약자에게는 그 관계가 현실 자체이기 때문에 조금도 재밌지 않았다. 우리는 모든 것에 웃을 수 있지만 모든 사람과 같이 웃을 수는 없다. - P133

"다른 사람이 제 연필을 쓰고 있었거든요."
그의 후예들은 이를 응용할 줄 알았다.
"누군가 제 노트북을 쓰는 바람에…."
설득력은 약하지만 파커의 은유적 진심이자 농담인 핑꼐의 핵심은 누가 봐도 핑계임을 알아채게 하는 것이다. - P157

도로시가 죽기 전 묘비에 새겨달라고 부탁한 문장은 사후 방어기제의 최고레벨 같고 좋다.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당신은 내게 너무 가까이 와 있다.
(중략)
자기가 어쩌다 지나는 시절과 시대에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요원한 일이다. 젠더와 계급과 인종, 장애 유무와 연령 등으로 조건 지어진, 세상에서 가장 분주한 국경 마을에 사는 듯한 나는 가만히 있어도 선 그어진다. 핑계와 연필, 유언과 시, 묘비명을 남긴 불행한 포유류처럼. 하지만 여자와 코끼리는 잊지 않지. - P163

앞으로도 갖고 싶은 건 갖고 싶다고 써서 남겨줘요. 그래야 다음 여성들이 그걸 욕망해도 된다는 걸 알게 돼요. 이건 나와 친구들에게도 하는 말. 그래서 쓴다. 가난한 우리는 유연한 자존감과 세심한 감각, 실패해도 안전한 경험을 갖고 싶다. - P2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튼, 아이돌 - 또 사랑에 빠져버린 거니? 아무튼 시리즈 45
윤혜은 지음 / 제철소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돌 팬문화가 꽃 피는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낸 덕분에 누군가의 덕후였던 나의 친구들이 떠오른다. 덕질하는 아이돌 이야기로 웃고 울고 달리느라 바쁘게 보냈던 그 친구들은 지금도 누군가의 덕후일까?

그냥 다, 잘됐으면 좋겠다. 나도 너희도. 모든 게 뜻대로 되지는 않더라도 노력한 만큼은 꼭꼭 돌려받으면서, 아프지 않고. 하고 싶은 걸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지는 거. - P73

나는 노래에 진심이 되어버렸다. 정확히는 노래하는 내가 좋아졌다. 무엇을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하는 내가 좋아지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인데, 좋아하는 걸 해볼 수도 있겠다는 어렴풋한 예감이 열다섯 살의 나에게 얼마나 벅찬 감정을 안겨다주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 P91

깨진 마음을 이어 붙이고 부서져 가루가 된 마음을 뭉쳐서 새롭게 빚기를 반복해야만 ‘진짜 노래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도. 하지만 프로의 세계를 꿈꾼 적 없는 나로서는 당장 이 마음을 상처 입히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그 선택으로 좋아하는 마음 자체를 거둬버렸다는 건 참 바보 같았지만. - P95

"아무리 그래도 시간 아깝지 않나? 아이돌 좋아할 시간에 차라리 ○○를 하겠다."
이 말은 웃고 넘길 수 있는 앞선 사례들과 달리 덕후를 다소 자극하는데, ○○의 자리에 무엇이 들어가든 실제로 순수한 제안이나 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중히 거절하자.
내가… 왜요? 그게 좋으면 그건 님이 하시면 됩니다. - P103

아수라장인 마음을 안고서도 틈틈이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나는 다행스럽게 확인한다. 책방은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거의 정반대의 현실을 씩씩하게 살아갈 용기를 심어주니까. 어라, 이 기시감, 뭐야…. 덕질하는 나잖아? - P139

한번은 책방에 놀러 온 친구가 물었다. "너는 책상을 이렇게 해놓고 일이 돼?"
아니? 당연히 잘될 리 없다. 하지만 그건 아이돌 탓이 아니다. 일이란 건 태초부터 하기 싫은 것, 잘되는 날이 드문 법이니까. - P173

그런데 이 쇼는 누구를 위해 계속돼야 할까? 덕후의 즐거움을 위해서? 아이돌의 자아실현을 위해서? 미처 이어지지 못한 두 아이돌들의 무대가 잔상처럼 번진다. 여성들이 제 삶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를 찾기에 좀 더 온기 있는 무대를, 안전한 사회를 꿈꿔본다. 그리고 이 바람이 유효한 한 내 삶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든 덕질을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 P2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그림 에세이
이연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튜브 영상으로 몇 번 보았던 이연 작가의 그림 에세이. 그림이 많아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대학, 취업, 노후준비 등 산 넘어 산인 인생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책.

한 TV 프로그램에서 박동신 박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인간은 척추동물이지만 마음은 갑각류와 같아서, 껍데기를 벗어던진 가장 약해진 그 순간에 비로소 성장한다." - P5

회사를 다니며 그림을 놓은 지 오래되었다. 그림은 날들이 좋다고 하는 길이 아니었거든. 그 길을 고흐는 ‘개의 길’이라고 불렀다. - P31

내 삶의 방식을 존중해주고 환경을 제공해주는 조직은 없었다. 없으니 포기할 게 아니라 만들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이연 스튜디오라는 개인 사업에서 대표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사무실은 혼자 쓴다. 편집자와는 프리랜서 계약 관계라서 사실상 직원은 나 혼자다. 이연 스튜디오는 내가 몸담아온 회사 중 가장 작다. 근데 여기가 내게 가장 잘 맞다. 그리고 벌이도 가장 괜찮다. - P42

지금은 모든 것이 그때의 기준으로 보건대 정상을 넘어 사실은 호사스럽다. 세탁기에서 물이 넘쳐도 상관없다. 물은 베란다 배수로로 흐를 것이다. 에어컨이 고장 나도 괜찮다. 여차하면 호텔에 머물 수 있는 돈이 있다. 냉장고 전기가 끊겨도 괜찮다. 밥을 사 먹을 돈도 충분하다. 2018년에는 모든 게 안 됐다. 불행을 막을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 P1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가가 되는 법
제리 살츠 지음, 조미라 옮김 / 처음북스 / 2024년 2월
평점 :
절판


제목은 <예술가가 되는 법>이지만 예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특히 각 챕터마다 주어진 숙제를 하다보면 모르던 예술가도 알게 되고, 그 예술가의 삶이나 표현하려고 했던 것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예술은 남다름이다. 예술에서의 남다름에는 강한 힘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예술이 스스로를 복제하기 위해 우리를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와 공생하여 스스로를 복제하는 우주적인 힘(혹은 균?)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 P24

예술 작품은 설명에 의존할 수 없다. 작품 안에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한다. 프랭크 스텔라는 ‘그림에는 좋은 아이디어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좋은 그림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 P64

화가인 스탠리 휘트니는 ‘나쁜 날도 좋은 날이다, 왜냐하면 나쁜 날은 당신이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려고 시도하는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P76

예술 작품을 볼 때, 우선 주제를 파악하고 잠시 멈춰라. 그 후 작품을 다시 살펴보며 어떤 욕구가 표현되거나 숨겨져 있는지, 내러티브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보라. 예술 작품은 재료, 개인적, 공적, 미적 아이디어가 풍부하게 모여 있는 강어귀와 같다. 그 물이 강둑을 지나 당신에게 도달하게 놓아두어라. - P96

인간은 변화를 갈망한다. 우주는 확장되고 있으며, 우리와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는 예술이 더 좋아지거나 나빠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예술이 한때 현대미술이었으며 그 시대의 대화 주제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의 작품도 그렇다. - P1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