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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호] 그가 택시운전을 그만둔 사연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 스카이라이프 정용일

전태일 열사를 아는 사람은 많다. 전태일 열사가 몸을 불사른 11월이 오면 누구나 “열사정신 계승”을 말하지만, 서울 창신동 봉제공장들 사이에 자리한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언제나 썰렁하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고 속상했던” 전 청계피복노조 위원장 황만호(46)씨는 결국 생업인 택시운전을 그만두고, 지난 1월 전태일기념사업회의 사무국장으로 들어앉았다.

황씨가 전태일이라는 이름 석자를 알게 된 것은 평화시장에서 고단한 삶을 보내던 1977년이다. 우연히 같은 공장에서 청계피복 노조원을 만난 것이 황씨의 삶을 바꿔놓았다. 황씨는 노조활동을 하던 이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회상한다. “그야말로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한 거죠. 하루 12~13시간을 꼬박 일하고 나서 노조사무실에 가서 공부도 하고, 회의도 했어요. 마냥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청계피복노조는 강제 해산됐고, 황씨는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2년을 복역하는 등 합법화 투쟁 과정에서 구속과 석방을 반복해야 했다. 1988년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이후 노조 일을 그만두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8년 동안 부인과 둘이 의류 봉제업을 하며 기반을 닦았고, 부인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택시운전을 하면서도 손님에게 항상 “전태일을 아느냐“고 물었다는 황씨는 “십중팔구 ‘청계천에서 분신자살한 사람’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영화(<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포스터 때문에 아는 사람은 많지만, 전태일이 왜 죽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탄했다. 또 전태일기념사업회가 항상 재정난에 시달리며 상근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운영되는 현실도 너무나 안타까웠다. 결국 “말하면 책임져야 할 것 같아” 침묵하던 황씨가 나섰다.

최근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청계천 복원 뒤 조성되는 공원에 ‘전태일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기념관을 통해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보듬었던 ‘전태일 정신’에 대한 선양사업들이 이뤄져야 합니다. 어린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찾아와서 전태일을 알고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죠.”

황씨는 “이제는 전태일이라는 이름만 남은 것 같아 씁쓸하다”며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호소했다. (www.juntaeil.org, 02-3672-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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