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연우주 > 진보논객 진중권씨가 유시민 의원에게 보내는 질의서..

(펌)진보논객 진중권씨가 유시민 의원에게 보내는 질의서..

<친애하는 유시민 의원님께>

 

먼저 분명히 밝혀두지만 제 입장은 야당의 탄핵 시도는 강하게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대 야당의 횡포이자, 이 나라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거기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지극히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 부분에 관해서는 우리 사이에 아무런 이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미리 밝혀 둡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남는 의문이 몇 가지 있어, 이렇게 용기를 내어 묻게 되었습니다.

1. 탄핵사태를 피할 수는 없었는가?

대통령의 3월 11일자 회견은, 제가 보기에도 임계치를 넘어서는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로 인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탄핵반대파들마저 찬성으로 돌아서게 되었지요. 굳이 대통령이 국정을 담당한 책임자로서, 그 임계치 위에서 위험한 정치적 장난을 하여 결과적으로 탄핵을 초래한 것이 과연 온당했는지요?

아울러 탄핵에 들어가기 앞서 국회의장이 파국을 피하기 위해 4당 대표와의 회담을 제안했는데, 그것을 거부하여 극단적 사태를 초래한 것이 과연 국정을 책임진 분의 태도로서 온당했는지요.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대통령이 외려 탄핵 사태를 방조 내지 유도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박을 하실 생각이신지요?

2. 총선과 재신임의 연계가 온당한가?

<시사저널>에 따르면 3월 8일 현재 여권에서는 탄핵이 실제로 의결되기 힘들고, 설사 의결이 된다고 해도 헌재에서 통과가 될 가능성이 없는 데다가 여론이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보고, 이미 그 경우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시키는 카드를 준비해 놓았다고 합니다. 이 기사는 실제 상황으로 실현이 되었습니다.

 <시사저널>에서 지적한 것처럼 '탄핵이 가결되 될 가능성도 적고, 설사 탄핵이 되어도 아직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남아 있으며, 나아가 여론의 향배도 우리에게 해로울 것 없다'는 식의 태도를 대통령이 손수 실천하는 것이 과연 책임있는 태도라고 할 수 있는지요?

3.대통령의 사과거부가 과연 민주화 투쟁인가?

열린우리당에서는 탄핵으로 초래한 정국을 6.10 항쟁과 같은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여권의 탄핵을 초래한 대통령의 행동이 과연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야권에서 문제 삼은 대통령의 언행이 과연 정치개혁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통령은 지난 번 '리멤버 1219' 행사장에서 노골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호소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기자와의 회견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습니다. 3월 11일에는 아예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시키겠다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했습니다. 대체 그 발언이 국정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개혁과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탄핵을 초래한 사안이 기껏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안이었다는 데에서 오는 국민의 허탈감을 어떻게 달래주실 생각이신가요?

일각에서는 대통령도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관위가 분명히 했듯이, 우리 나라에서는 공직자의 정치개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소위 '관건선거'가 판을 치던 과거의 악습을 막기 위한 지극히 정당한 조치라고 봅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이런 중립의 의무를 져버리고, 대국민 사과까지 거부하다가 초래된 이 어처구니 없는 사태도, 일종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규정해야 하는지요?

 4. 민주공화국이 정말로 위험에 처했는가?

열린우리당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이 나라 공화국의 정체가 위험해졌다고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유시민 의원께서는 정말로 국회의 탄핵안이 헌재에서 통과될 것이라 예상하시는지요? 참고로 <시사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여권에서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강공 드라이브를 펼 생각이 있음을 내비쳤다고 합니다.

만약 유시민 의원과 열린우리당에서 정말로 헌재에서 국회의 탄핵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믿으신다면, 야권의 반복되는 탄핵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공화국의 정체성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위험한 도박을 하신 것이, 과연 국정을 책임진 분으로서 감히 저지를 수 있는 일이었다고 보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5. 국민들의 분노가 대통령에 대한 지지인가?

야권의 망동에 수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나섰습니다. 탄핵에 반대하는 70%와 20%를 갓넘는 대통령 지지율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지금 거리에 나선 시민들이 과연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러 나선 것입니까? 아니면 야권의 어처구니 없는 망동을 성토하러 나선 것입니까? 열린우리당에서는 그 분노의 성격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10% 가량 상승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지율을 올라간 것이 과연 열린우리당이 내놓은 정책의 덕분입니까? 아니면 야권의 행동에 대한 실망에서 얻어지는 반사효과입니까? 상승한 지지율은 포지티브한 지지율입니까? 네거티브한 지지율입니까?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지지율을 높이는 것이 정치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이라고 보시는지요?

6. 시위를 확산시켜야 하나? 자제해야 하나?

듣자 하니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의장이 시위를 자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고 합니다. 신문에서는 이를 "표정관리" 혹은 "지지율 관리"라 부르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항의시위마저 총선용으로 바라보는 정동영 의장의 시각과, 그 시위가 민주화 운동이라며 우리에게 참여하라고 강권하는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의 시각 사이의 괴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우리는 어떤 주장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까? 정동영씨의 말에 따라 시위를 자제해야 합니까? 아니면 그 당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의 호소에 따라, 당파의 차이를 잊고 전국적으로 시위를 확산시키는 데에 떨쳐 일어나야 합니까? 도대체 우리는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합니까?

도대체 그 시위의 성격은 무엇입니까? 6.10 항쟁과 같은 민주화 운동, 국민 저항권의 표출입니까? 아니면 정동영 의장의 말 한 마디에 제지될 수도 있는 열린우리당의 득표를 위한 선거운동입니까? 열린우리당에서 보는 이 시위의 성격은 무엇입니까?

7. 깃발 들고 참가해도 되나요?

탄핵 사태가 벌어지자 소위 '노빠' 부대가 이번에도 잊지 않고 민주노동당 게시판을 찾아와 읍소를 했습니다. 지난 대선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유시민 의원은 민주노동당의 표가 노무현을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가, 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그런 부채의식 가질 필요 없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번에도 말을 바꾸실 건가요? 아니면 이번은 바꾸지 않으실 건가요?

아울러 광화문에 민주노동당 깃발 들고 나오라고 요구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그 분들에게 묻습니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 났을 때, 민주노동당 깃발 들고 광화문 시위에 참가했더니, "깃발 내리라"고 외치시더군요. 이번에 여러분의 말 듣고 민주노동당의 깃발을 들고 나가면, 다시 "내리라"고 외치실 건가요?

8. 탄핵사태의 바탕에 깔린 정치적 욕망은 무엇입니까?

이번 탄핵사태에는, 그 파국을 막기 위한 두 개의 단추가 있었습니다. 하나의 단추는 대통령이 쥐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국회가 지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으 그 단추를 누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국회도 그것을 누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탄핵이 가결되었습니다. 과연 이 사태의 바탕에 깔린 정치적 욕망은 무엇입니까?

몇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1) 양쪽 다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랬다. (2) 대통령은 오직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랬고, 민주당-한나라당은 당리당략에서 그랬다. (3) 대통령만 당리당략에서 그랬고, 민주당-한나라당은 조국을 위해서 그랬다. (4) 둘 다 당리당략에서 그랬다. 유시민 의원은 이중 어느 것이 옳은 대답이라고 보십니까?

9. 이번 민주항쟁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아울러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위에 열우당 의원들이 적극 결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요? 6.10 항쟁에는 직선제 쟁취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습니다. 이번 시위가 6.10항쟁과 같은 것이라면, 이 항쟁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시위를 한다고 헌재의 판결이 달라지지는 않고, 또 달라져서도 안 된다고 본다면, 이 항쟁은 뭘 따내기 위한 것인지요?

열우당 의원들이 시위에 결합할 경우 당연히 야당의 폭거에 대한 시민들의 정당한 분노를 슬쩍 별로 잘한 것도 없는 여당에 대한 지지로 바꾸어 놓으려는 선거운동이라는 비난이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시위가 순수한 국민들의 분노의 표현을 넘어 열린우리당에 대한 사실상의 선거운동이 되는 것을 막을 의지를 갖고 계신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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