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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다 - 2008년 제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권여선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8년 1월
평점 :
한 남자가 술을 마시는 중 인 것 같다. 술을 마시던 때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을 믿다. 한눈에 촌스러운 느낌이 드는 이름이었다. 사랑을 믿은 적이 있단다. 사랑과 믿음 중 하나만도 제대로 감당하기 힘든 터에 감이 둘을 술목관계로 엮어 사랑을 믿은 것이 있다니, 하고 덧붙이면서 사랑을 믿은 적이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면, 촌스러움이 아니라 절절함이 느껴지는 제목이 된다. 믿지 않는 사람이 믿음에 대해 하는 말에 매혹당하는 것 같다. 시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 할 수 밖에 없다 한숨을 쉬며 말하고 시시한 이야기지요, 하는 것. 시시하다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이제는, 이제는 괜찮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도 너무 슬프게 느껴진다. 사실은 아직도 너무 아파요, 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처음과 끝을 보면 기억에 관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겠다. 술과 기억이라니. 그러니까 술을 마시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인생의 한낮을 지나고 있다고 말하고 이미 저묾과 어둠을 예비하며 살아간다고 이보다 더 밝은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무심결에 거리를 걷다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것들이 있고 상황에 맞지 않지만 가끔 입버릇 처럼 하는 말들이 있다.
굳이 액자식 구성이라고 말한다면, 액자 제일 안쪽에 있는 이야기는 한 여자의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는, 최근에 읽었고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된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에 실린 소설들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물론 술을 마시며 술을 마시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 자체도 그런 면이 있지만 좀 다른 의미에서. 소설 속 표현을 인용하면, 세상에 죽어도 못하는 게 어딨고 죽어도 꼭 해야하는 게 어딨냐는, 그런 이야기. 남자는 처음에 `사랑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다`고 말했고 끝에 가서는 `사랑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눈 것은 아니라눈 걱쯤은 나도 안다`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여자가 남자에게 술을 마시며 해 주는 이야기가 또 하나 있고, 남자가 또 술을 마시면서 그 때를 회상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