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 전2권 아주 사적인, 긴 만남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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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말들이 많이 담겨있는 책이다.

 

의사이자 시인인 마종기씨와 가수이자 화학자인 조윤석(이 이름의 소리가 참 마음에 든다. 정갈하고 조심스러운 느낌이다.), 루시드 폴이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한 사람이 의학과 문학, 음악과 화학을 동시에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의사와 시인, 가수와 화학자라는 이름을 동시에 갖는 것은 좀 드문 일이기는 하다.

김혜리 영화 평론가의 책 <그림과 그림자>에 대략 이런 의미의 말이 적혀있다.

'나는 사람이 일과 별개로 취미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자신이 그림을 보고, 미술관을 찾는 것이 자신에게는 대단한 사치라는 맥락이었던 것 같다.)

각자의 삶에서 재능과 환경과 노력의 비율들은 다 다르겠지만, 두 사람 모두 참 치열하게 살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은 루시드 폴의 에세이에 마종기씨가 덧글을 달아놓은 느낌이었다.

루시드 폴은 지속적인 일과 고민을 이어가던 중이었고,

마종기씨는 은퇴를 하고 쉬면서 이것저것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루시드 폴은 전부터 내가 좀 알던 사람이고,

마종기라는 사람은 이 책에서 처음 본 사람이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루시드 폴의 음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예의 그 나긋나긋한 말투는 참 부러워하지만.

최근에 나온 앨범의 1번부터 4번까지의 곡들은 꽤나 마음에 들어서

한 삼일동안 그 곡들만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루시드 폴이 삼바와 보사노바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앨범 후반부에 가면 그런 느낌의 음악들이 나왔었다.

나는 그런 음악들을 즐겨 듣지는 않는다.

혹은 루시드 폴의 나이에 내가 더 가깝고, 그의 고민이 나에게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후반부 혹은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에 와서야

마종기씨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삶은 어떤 것일까, 하고 상상해 보게 된 것 같다.

고국과 부모님에 대한 마음은 나이가 지날 수록 해결되지 않고 커지기만 한다던

박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마종기씨의 시들을 읽어본 후 다시 읽어버고 싶기도 하고

마종기씨만큼 나이가 차고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그러면 분명 또 다른 것이 보이고, 다르게 보이겠지.

 

편지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요즘 나는 말하자면, '편지쓰기 주간'이다.

그리운 사람 몇몇에게 편지를 부쳤고,

나 포함 친구 셋이서 서로 편지를 써서 일년 후에 보자는 약속을 했다.

그 편지들은 지금 내 서랍속 상자에 보관중이다.

1년 후 나에게 보내는 편지도 한통 썼다.

편지를 쓰기위해 흰 종이를 마주하고 펜을 잡으면 나는 대개

할 말을 찾지 못한다.

내가 흰종이 공포증을 앓고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편지라는 것은 내가 하고싶은 말과 받을 사람이 듣고싶을 만한 말을 잘 골라 써야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 쓰고보니,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하고싶은 말들만 써왔다는 생각이 든다.

 

두사람 사이의 사적인 교류이지만, 제삼자가 읽기에도 참 흥미롭고 마음 따뜻해지는 글들이다.

최근에 읽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에세이 <걷는 듯 천천히> 중에서,

"누군가 한 사람을 떠올리며 만들어라." 방송국 신입 사원시절, 선배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시청자라는 모호한 대상을 지향해 방송을 만들면 결국 누구에게도 가닿지 않는다. 어머니라도 애인이라도 좋으니 한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만들어라." 즉 작품을 표현이 아닌 대화로 여기라고 그는 말했던 것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만들면 분명 작품은 문이나 창문을 열어 젖힌 듯, 바람이 잘 드나들게 됩니다. 이렇게 불어온 바람은 내가 자기 표현이라는 말에서 느끼는 '자기 완결감'을 깨끗하게 날려줍니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에서 루시드 폴이 이렇게 적기도 했다.

앨범 작업이 마무리 된 직후, 앨범 출시 일주일 전부터는 각종 매체들과의 인터부가 있었지요. 세어보니 대략 40군데 안팎이었는데 대략 일주인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매시간 인터뷰를 했습니다. 매체홍보를 담당하는 분은,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힘들테니 여러 기자들과 함께 하는 라운드 인터뷰로 진행을 하자고 했지만, 제가 일대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요청을 했지요. 그래야 인터뷰어나 인터뷰이 모두 충분히 만족할 만한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몸은 좀 고단했는지 몰라도, 그 많은 인터뷰에서 제가 했던 이야기들이 신기하게도 조금씩 다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더군요.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이 책에는 분명

루시드 폴이라는 사람의 한 면과

마종기라는 사람의 한 면이

그리고 두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가

고스란히 담겨있을 것이다.

 

사람의 삶에서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마도 나는 훌륭한 예술가가 못 되는 모양이지요? 그 어떤 좋은 시보다 나는 그런 인간의 훈훈한 관계에서 감동을 더 받습니다.

이 구절은 요즘 계속 곱씹고, 또 문득문득 떠올리게 되는 말이다.

나는 예술과 같이, 아름다운 삶을 살고싶다고 자주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읽고는, 내가 그리고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등 예술을 사랑하는 것은

그것들이 사람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예술과 같은 삶을 살고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의 다른 말이 아닐까,

그리고 또 어쩌면 그런 관계를 만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더욱더 예술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몇 해 전에 죽은 친구의 시집을 윤석군이 결국 출간해주었군요. 정말 축하합니다. 그 시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시일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한번 읽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 시의 행간에서 두 사람의 우정을 만나겠지요. 그 우정은 시보다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사람의 삶에서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마도 나는 훌륭한 예술가가 못 되는 모양이지요? 그 어떤 좋은 시보다 나는 그런 인간의 훈훈한 관계에서 감동을 더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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